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여행을 자주 다닐 때는 가기 전 짐을 싸는 건 일도 아니라 생각했다. 머릿속에 준비물이 콕콕 박혀있어 생각난대로 후다닥 가방에 쓸어넣으면 준비는 끝. 일본이나 동남아처럼 비교적 가까운 나라로의 여행일수록 마음은 마치 옆동네 가는 듯 가벼웠다. 없으면 사면 되고 모르면 물으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혼자 다니던 여행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였다. 코로나 오기 직전 가족이 다함께 육지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아이들은 당시 고작 세 살, 다섯 살이었다. 숙소는 미리미리 예약이 필수였고 웬만하면 온돌방을 잡아야 했다. 한국 음식은 매운맛이 기본값인지라, 음식점에 갈 때마다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찾아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행을 가서도 휴대폰을 들고 자꾸 검색을 해야 했다. 여행지에서 휴대폰에 시선을 두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런 나와 남편의 모습이 보일수록 무엇을 위한 여행인가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그 후로 가족끼리 제대로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명절에 시댁을, 가끔 친정을, 어쩌다 섬 반대편을 향할 뿐, 코로나라는 전대미문 바이러스에 아이들을 데리고 타지로의 여행을 꿈꾸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남편도 없이 아이 둘을 데리고 바다 건너 여행을 떠났다. 이제 열여덟이 된 조카도 함께. 어른 하나에 미성년자만 셋이라니. 생각할수록 무모한 도전 같다. 중간에 합류하려던 남편은 회사일로 아예 빠지게 됐고, 조카는 너무나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기에 같이 가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대체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조카가 우리 아이들 만할 때, 나는 한창 여행에 미쳐있었다. 그때 조카가 내게 쓴 크리스마스 카드를 언니가 사진으로 찍어 보내왔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모는 지금 대체 어디를 다니고 있는 거예요?”
마치 조카의 음성이 지원되는 느낌의 문장에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뇌리에 콕 박힌 문장. 조카는 그 뒤로 나중에 크면 자신도 이모처럼 여행을 많이 다닐 거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 마음의 씨앗을 내게서 얻은 것만 같아 나는 종종 남모를 책임감이 들었다.
어느새 나보다 더 커진 조카는 어릴 적 나를 보는 것만 같은 삶을 산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삶에 무기력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도 목표도 별로 없다. 생김도 성격도 나를 많이 닮은 조카가, 나와 비슷한 학창시절을 보내는 걸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내가 그랬듯 이 아이도 얼마나 많은 세상을 만나며 고뇌하고 깎여야 할까. 조언을 한다 해도 들리지 않을 나이라, 입술만 달싹이고 쉽사리 말을 건넬 수가 없다.
조카는 늘 여행이 꿈이지만, 항시 바쁜 아빠와 운동을 하는 동생 때문에 덩달아 분주한 엄마로, 여행을 실제로 하기는 어려웠다. 어차피 책상에 앉아있다 한들 오롯이 공부에 집중하지 않을 것 같아 함께 여행을 가자고 했다. 아직 세상 모든 걸 신기해 하고 흥미롭게 바라보는 어린 사촌동생들과 낯선 세상을 걸으면, 조금 다른 시선과 감정을 갖게 될까 싶은 마음에.
섣부른 기대를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조카가 무기력한 상태만이라도 좀 벗어나면 좋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함께 많이 걸으며,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삶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아직 어리지만 어느덧 일곱 살, 아홉 살이 된 내 아이들도 더 넓고 다채로운 세상이 있다는 걸 몸으로 알아갔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그새 좀 자랐다고 여행계획을 직접 짜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가고싶은 곳을 줄줄 말하기도 한다. 아무리 아껴 써도 이 정도 여행 경비가 든다고 말해주었더니, 자신들의 저금통에서 삼십만 원씩을 꺼내 보태겠다고 나섰다. 더 많이 못 보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선뜻 여행에 자신들의 돈을 내놓겠다는 말에 놀라기도 하고,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대견하기도 했다. 나는 아직 어린 아이가 이 만큼을 내놓는 것도 대단한 거라며 고맙다고 말하고 거절하지 않았다.
딸만 보내는 언니와 처자식만 보내는 남편은 걱정이 많다. 조카야 그래도 좀 커서 제 앞가림을 어느 정도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아직 물불을 못 가릴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걱정이 드는 게 당연한 걸 잘 알면서도 나는 이상하게 큰 염려가 되지 않았다. 비행기와 숙소만 예약해두었을 뿐 현지에 대해 크게 알아보지도 않았다. 떠나기 하루 전에야 부랴부랴 가이드북을 훑어보고 중요한 부분을 체크해놨을 뿐이다.
내가 이 무모한 여행을 계획하고도 꽤 여유를 부리는 건 사실 아이들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아직은 많이 서툴지만, 점점 스스로 해나가는 일이 늘어나고 있으니. 먹을 수 있는 게 조금 더 많아졌고, 침대에서 떨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을 몸집이 되었으며, 나보다 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탐구할 것이니. 놀라운 속도로 자라나는 아이들이 거쳐온, 적잖은 시간의 힘을 믿어보려는 것이다.
아이들은 관광지 이름을 줄줄 꿰고 자신이 꼭 가고 싶은 곳을 정해두었다. 먹고 싶은 음식도 척척 고르고, 꼭 보고 싶은 게 있다고도 한다. 오랜만에 바다 건너 여행인데다, 한두 푼 드는 일이 아니고, 혈혈단신도 아니다 보니 나 역시 괜히 마음이 번잡스럽다.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야할 것만 같은 의무감에 사로 잡힌다.
내가 사실 가장 좋아하는 여행은 정처없이 걷는 것이다. 길을 잃은 사람처럼 걷고 또 걷다보면 관광지도 우연히 발견하고, 현지인들의 삶의 현장도 지나친다. 걷다 힘들면 아무데나 퍼질러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다시 힘이 나면 또 걷는 여행. 아이에게 사실 엄마는 이런 여행을 더 좋아한다고 말해주니, 아이는 금세 눈을 반짝이며 그것도 재밌겠다고 맞받아쳤다.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려면 의외성이 필요하다. 길을 잘못 들었거나, 맛집인데 맛이 없었거나, 관광지는 무시하고 내 멋대로 다녔거나, 여행인데 마치 내 집앞처럼 어슬렁거린 곳. 그런 곳이 더 오래 더 깊게 뇌에 새겨진다. 그런 여행이 진짜 여행으로 걸러져 내 안에 자리한다. 그러니 번잡해지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안간힘을 쓴다. 대부분의 걱정은 기우임을 잘 알기에.
그저 안전한 여행이기를 무탈한 여행이기를. 너무 많은 걸 보기보다 천천히 시간의 결을 느끼는 여행이기를. 내게 큰 책임이 놓인 여행이지만 아이들을 믿으며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는 여행이기를. 무엇보다 그런 여행을 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의 내가 되기를. 어려움이 닥치면 함께 의논해 풀어가고, 부족한 게 있으면 함께 채우기를. 없으면 사면 되고 모르면 물으면 된다는 오래 전 그 마음처럼.
그렇게 무모한 여행을 시작했다.
덧. 이곳 공항에 내려 처음 마주한 항공사가 튀르키예 에어라인이었다. 보자마자 죄책감에 얼굴이 붉어졌다. 매일 뉴스 탑으로 튀르키예 지진 속보가 뜬다. 아이들과의 약속인데다 취소할 수가 없어 떠나왔지만, 어딘가에서 누군가 비명을 지를 때 홀로 인생을 즐기는 것만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복잡한 심경이 겹치면서 글을 썼다 지웠다 고쳤다가 다시 마음을 잡고 퇴고해 올린다. 떠나온 지 어느덧 닷새째인데, 늦은 일기 같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