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숙소에 들어섰다. 싱가포르 시내 중심가에 위치해 있었던 두 개의 숙소와 달리 중심가를 좀 벗어난 곳. 저렴한 숙소를 찾다 발견한 곳이었고 가장 여러 밤을 보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막상 체크인을 해보니 금액과 달리 그동안 머문 곳 중 가장 넓은 숙소였다. 싱가포르의 물가는 상상 이상인데, 그래서인지 숙소는 유독 크기가 작았다. 캐리어를 펼쳐두면 발을 디딜 곳이 없을 만큼 작은 방. 그런 곳에서 지내다 그래도 좀 더 여유가 있는 곳에 와있자니 오만 가지 생각에 사로 잡혔다.
세 번째 숙소 주변은 현지인들이 많이 사는 곳인데, 일단 물가부터 시내와 차이가 컸다. 아이들과 열대과일을 열심히 사먹는데 금액 차이가 거의 두 배 정도 난다. 거리의 청결함도, 건물의 낡은 정도도, 사람들의 차림새도 참 다르다. 지난 밤 귀가하던 길에 만난 택시기사는 싱가포르에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싱가포르가 참 좋다며 사는 건 어떻냐고 묻는 조카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모든 비용이 너무 높아서 살기가 팍팍하다고 했다. 관광객들이 주로 가는 곳은 너무 비싸서 현지인인 자신은 거의 가보지 못했다고도 덧붙였다.
대다수가 사나흘 정도 머물다 가는 곳을 두 배 기간으로 잡은 건, 아이들과 낯선 곳에서 살아보는 느낌을 가져보기 위함이었다. 급하게 다니지 않고 천천히 이곳의 삶을 엿보고 싶었다. 여행은 내 바람과 다르게 흘러갔다. 혼자라면 대충 끼니를 때우고 굳이 비싼 입장료를 내야 하는 곳은 가지 않았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다보니 제대로 먹어야 하고 아이들이 원하는 곳은 비싸도 어느 정도는 가야 했다. 내가 원하는 여행과 조카가 바라는 여행, 어린 내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여행은 저마다 조금씩 달랐고, 그걸 모두 채우자니 발걸음은 바빠지고 지갑이 자꾸 열렸다.
간만에 해외에 나온데다 시골에 처박혀 있다 너무나 도시인 곳으로 오자니, 처음에는 나도 아이들처럼 마음이 마냥 춤을 췄다. 하지만 계획한 여행의 절반을 보내고 나니, 화려한 싱가포르의 이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로공사와 같은 고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남아 사람들이고, 유독 자리도 좋고 멀끔한 레스토랑에는 백인들과 부유한 한족의 후손들이 넘쳐난다. 공짜로 차지할 수 있는 육교나 공원에는 주말이면 도시의 하층민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싸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 마치 홍콩처럼.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은 참 매력적이다. 나 같은 이방인도 이런 곳이라면 한 번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싹튼다. 하지만 그런 곳은 유독 명과 암이 도드라진다. 가진 돈으로 허락되는 땅은 좁기만 하고, 그저 먹고 살기 위한 것에도 막대한 비용이 든다. 일정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만 부가 허락되고, 그 사람들의 삶을 뒤치다꺼리하는 사람들은 아주 적은 돈만을 손에 쥘 수 있다. 이런 도시에는 유독 명품 매장이 많은데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은 한정적이다. 어두운 곳과 밝은 곳을 차지하는 사람들의 경계가 너무나 분명한 것.
여기저기 자영업자가 넘쳐나고 가게 문을 열어두는 시간이 무척 길다. 나보다 더 일찍 깨어나고 더 늦게 잠드는 사람들. 이름 난 가게나 프랜차이즈가 아니면, 현금을 선호하고 카드를 거부한다. 카드를 내면 추가 비용을 더 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사람들. 서울이 떠오른다.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국가답게 언뜻 보면 참 화려한 나라지만, 오래 머무르다 보니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고단함이 보인다. 비싼 물가와 팍팍한 삶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사람들의 깊은 고뇌가 보인다.
아이들은 더 싼 호텔이 왜 더 넓은지를 내게 물었다. 나는 돈의 가치가 지역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덤덤히 설명했다. 아이들은 지난 밤 택시 아저씨는 왜 그렇게 흥분해서 말을 했는지도 궁금해 했다. 나는 빈부격차에 대해 언급할 수밖에 없었다. 빈부격차가 무엇인지, 빈부격차가 큰 나라와 작은 나라 중 어떤 나라가 더 살기 좋은 나라인지, 왜 빈부격차가 심한지.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아가는 데 결코 피할 수 없는 ‘돈’이라는 존재에 대해 설명하는 건 늘 난해하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짧은 여행만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채기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도시를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의 저마다 다른 삶을, 돈의 유무에 따라 마음의 여유가 달라지는 인간의 얕은 거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도시 하층민의 삶을 알아채고, 어른이 된 후 자신이 감내해야 하는 인생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인식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이 직접 겪지는 않더라도 어떤 계층의 삶이든 분리된 게 아니라 연결된 것임을 알아채기는 분명 더 힘겨운 일일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아이들이 좀더 냉철하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이곳을 바라봤으면 하는 바람이 자꾸 샘솟았다. 그저 나만 잘 살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가슴으로 아주 조금이라도 느끼기를 염치 없이 바랐다.
여행지에서 절반의 시간을 보내고야 나는 내가 섬으로 이주한 이유와 정확히 오버랩되는 도시 삶의 민낯을 마주한다. 수많은 비교와 지나친 격차에 지끈거렸던 머리를, 더 경쟁하고 더 이기려 애쓰는 삶이 싫어 모든 경쟁 구도로부터 도피하고자 했던 지난 날의 나를.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이런 나의 오랜 고민과 선택을 털어놓는 날이 오겠지. 그러다 보면 아이들이 어렴풋이 나를 이해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근사함에 흠뻑 취했던 시간을 지나 다시 현실로 들어선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한 어쩌면 절대 피할 수 없을, 돈의 유무에 따른 너무나 다른 삶을. 아주 적은 수의 인구만이 부의 거의 대부분을 쥐고, 대다수는 평생을 허덕이고야 마는 이 지옥 같은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을. 그리고 그 세상으로 결국 내 자식들도 걸어 들어가야만 한다는 끔찍한 현실을. 아름답지만 넌더리 나는 도시의 맨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섬이 조금씩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