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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Feb 09. 2023

빈틈을 끌어안는 시간이길

많이 앓고 있다는 건, 봄이 가깝다는 말일지도

글 하나를 쓰고는 몇 달 동안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틀어박힌 적이 있다. 너도나도 딸이 필요하다는 말에 발끈해 적어 내려 간 글이었다. 당시는 카페 홍보차 운영하는 블로그 말고는 따로 글을 게시하는 공간이 없었다. 글은 다 썼는데 올릴 데가 없어서 두리번거리다 갑자기 브런치를 하기 시작했다. 첫 글이었다. 그 글이 운 좋게 포털에 올라갔다. <내게 딸은 필요없다>는 도발적인 제목 때문이었을까. 아들만 있는 집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들에 불편했던 이들이 워낙 많았던 걸까. 며칠 만에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고, 낯선 사람들이 줄줄이 댓글을 달았다.


분명 좋은 일이었는데, 좋지 않았다. 불편하고 무서웠다. 개인사가 많이 적힌 글이 아닌데도, 공감의 댓글이 더 많았는데도, 나는 너무나 두려웠다. 두려운 마음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본다고 몇 달을 그저 흘려보냈다.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그때 깨달은 건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글을 간절히 쓰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내 이야기를 누구든 읽고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대담함과 유연함은 아직 갖지 못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몇 달 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공개된 공간에 글을 쓴다는 건 그만큼 더 많은 공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만, 반대로 그만큼 더 많은 공격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정말 세상에 내 글을 내놓고 싶은 건지, 왜 쓰고 싶은지, 왜 써야만 하는지. 나는 스스로를 붙들고 멱살을 잡고 흔들 듯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그럼에도 쓰겠다'였다.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단단해져야 했다. 어떤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흔들리지 않아야 했다.


다시 용기를 내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첫 글과 같은 운은 따라주지 않았다. 읽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나 말고도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쓰고 있었고, 그들 틈에서 내 글이 읽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는 매일 쓰는 글도 아니었기에 글을 쓰는 동력이 자꾸 바닥났다. 읽히지 않는 글을 쓴다는 건 너무나 외로운 일이었다. 어두컴컴한 방에 홀로 앉아 일기를 쓰는 느낌이었다. 그제야 내가 얻은 운이 감사하게 여겨졌다. 내가 얼룩소에서 계속 글 쓰는 힘을 받았다면, 그건 결국 사람들의 관심 덕분이었다. 나는 독자의 시선을 느끼며 글을 썼고, 독자의 시선에 힘을 내며 글을 썼다.


어떤 일을 도모할 때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얼룩소에서 에세이 쓰기 모임을 여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내 목적은 그저 스스로의 글이 발전하길 원하는 사람들을, 혼자만의 힘으로 글을 쓰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의무적인 글쓰기로 끌어들여 함께 힘을 내보고자 함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여주었다. 멤버 중 몇 명은 자신이 그동안 쓴 글 중에 이번 글이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쏟아진 관심 속에 합평까지 이어졌다. 일부러 흠집 내는 합평을 지양한다고 밝혔지만, 그럼에도 누군가가 자신의 글을 세세히 살피고 말을 보태는 건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이었다. 글을 평소 자주 올리던 멤버들의 일상글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이 궁금해졌다. 누군가는 바빠서 누군가는 쓸 거리가 없어서 글을 쓰지 못했겠지만, 또 누군가는 지금 이 상황이 제대로 소화되지 않아 전전긍긍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또 써도 된다 말을 건네고 싶지만, 그럴수록 말을 자꾸 아끼게 됐다.


완벽한 글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완벽한 글이란 게 세상에 존재할까. 완벽하다 해서 좋은 글도 아닐뿐더러, 완벽하게 모든 걸 갖췄다 해서 독자를 감응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글을 쓰는 인간이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이니 그 안에서 나온 글도 그렇지 않을까. 읽히는 글이 꼭 문법적으로 완벽하고 구성이 뛰어나며 내용이 온전한 건 아닐 것이다. 글쓴이가 좋아서 읽을 수도 있고, 글쓴이가 다룬 주제가 흥미로워서일 수도 있다. 오히려 글에 빈틈이 많은데도 사람의 매력이 가득해 자꾸 찾게 되는 경우도 참 많다. 


우리가 모임을 한다면 그건 완벽해지기 위함이 아닐 것이다. 글을 쓰면서 조금은 다른 시선과 다른 힘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 낯선 합평의 세계와 쏟아지는 수많은 관심이 부담스럽더라도, 또 툴툴 털어내고 함께 뚜벅뚜벅 글을 썼으면 좋겠다. 우리의 목적은 누가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느냐가 아니라, 다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이니. 더 따뜻하게 서로의 글을 바라보고, 혹여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면 마음의 체로 걸러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을 받아들이며, 그렇게 또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빈틈을 사랑한다. 사람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건 완벽이 아니라 빈틈이다. 매사에 완벽한 사람에게 다가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만 돌이켜보면 마음이 움직인 건 늘 상대방의 빈틈을 마주했을 때였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타고 태어난 생김 그대로 서로를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의 시간들은 어쩌면 나의 빈틈을 끌어안고, 그 빈틈을 미워하던 날에서 사랑하는 날로 건너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막 허물을 벗어 가장 말랑한 살을 내보인 상태인지도 모른다. 함께 그 시간의 힘을 믿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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