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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Mar 28. 2023

말이 많은 엄마

"너처럼 말을 많이 하는 엄마는 처음 봤어."

"너는 엄마의 역할을 정말 열심히 하는 거 같아."


  오랜만에 만난 친한 지인이 내게 한 말이다. 그렇다. 나는 말이 많은 엄마다. 잔소리를 많이 하는 게 아니라, 마치 이 세상에 여행 온 아이들에게 가이드를 해주는 것처럼 설명을 많이 하는 편이다. 언제부터 이랬는지를 곰곰 돌이켜 보니 첫째가 돌도 안 된 시점이었던 것 같다. 엄마, 아빠 소리만 간신히 하던 아이에게 나는 세상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아이가 아직 질문을 던지기도 전이었지만, 나는 마치 모든 말을 아이가 알아듣는다는 듯 말을 했다.


"이건 신호등이야. 빨간불이면 멈춰야 하고, 초록불이면 건널 수 있어. 차가 다니는 곳은 차도라고 하고, 사람이 걷는 곳은 인도라고 해. 여기가 인도고 저기가 차도야."


  마치 쉼 없이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는 아나운서처럼, 나는 온 세상을 아이에게 중계방송하며 다녔다. 처음에는 하루빨리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에 자처해서 시작했지만, 점점 힘에 부치는 날들이 다가왔다. 둘째가 태어나고 둘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함께 있을 때면 종일 질문과 이야기들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마치 누르면 자동으로 재생되는 기계처럼 나는 아이들에게 늘 세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거나 설명을 했고, 아이들은 끊임없이 듣거나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보니 이제는 습관이 되어 버렸다. 내 귀는 항상 아이들을 향해 열려 있고, 내 입은 늘 말할 준비를 하고 있다.


  첫째의 이야기를 듣다가 둘째가 말을 시작하면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첫째와 대화가 끝나면 둘째를 바라보고 이제 말을 해보라고 한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나는 종일 떠드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이 묻진 않았지만 연관된 이야기가 떠오르면 대답을 한 이후에 덧붙여 추가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아이들은 늘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며 내 이야기를 경청하는 편이지만, 때로는 흘려 들을 때도 있다. 중간에 어려운 단어가 나와 아이들이 못 알아듣더라도 나는 허공에 이야기를 뿌리듯, 개의치 않고 말을 뱉는다. 속도 조절도 하지 않고, 그저 빠른 내 말투 그대로.


  이런 나의 행동에는 나름 이유가 숨어있다. 시골에 살다 보니 주변에 학원이 많지도 않고, 아이들에게 사교육을 많이 시켜줄 형편도 되지 않는다. 이 곳에서 아이들을 계속 키우려면 내가 어느 정도 아이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어떤 질문을 던지더라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첫째는 아주 어릴 때부터 동물을 참 좋아했다. 그런 아이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동물책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즐거워 관련 책을 찾아 읽는다. 그리고 책의 내용을 종종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남편에게 이야기를 할 때도 있는데, 그러면 어느새 첫째가 내 곁으로 와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다. 


  말을 많이 하는 엄마를 둔 때문인지, 아이들은 둘다 언어인지와 표현이 또래에 비해 빠른 편이다. 첫째 담임은 아이가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이 알아듣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고 했다. 그러면 첫째가 열심히 설명을 한단다. 그 엄마의 그 아들이라고 해야 할까. 문해력이 책에만 있지 않다는 평소 생각도 이런 내 행동에 한 몫을 했다. 어려운 단어도 거르지 않고 아이들에게 말해왔기 때문인지, 아이들은 책을 금방 자기 스스로 읽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는 자기들끼리 토론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논리를 주장하기 위해 긴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대화가 더 많아지는 게 내게는 무척 큰 기쁨이다. 내가 꿈꾸는 풍경은 어떤 주제든 함께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며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생각이 다르더라도 상관 없이 어떤 이야기든 함께 하며, 세상에 대해 인간에 대해 아이들과 같이 관심을 지속하고 싶다. 내가 계속 읽고 쓰는 이유 중 하나도 아이들과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말이 잘 통하는 엄마이고 싶다. 나이가 들더라도 어떤 편견 없이 아이들의 커가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되고 싶다.


  아이들은 내게 수시로 질문을 던진다. 질문은 단어의 뜻과 같은 간단한 것일 때도 있지만, 때로 어른들의 편견을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한다. 얼마 전 첫째는 내게 물었다. 엄마 근데 책에서 똑똑한 친구들은 왜 전부 안경을 쓰고 있어? 둘째는 워킹맘의 뜻을 물었다. 뜻을 알려주었더니 첫째가 반문한다. 근데 직장을 다니지 않는다 해도 엄마들은 일을 많이 하잖아? 주부도 워킹맘 아니야? 둘째는 어른들이 넥타이를 매는 게 왜 더 예의를 갖췄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내가 유독 말이 많은 엄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설명을 많이 하는 게 혹시 싫어? 아이들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아니 좋은데. 괜찮아. 아이들의 말에 툭툭 받아치고 설명하는 습관도 언젠가는 잦아들 것이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자라면 질문도 줄어들고, 나와 대화하는 시간도 적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엄마와 하는 대화가 가장 경계가 없고 즐겁다 느끼기를 바란다. 어떤 고민도 어떤 의문도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엄마이고 싶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아이들과 끝없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말이 참 많은 엄마다. 잔소리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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