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던 관광객이 갑자기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우리집 담벼락 끝에 서서. 폰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가까이 갔다 멀리 갔다 찰칵 찰칵. 대체 거기 뭐가 있기에 그리 열심히 찍는 걸까. 카메라 렌즈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그곳에 하얀 눈꽃 같은 매화가 있었다. 한 송이도 아니고, 수십 수백 송이가 작은 나무 하나 가득 소복이 피어있었다. 꽃봉오리도 아니고 꽃잎을 한껏 펼치고 흐드러지게 핀 매화가. 이렇게 가까이에 봄이 매달려 있을 줄이야.
잔디밭에 드문드문 냉이가 올라오는 걸 봤으면서도 막상 매화를 마주하니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렇게 가까이에 매화가 있음에도 한동안 잊고 살았구나. 옆집의 매화나무는 몇 년 전만 해도 꽃이 몇 송이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풍성해졌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마당에 심은 수국의 가지에도 작은 연둣빛 잎이 돋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앙상한 가지만 뾰족해 올해에도 수국이 필까 염려가 됐는데, 여전히 살아있다며 작은 잎들이 뽀얀 얼굴을 디민다.
그새 해가 조금 길어졌다고 마당냥이 반반이는 발정이 났다. 동네 수컷 두세 마리와 종일 어울려 다닌다. 그제는 건넛집 돌담 위에서 덩치 좋은 누런 수컷이랑 짝짓기를 하다 나랑 눈을 맞춘 뒤 도망을 가더니, 어제는 카페 처마 위에서 고등어 같은 검푸른 빛깔의 수컷과 짝짓기를 한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 낄낄대고 촬영을 한다. 바로 옆에서 반반이 새끼인 구름이가 빤히 그 모습을 바라본다.
부끄러움은 왜 내 몫인 건지. 웃으며 들어오는 손님들과 고양이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나는 못내 또 임신을 할 게 분명한 반반이의 삶이 애처로워 기분이 영 마뜩찮다. 저 녀석이 이번에 임신을 하면 아홉 번째인가, 열 번째인가. 숨 쉴 틈조차 주지 않고 돌아가는 생애 사이클이라니. 너는 대체 누구를 위한 삶을 살고 있는 거니.
반반이가 우리 마당에 살다시피하기 시작한 지도 사 년이 흘렀다. 그간 수많은 임신을 했는데도 결국 데려온 자식은 새하얀 구름이 하나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 큰 구름이가 반반이의 젖꽂지를 입에 물고 잠이 들곤 했다. 고양이들도 점점 인간에게 길들여지는지 독립할 때가 한참 지났는데도, 모자 중 어느 하나 마당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 몇 달 뒤 반반이가 또 새끼를 낳으면 우리집 마당에는 누가 남고 누가 떠나게 될까.
돈에 대해 생각한다. 아니 돈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얼룩소 에세이 쓰기 모임에서 내가 낸 글감인데도, 나는 이 글감에 골몰하고 싶지 않아 빙빙 돌다 여행기 하나를 해당 글로 게시해버렸다. 나는 왜 이 글감에 집중하지 못할까. 이유를 캐내다 보니 글감 끝에 엄마가 서있다. 내게 돈은 엄마다. 평생 돈돈 했던 엄마. 돈이 없으면 안 된다던 엄마. 자신이 살아온 생의 가치를 돈에서 찾는 엄마.
매화를 보다 엄마가 떠올랐다. 삼 년 전 어깨 수술을 해 깁스를 한 엄마와 두 아이들과 함께 서귀포로 매화를 보러 갔었다. 나는 엄마를 밀어내지만 엄마는 자꾸 나를 찾는다. 섬으로 도망을 가면 멀어질 줄로만 알았는데, 엄마는 나를 따라 섬으로 이주까지 해왔다. 운전도 할 줄 모르고 사람도 사귈 줄 모르는 엄마에게 섬 생활은 지옥이었다. 아빠는 홀로 나가 친구를 사귀고 나들이를 다녔다. 꽃이 피고 져도 엄마는 혼자였다. 그 모습이 밟혀 내키지 않아도 엄마를 모시고 아이들을 데리고 오름으로 숲으로 종종 다녔다. 그때 엄마와 본 매화가 자꾸 머릿 속에 아른거렸다.
엄마와 연락하지 않은 지 제법 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는 온라인에서 물건을 주문할 때만 나를 찾는 엄마. 그럴 때만 주문을 해주며 딸의 역할을 하는 나. 삼 년 전만 해도 이렇게 사이가 소원하진 않았는데, 다시 육지로 부모님이 이사를 하고 이혼 별거 가압류…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 거리는 여러 일들을 지나며, 이제는 자주 연락하지 않는 나쁜 딸년이 되었다.
내가 살자고 내가 숨 쉬자고 부모를 놓았다. 그래놓고 매화를 마주한 뒤로 엄마가 조금 궁금하다. 꽃을 만날 때만 소녀 같은 엄마. 이렇게 오래 연락을 하지 않은 적은 있었던가. 간간히 살아있구나 하는 연락 정도만 하고 살았는데. 어차피 연락이 닿아봤자 엄마는 또 아빠를 의심하고 아빠를 욕하고 아빠를 원망하며, 자신의 금 같은 하루하루를 온통 원망과 남탓으로 쓰고 있겠지.
꽃이 피고 지고 아무리 계절이 바뀌고 또 바뀌어도, 엄마는 항상 과거에 묶여 산다. 어떤 계절에도 얼음장 같기만 한 그녀의 마음. 나는 그런 엄마에게 붙들려 같이 과거로 빨려 들어갈까 무서워 안간힘을 쓰며 버틴다. 이제 내가 무너지면 내 가정이 무너지기에. 나는 내가 살기 위해 엄마를 놓는다.
구름 낀 하늘이 을씨년스럽더니 가슴에도 종일 쓸쓸한 바람이 분다. 엄마 좀 안아줘. 첫째가 나를 말없이 꼭 안아준다. 엄마 쓸쓸해. 내가 안아주니까 쓸쓸해 하지마. 이제 제법 자라 안아주는 손길도 품도 꽤 따뜻하고 넉넉하다. 머리를 비워내야겠다. 자식된 도리도, 엄마된 의무감도. 잠시 모든 걸 비워내고 그저 나로 머물러야지. 달큼하고 보드라운 매화꽃 향기가 코끝에 머물다 가는 그 찰나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