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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Mar 17. 2023

오늘의 날씨는 예측 불가

무엇을 상상하든 예측할 수 없는 게 섬이야

  '섬사람이 다 됐구나' 싶을 때가 있다. 바다를 끼고 달려도 별 감흥이 없거나, 귤이 지천에 널려 있을 때도 그렇지만, 사실 날씨를 수시로 확인할 때 가장 많이 절감한다. '섬사람이 다 됐구나.' 섬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십분 거리의 날씨가 다르고, 아침의 예보가 오후에는 뒤바뀌어 있을 때도 많다. 그러니 하루에도 여러 번 날씨를 찾아본다. 오늘의 날씨는 어떨까 하고.


  제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던 건, 십이 년 전 여름이었다. 내가 섬에 도착한 날은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종일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숙소로 들어가 빗소리를 들으며 늘어지게 잠을 잤다. 내 집보다 집 밖에서 더 잘 자던 시절이었다. 도미토리 침대 하나만 구할 수 있으면 내 집인 양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여름날 쏟아지는 시원한 빗소리는 최고의 자장가였다. 개운한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어느덧 날은 저물고 비는 그쳐 있었다. 숙소 마당으로 나가니 티끌 하나 없는 맑은 공기가 숨 쉴 때마다 코를 간질였다. 고개를 드니 하늘에는 총총 별들이 박혀 있었다. 땅은 거짓말처럼 물기 하나 없이 말라 있었고.


  뉴질랜드가 떠올랐다. 학생 신분을 벗어던지고 도피하듯 떠난 곳은 지구 반대편 섬나라였다. 바다 근처 도시에서 일 년 좀 안 되는 시간을 살았다. 그곳에는 도시에서도 맨발로 걷는 사람이 있었다.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온통 푸른 땅에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다 갑자기 멈추는 곳이었다. 맨발로 걸을 뿐만 아니라 웬만한 비는 온몸으로 맞는 이들이 많았다. 친구들과 근처 언덕에 산책을 갔다가 소나기에 몸을 황급히 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비가 쏟아지다가도 다시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내리쬐면, 땅은 금세 바짝 마르고 공기는 보송해졌다.


  친구들과는 자주 날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changeable'이었다. 우리말로는 변덕스러운, 변하기 쉬운. 섬은 그런 곳이었다. 언제든 구름이 쉬었다 가고, 언제든 햇살이 포근하게 감싸주며, 바람 또한 머물기보다 지나가는 그런 곳. 곳곳에 화산활동으로 생긴 크고 작은 언덕이 있었고, 그 언덕을 자주 거닐었다.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친구들과 언덕으로 피크닉을 가기도 했다. 산언저리에 돗자리를 펼치고 앉아 음악을 들으며 살랑이는 바람을 느꼈다. 한 입 가득 베어 물던 샌드위치는 꿀맛이었다.  


  제주 여기저기에 솟아오른 오름들이 꼭 그 언덕 같아 보였다. 가장 큰 오름인 한라산은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같았다. 긴 여행길에서 가장 큰 쉼이었던 네팔 포카라의 병풍 같은,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는 산스크리트어로 '가득한 음식'을 뜻한다. 히말라야의 장엄함과 8km가 넘는 아찔함에도 불구하고, 안나푸르나라는 푸근한 이름은 여행자의 서늘한 마음에 점점 온기를 채워주었다.


  여기일지도 몰라. 내가 찾던, 내가 살 수 있는 곳. 내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 날씨 때문인지, 오름 때문인지, 한라산 때문인지, 나는 너무나 쉽게 마음을 빼앗겼다. 뉴질랜드가 꿈을 잃고 방황하는 나를 안아주었고, 안나푸르나가 다르게 살아보려 안간힘 쓰는 나를 토닥여주었듯, 제주가 새로운 미래로 향해 가는 나를 보듬어줄 거라 믿었다.


  제주 이곳저곳을 탐험하듯 살아보던 친구는 결국 가장 포근하고 안락한 서귀포 위미에 자리를 잡았다. 한라산이 겨울철 북서풍을 막아줘 가장 온화하고, 바람도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덜 부는 곳. 탐험은커녕 기분파였던 나는 덜컥 남편을 만난 동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는 몰랐다. 제주의 서쪽과 동쪽 양 끝이 가장 바람이 매섭다는 걸. 내가 자리 잡은 곳은 섬 중에서도 가장 섬다운 곳이었다.


  섬 날씨를 확인할 때는 건성건성 봐서는 안 된다. 기온부터 구름의 양,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과 바람의 세기, 비가 오는지, 온다면 언제 얼마나 오는지까지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같은 봄바람이어도 남동풍이면 따뜻하고 습하지만, 북서풍이면 한기가 담겨 서늘하다. 기온이 겨울치고 제법 높아도 바람이 거센 날에는 외투를 두툼한 것으로 챙겨야 한다. 이왕이면 모자가 있어 언제든 바람을 피하고 싶을 때 눌러쓸 수 있으면 더 좋다.


  이렇게 꼼꼼히 챙겨도 제멋대로인 날씨에 치일 때가 많다. 비 예보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어느 순간 먹구름이 밀려오거나. 내일 온다던 비가 오늘 오후로 앞당겨 흩뿌려지거나, 조금 온다던 비가 홍수를 일으킬 듯 매섭게 내린다거나. 그러니 섬에 살면서는 기상청을 탓해서는 안 된다. 날씨를 꼼꼼히 체크하고 대비하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실망해서는 안 된다. 그저 그러려니. 섬이란 원래 이런 곳이려니. 무엇을 예측한다 해도 결코 그대로 진행되지 않는, 변화무쌍한 인생 같은 게 섬이려니.


  이런 곳에 십 년을 살자니 자연 앞에 한없이 겸손해진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치고 잘난 척을 해도, 지구를 벗어날 수 없고 대기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내게 섬의 계절은 봄여름가을겨울이라기보다, 태풍이 오는 때와 오지 않는 때로 나뉜다. 봄이 온다는 건 곧 태풍의 계절이 다가온다는 말과도 같다. 겨울이 온다는 건 태풍이 멀어져 한시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절로 두 손을 모으고 올해는 큰 태풍이 없기를 바라는, 영락없는 섬사람이 되었다.


  태양이 일 년 내내 같은 자리에서 뜨고 지지 않는다는 것도,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이냐에 따라 온기와 습기의 머금은 정도가 다르다는 것도, 천둥소리에 집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도, 모두 섬사람이 되었기에 알게 되었다. 섬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우주의 작고 작은 파란 점 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나약한 먼지라는 사실을 체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 가진 게 더 불안한 일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은 비 예보가 있는 날이다. 한시부터 5m/s의 동풍을 타고 비가 온다더니, 웬일로 정확히 그 시간즈음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많은 양은 아니라고 했는데, 머리 위의 구름 색깔과 빗줄기의 굵기를 보아하니 제법 많은 양이 내릴 듯하다. 봄에 비가 내리면 궁금해진다. 비가 그치고 나면 따뜻해질까, 추워질까. 당장은 좀 서늘해질지 몰라도 이내 또 포근해지겠지. 마당에 속속 올라오기 시작한 잔디는 분명 더 푸르러질 테지. 벚나무마다 매달린 꽃망울들은 흠뻑 비를 맞고 드디어 세상을 만날 시간이라며 팝콘처럼 터져 나올 테고.


  아무리 변덕스러운 날씨라 해도, 섬 역시 계절의 흐름을 성실히 따른다는 건 작은 위안이 된다. 아무리 반짝여도 모든 게 세월을 따라 시들어가는 게, 이 세상의 유일한 평등인 것처럼. 그 법칙으로 나이가 들수록 고개를 숙이리라 다짐을 하는 것처럼. 오늘도 날씨를 확인하며 하늘의 변화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자신을 다독인다. 해가 나면 나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덤덤히 받아들이겠노라고. 아무리 대비한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그것뿐이더라고.




*글쓰기 모임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글감은 '날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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