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마주한다

<살고 싶다는 농담>,<죽은 자의 집 청소>

by 박순우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한동안 죽음과 밀접한 날들을 보냈다.


죽음의 문턱을 다녀온 이의 글을 읽었고,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사람의 얘기를 읽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이 남긴 노래를 들었다.




백 년 전만 해도 죽음은 삶과 무척 가까웠을 것 같다. 일찍 병을 앓아 죽는 어린아이가 많았고, 수명도 짧았으니. 현대의학이 발달하기 이전의 세상에서 죽음은 언제든 맞닥뜨리는 그림자 같은 것이었으리라.


의학이 발달하고 병으로 죽는 아이가 점점 줄어들고 수명은 늘어나면서, 차차 우리는 죽음과 멀어져 가고 있다. 죽음은 분명 도처에 있지만 마치 우리 일은 아닌 양 짐짓 모른 채 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 그러다 불현듯 죽음을 마주하면 우리는 그제야 삶과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허지웅의 책을 집어 든 건 이 책이 그가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쓴 책이기 때문이었다. 이전과는 다른 결일 거란 생각에 첫 장을 넘겼다. 그는 마지막에 이르러 고백한다.


“내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내가 듣지 못했던 말을 모두 털어냈다. 나는 앞으로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살아갈 생각이다.” p274


그는 재발을 하면 항암치료에 응하지 않을 것이란 다짐을 책에 적어두었다. 책을 덮으면서 혹여나 재발하더라도, 그리하여 다시 천장이 내려앉고 바닥이 솟아오르는 고통을 마주하더라도 다시 살아나 글을 써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청춘들의 어리석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줄기를 바라며 진심을 다해 글을 써 내려간 그가 더없이 소중한 이 사회의 중년이라 여겨졌기에. 나 또한 그런 빛바랜 청춘의 시간들을 넘어왔다. 괜찮은 어른을 찾지 못한 젊음이 얼마나 끝없는 방황을 하게 되는지 잘 알기에 그의 존재가 새삼 다행스러웠다.


<죽은 자의 집 청소>는 한 달 전쯤 한 차례 도서관에서 빌려왔지만 차마 읽지 못했다가 최근에 다시 빌려와 읽어낸 책이다.

특수 청소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이야기. 읽지 않아도 책의 무게가 느껴져 읽지 못한 날이 있었다. 내 안의 모든 가치가 붕괴돼 버린 날이었다. 그런 날들이 켜켜이 쌓인 어느 날 나는 이 책 읽기를 포기하고 만다.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 것 같은 느낌에. 그러다 어느 정도 내 상황이 일단락되고 나서야 나는 이 책의 문장을 하나씩 읽어낼 수 있었다.


“단색 배경에 표정 없는 증명사진, 한 반에 동명이인이 꼭 한 명은 있을 것 같은 흔한 이름. 이력이라곤 단 몇 줄뿐, 여백을 많이 남긴 이력서는 그녀가 짓는 풍부한 표정과 좋아하는 음식과 오랫동안 따라 부른 노래와 닮고 싶었던 사람과 사랑하는 친구의 옆모습에 대한 기억은 담아내지 못한다.” p18


“착하고 바른 심성을 왜 자기 자신에겐 돌려주지 못했을까? 왜 자신에게만은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오히려 그 바른 마음이 날카로운 바늘이자 강박이 되어 그녀를 부당히 찔러온 것은 아닐까?” p27


‘그는 자신의 인생을 살았을 뿐이다. 운명을 맞이한 순간까지 그는 죽을힘을 다해 자기 삶을 살았을 뿐이다.’ p102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등을 맞댔을 뿐, 사람의 생명과 죽음은 결국 한 몸통이고 그중 하나를 떼놓고는 절대 성립하지 않는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다. p237


작가는 자신의 일이 특별하지 않다 했지만 그의 일은 누구보다 고귀해 보였다. 스스로에게 나라면 이런 일을 도맡아 할 수 있겠느냐 여러 번 물어보았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꼭 해야만 하는 일, 그런 곳에 그가 있었다.


인디음악을 하던 한 사람이 죽었다. 나는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뒤에야 그의 음악을 알게 되었다. 빽빽하게 건물이 들어선 주택가. 그중 한 옥상에서 기타 하나를 매고 덤덤한 얼굴, 청량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그녀의 모습. ‘이유도 없이 나는 섬으로 가네’


십 년 전 불현듯 비행기 표를 끊고 아는 이 하나 없는 섬으로 무작정 향하던 내가 떠올랐다. 아무것도 없었던, 자유로웠지만 자유로울 수만은 없었던 공허했던 내가 떠올랐다. 마치 그때 듣던 음악인 듯 그녀의 목소리는 놀랍게도 그때의 나를 토닥이고 있었다. 나도 그랬노라고. 누구나 한 번쯤 그럴 때가 있노라고. 이제라도 그의 노래를 들어보려 한 나는 외려 위로를 받는다. 위로를 건네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아니라 죽은 이다.


지난해 읽은 책의 제목이 문득 떠오른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온통 죽음에 관한 책일 줄 알았는데 너무나 삶이었던 책이었다.

그러고 보면 삶도 죽음도 모두 여기 버젓이 함께 있는데 나는 여전히 그 둘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다. 나만은, 내가 사랑하는 이들만은 조금 멀리 떨어져 있기를.


그럼에도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려 한다.

누구보다 밀도 있게 오늘을 살아내고자 하는 마음에.

누구보다 진심으로 나와 내 가족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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