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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Dec 31. 2022

벽돌책을 정복하는 방법

근데 이런 책은 어떻게 하면 잘 읽을 수 있나요?


  벽돌책을 가리키며 한 지인이 내게 물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벽돌책을 읽는 나를 보고 물어온 것이다. 예상해보지 못한 질문에 당황한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그날 이후 계속 머릿 속에 질문이 떠다녔다. 내가 어쩌다 벽돌책 집는 걸 크게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지? 어떤 과정을 거쳤더라…?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니 두 권의 책이 떠올랐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나탈리 앤지어의 <원더풀 사이언스>. 아이들을 키우다 과학에 관심이 많아진 나는 우리 종이 가진 특성과 살아남은 과정이 궁금해 <사피엔스>를 읽어보고 싶었다. 전반적인 과학에 대해 쉽게 에세이처럼 설명해주는 책이라기에 <원더풀 사이언스>도 궁금했다. <원더풀 사이언스>는 456쪽, <사피엔스>는 636쪽이다.


  내가 가장 먼저 집은 건 <원더풀 사이언스>였다. 456쪽은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 그게 4년 전이다. 분량에 압도당하지 말고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가듯 읽어보자. 생각보다 책은 잘 읽혔고,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인지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한 권을 성공하고 나니 내 자신이 너무나 대견하고, 뿌듯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기세를 몰아 다른 벽돌책도 도전해볼까.


  그리곤 평소 읽고 싶어도 분량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차마 손을 뻗지 못했던 책들을 하나씩 집어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딱 한번 성공하고 나니 없던 자신감이 신기하게도 조금 생겼다. <사피엔스> 636쪽, <코스모스> 719쪽,  <총, 균, 쇠> 760쪽, <모비딕> 720쪽 등을 차례로 읽었다. 이런 책들의 특징은 참고서적이나 논문, 각주가 보통 뒷면에 수십 장에서 백 장 넘게 붙어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저기 적힌 숫자보다는 적은 페이지만 읽으면 된다.(모비딕은 소설이라 없…)


  늘 성공만 하는 건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한번 도전했다가 너무 어려워서 실패했다.

(내년에 다시 도전할 계획이나…과연)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도 읽다가 다음에 이어가기로 했다.

(언제 읽지..?) 이제와 생각해보니 실패한 책들은 모두 빌려본 책이다. 보통 직접 사서 읽는 책이 완독 성공률이 높다고 한다. 내 돈이 아까워서라도 읽는 심리가 아닐까.


  보통 이런 책들은 중간에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 부분이 꼭 나온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서 조금 인내하며 읽다보면 또 어느새 흥미로운 부분이 다시 시작되어 재미있게 읽어내려갈 수 있다. 읽다 중간에 힘들면 가벼운 다른 책을 보기도 하고, 너무 어려우면 하루 한 장만 읽기도 하고, 그렇게 쉬엄쉬엄 내가 읽을 수 있는 속도에 맞춰서 조금씩 읽다보면 어느덧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다. 그 마저도 안 되면 잠시 덮어두고 다음 때를 기다리면 된다.


  논문을 쓰지 않아도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기에, 내게 논문 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처음엔 좀 낯설고 어려웠다. 하지만 읽다보니 더 정확하고 빈틈없이 논리를 전개하려는 저자의 노력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부분에서 보통 읽는 속도가 떨어지는데, 의도를 눈치 채면 이런 부분도 이해가 좀 쉬워진다. 그렇게 마침내 모두 읽어내고 나면, 읽어낸 나를 칭찬하게 되고, 이런 방대한 지식을 나눠주는 학자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끼게 된다. 지금도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가 사회와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더 발전할 수 있구나 하는 마음이랄까.


  그러니 손쉬운 책을 집다가도 한번씩 또 도전의식이 발동해 벽돌책을 읽는다. ‘읽다가 안 읽히면 놔뒀다가 다음에 읽지 뭐’ 하는 마음과 ‘한번 끝까지 도전해보자’는 양가적 마음을 품은 채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긴다. 아이들은 그런 나를 보며 자신도 크면 꼭 읽어보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하고, 책장에 꽂아두면 있어(?) 보이기도 하니 일석이조다. 그러니 새해에는 당신도 벽돌책 한 권 도전해보면 어떨까. 그 한번의 도전이 당신을 전혀 다른 인생으로 끌고 갈지도 모른다. 내가 새해에 도전하려는 책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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