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여행하고 싶지만 그럴 순 없기에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면서 가장 걱정했던 건 글이었다. 여행지에서 글을 못 쓰면 어쩌지. 매일 쓰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는데.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뒤 글을 쓰는 게 어색하면 어쩌지. 또 글이 잘 써지지 않아 버벅댄다면, 얼마나 또 써야 다시 물 흐르듯 쓸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 문득 나는 무엇을 위해 매일 글을 쓰는지 의문이 들었다. 매일 쓴 지 얼마나 되었다는
문구를 쓰기 위해? 나와의 약속이라서? 글을 쓰는 게 그저 좋아서? 부끄럽게도 생각 끝에 방점은 매일 써온 기간을 그저 늘리기 위함이었다는 데 찍히고 말았다.
매일 쓴 지 18개월째다. 나는 이 하나의 문장을 쓰기 위해 매일 써왔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정말 나를 위한 일일까. 사실 처음에는 기간을 늘리는 데 신이 났다. 자신과의 약속에서 시작한 일이었고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걸 가장 힘들어하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에, 기간이 늘어갈수록 내 안의 인내심이 늘어가는 것만 같아 기분이 달떴다.
반면 점점 늘어가는 기간은 나 자신을 옭아매기도 했다. 이렇게 오래 써왔으니 이제 뭔가를 보여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동안 쓴 글을 한데 엮거나,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매일 그 표현이 그 표현 같고, 했던 말을 또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질은 향상되지 않는데 양만 늘어나는 느낌. 내가 혹시 글자 쓰레기를 생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나를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스스로 자처해 글 쓰기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가 있는 나를 끄집어내 잠시 바람을 쐬주자. 매일 쓰지 않아도 괜찮다. 하루 쓰지 않는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제자리로 돌아가 글이 써지지 않더라도 괜찮다. 꾸준히 쓰면 또 써지겠지. 여행만 즐기자. 오롯이 지금을 살자. 살다보면 내 안의 말들이 넘쳐 나도 모르게 글을 또 쓰게 될 것이니.
여행지에서 매일 썼는지 쓰지 않았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자기 전 몇 자 끼적일 때도 있었고, 그저 잠든 적도 있었다. 신 들린듯 써내려간 적도 있었고. 여행지에서만 에세이 세 편 정도를 썼으니 아예 안 쓰진 않았지만, 그래도 평소에 비하면 적은 양을 썼다. 매일이라는 단어를 지우려 했다. 글에서부터 좀 벗어나고 싶었다.
솔직히 오랜만에 나가니 여행을 처음 가본 사람마냥 신이 나서 글이고 뭐고 생각나지 않았다. 이 좋은 걸 그동안 안 하고 어떻게 살았지 싶을 정도로 여행이 좋았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매일 평균 만오천보를 걸었다. 밤이 되면 발바닥이 쑤셨지만, 아침이 밝아오면 지구 끝까지라도 걸을 수 있을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글보다 여행이 좋았다. 예측할 수 없는 풍경과 상황들이 이어지는 게 참으로 달콤했다. 여행 속의 나는 다시 아이가 된다. 세상 모든 게 낯설지만 신기하고, 어떻게든 배우려 하는 동시에 무한한 자유를 느낀다.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있다고 느끼는 게 내게는 여행이었다. 오랜만에 그 감각을 느끼고 있자니 글이고 뭐고 신경 쓰이지 않았다.
문제는 매일 여행만 하며 살 수는 없다는 것. 나는 결국 쳇바퀴 같은 제자리로 돌아가야만 한다.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같은 자리에서 일을 하고 같은 공간에서 밥을 먹는, 그렇고 그런 보통의 날들로 나는 다시 회귀해야만 한다. 그 변치 않는 진실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제야 나는 내가 더는 마음대로 떠돌 수 없는 엄마이자 아내라는 걸 실감한다.
내가 선택하고 채운 것들로 이루어진 일상이었음에도 나는 때로 도망가고 싶었다. 글은 내게 도피였구나. 원하든 원치 않든 결국 반복을 피할 수 없는 삶에서, 내게 글은 그 반복을 피하고 에두르는 일종의 도피처였구나. 그 일상을 벗어나서 매일 새로운 것을 듣고 보자니 내게 글은 필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길에서는 평생을 살 수 없으니 나는 또 제자리로 가야 하고 어떻게든 매일을 살아내야 한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글을 붙들고 이 지난한 삶을 버텨야 하는구나. 근데 우리는 대체 무얼 위해 버티는 걸까. 진저리나는 반복 속에서도 우리는 대체 왜 버티고 서있는 걸까.
내 아이가 자라고 있어서? 목숨이 붙어있으니까? 그렇다고 죽을 순 없어서?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이루고픈 게 있어서? 나는 무슨 이유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때 문득 글이 떠올랐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그럼에도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 내가 살아온 삶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서, 지루한 반복의 삶에 색다른 책갈피를 끼워넣고 싶어서, 쓰고 있구나. 몸부림 치고 있구나.
여행지에서처럼 늘 아이로 살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기에, 어른으로 살기 위해 어른이 되기 위해 어른처럼 보이기 위해, 살아가고 있구나. 차마 입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말들을 활자화하면서 버티고 있었구나. 글자 쓰레기라 하더라도 이렇게라도 버텨내고 있으니 나름 잘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여행지에서는 별 것 아닌 글이, 나의 일상에서는 너무나 절실한 무엇이었다.
떠나기 전 걱정과는 달리 글은 잘 써진다. 다만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고삐가 풀려버린 망아지처럼 퇴고도 잘 되지 않고 생각도 정리되지 않는다. 자꾸 무언가를 놓치고 빠뜨린다. 쓰는 것에 급급해 생각을 덜 했거나 여전히 마음이 여행 중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결국 매일 끼적이게 되겠지만, 이전보다는 좀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 너무 많은 무게를 글에 싣지 않으려 한다. 내가 써온 시간은 단지 숫자에 불과할지도 모르니. ‘18개월이나’가 아닌 그저 ‘18개월째’ 써온 사람일 뿐이니. 어떤 이유로 굴러가는 삶이든, 죽음을 택하는 것보다는 삶을 택하는 게 더 힘들지만 가치있는 선택일 테니. 나는 결국 어쩔 수 없는 동반자라는 듯, 글을 내 곁에 두고 다시 터벅터벅 걸어간다. 숫자는 내려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