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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Dec 17. 2022

'빠지는' 혹은 '결심하는'

사랑에 대한 단상

  내게 사랑은 오랜 시간 사고였다. '사랑은 교통사고'라는 YB의 노래처럼, 어느 날 갑자기 혹은 서서히, 속도와 시점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빠져드는 게 사랑이라고 믿어왔다. 우리말의 '빠진다'는 표현과 영어의 'fall in'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랑은 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운명처럼 다가오는 것이라고, 때문에 다가오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떠나가기도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런 믿음 때문에  안에는  특이한 결심 같은  자리하고 있었다. 결혼을 하면서 스스로와  다짐이었는데, 만일 남편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면 미련 없이 보내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이따금 꺼내면 대개 손사래를 치면서  마디씩 붙인다. "막상 그런 일이 벌어져 봐라. 그렇게 되나." 그래도  결심은 바뀌지 않았다. 사랑은 갑자기 오고 가는 것이니, 남편에게 우연히 찾아온 사랑이 나와 나눈 사랑보다  진정한 것이라면 보내주는  맞다고, 그건 내가 막을  있는 일이 아니라고. 괘씸해서 놓아주는  아니라 자연의 순리이니 놓아주는  옳다고 믿었다.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을 들춰보다가 이런 내 생각이 혼돈에 빠지는 일이 벌어졌다. 아들러는 사랑은 사고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랑은 빠지는 게 아니라 결심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랑을 하겠노라 결심을 했기에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반대로 말하면 결심하지 않으면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사랑이 사고가 아니라니, 빠지는 게 아니라니. 나는 지나온 사랑들을 하나하나 들춰보기 시작했다. 나는 사랑에 빠졌던가, 사랑을 결심했던가.


  사랑은 분명 사고라는 꽤 굳건했던 믿음은 지난 사랑들을 곱씹을수록 서서히 무너져갔다. 갑자기 빠진 사랑도 있었지만, 결심한 사랑 또한 분명 존재했던 것. 갑자기 빠진 사랑의 경우도 그 당시 나의 감정 변화를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혹 결심의 순간이 있지는 않았나 돌아봐야 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더는 사랑이 사고라고 힘주어 말할 수가 없었다. 사랑이 결심으로 시작하는 것이라면, 사랑이 끝나는 것 또한 그만 사랑하기로 결심했기에 비롯된 결과가 된다. 사랑에 대해 꽤 안다고 믿어왔는데, 내가 알던 사랑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사랑이 사랑이지, 빠진 것이든 결심한 것이든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고와 사건이 판이하게 다르듯, 사랑 역시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라면 책임의 주체는 완전히 달라진다. 사랑이 사고라면 부적절한 사랑에 빠진 건 죄가 되지 않지만, 사랑이 결심이라면 부적절한 사랑은 명백한 죄가 될 수 있다. 물론 부적절한 관계는 이미 비난의 대상이긴 하다. 간통죄가 폐지되어 법적인 처벌을 받지는 않지만, 이혼의 책임 소재를 따질 때는 분명 적용이 되는 게 부적절한 관계다.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남편은 바람난 게 들키자 아내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이 말에 헛웃음을 짓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바람을 펴놓고 죄가 아니라고 말하다니. 저렇게 뻔뻔할 수가. 하지만 나는 이 말에 약간은 동의했다. 당시만 해도 사랑은 빠지는 것이라고, 어쩔 수 없는 사고 같은 것이라고 믿었으니까. 그러니 사랑에 빠진 것만으로 그걸 죄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랑이 결심이라면, 일명 사빠죄는 정말 죄가 된다. 자신의 마음을 굳건히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자 결심한 죄.


  결혼한 지 십 년이 넘었고, 이제 내게 사랑은 불타오르는 무엇이 아니라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또 다른 형태가 되었다. 결혼은 서로에게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데, 결국 연애에서 결혼으로 넘어가면서 예측 불가능한 사람은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고, 떨림이나 설렘의 감정 또한 신뢰와 안정의 형태로 변해간다. 불 같지 않아도 지금의 사랑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사랑이 한 가지의 모습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 여기에 더해 사랑이 빠지는 게 아니라 결심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나는 새삼 내 안의 심지를 매만진다. 해로하는 부부들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는 분명 이런 굳건한 책임과 결심이 뒤따랐을 것이므로.  


  사랑을 하기 힘든 시대라고들 한다. 많은 청춘들이 사랑을 하지 않는다. 사랑이 빠지는 게 아니라 결심하는 것이라면, 이들은 타인을 사랑하겠노라 결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랑에는 비용이 든다. 시간이 소요된다. 책임도 뒤따른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결혼은 인생의 기본값이었다. 누구나 어느 시기가 되면 결혼을 하는 게 당연한 줄 알고 자라왔다. 하지만 지금 청춘들에게 결혼은 더 이상 기본값이 아니다. 출산이 그렇듯 결혼도 필수에서 선택의 영역으로 완전히 자리를 옮겼다.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듯 결혼과 출산도 다양한 선택과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럼에도 사랑을 놓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의 가능성을 애써 외면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사랑의 종착점은 결혼이 아니며, 사랑은 그 자체로 놀라운 것이니,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사랑마저 놓지는 않았으면 한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기를 원하는 존재이자, 아낌없이 사랑함으로써 나의 가치를 느끼는 존재이기에. 삶이 생존(survive)에 머물지 않고 진짜 삶(live)이 되게 하는 게 사랑이기에. 그 위대한 선택을 주저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놀라운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결심했으면' 좋겠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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