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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Apr 03. 2023

알 수 없는 너의 마음

"어머니 금요일날 OO가 어린이집 빠진다고 했죠? 그러면 대신 목요일에 생일 파티 할게요."

"하지 마세요! OO가 생일 파티 하기 싫대요. 그냥 모른 척 넘어가셔도 돼요."

"네??"

"OO가 직접 결정한 거니 정말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그럼 선물은 줘도 될까요?"

"슬쩍 주시는 건 괜찮을 거예요!"


얼마 전 둘째의 생일날을 앞두고 어린이집 선생님과 주고받은 문자다. 둘째는 어린이집에서 생일 파티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목받는 걸 싫어한다.


어린이집을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독서상 시상식이 있었다. 독서통장이라는 노트가 있고 거기에 매일 읽은 책 제목을 적어서 내면, 가장 많은 책을 읽은 어린이에게 매달 상을 준다. 별 생각 없이 책 제목을 적어내려갔고, 한 달이 지나 독서통장을 어린이집에 갖다 냈다. 그랬더니 제일 책을 많이 읽은 어린이로 덜컥 뽑혔다. 둘째는 그날 받은 상장과 부상을 가방에서 꺼내면서 말했다.

"엄마 독서통장 앞으로 쓰지마."


상장만 받는 것도 아니고, 부상으로 장난감도 받는데 아이는 극구 거부했다. 그 이후로 아무리 책을 읽어도 독서통장은 건드리지도 못하게 한다. 아이는 매번 시상식에 오르는 친구들에게 열렬히 박수만 보낸다. 자신은 상이나 부상은 필요 없다며.


오랜만에 친구들 모임이 잡혔다. 날짜를 잡고 보니 모임 마지막 날이 둘째의 생일이었다. 아차 싶었다. 비행기표도 다 끊은 터라 바꾸기가 애매했다. 그냥 거기 가서 다같이 생일 파티 하지뭐. 둘째한테 이야기 했더니 상관 없다고 쿨하게 말한다. 아이의 생일인 걸 알고 한 친구가 맛있는 케이크까지 미리 준비를 했다. 그 이야기를 아이에게 전했다. 아이는 표정의 변화가 별로 없었다. 대신 단호하게 말한다.

"생일 파티는 안 할거야."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니 친구들이 의아해 했다. 다같이 촛불 켜고 노래하면 기분 좋을텐데? OO는 싫대. 그냥 케이크만 나눠먹자. 우리는 정말 케이크만 나눠 먹었다. 각자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생일 축하해라고 속삭였을 뿐이다. 둘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서운해 하지도 않고 케이크만 맛있게 먹었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케이크를 하나 샀다. 그래도 생일인데 집에서 가족끼리는 생일 파티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는 자신이 먹고 싶은 것으로 하나 골랐다. 외식을 하자니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못 이기는 척 알겠다며 따라 나섰다. 아이가 좋아하는 고르곤졸라 피자를 가장 먼저 아이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아이 생일이니까. 밥을 다 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내 생일이라고 나한테 먼저 줄 필요 없어."

이런 것까지 거부할 줄이야. 대체 뭐지 이 작은 영혼은.


집에 돌아와서는 조촐하게 케이크에 촛불만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아이는 그제야 세상 가장 환한 얼굴로 웃으며, 파티를 즐겼다. 파티라고 해봤자 케이크가 전부인데. 아이는 배가 불러 케이크는 못 먹겠다며 촛불을 끄자마자 테이블을 떠났다. 일주일 전에 미리 선물을 받고 싶어해서 줬던지라 이번 생일에는 선물 증정식도 없다. 종일 생각날 때마다 생일 축하한다고 속삭여주긴 했지만, 영 찜찜했다. 정말 괜찮은 걸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있었던 결혼기념일이 떠올랐다. 3월엔 이래저래 가족 행사가 많다. 하지만 우리집은 조용하기만 하다. 이번 결혼기념일은 11주년이었다. 10주년 때도 아무 것도 안 하고 넘어 갔는데, 11주년이라고 다를까. 나는 기념일에 무감각한 편이다. 바라지도 않고 내가 챙기지도 않는다. 남편은 퇴근 길에 전화를 걸어왔다. 정말 집에서 밥 먹을 거야? 응 집으로 와. 그래도 나가서 먹지. 비와. 어딜 나가. 그냥 집에서 먹자. 귀찮아. 남편은 떨떠름하게 전화를 끊고 못이기는 척 집으로 왔다.


외식이라도 하려 했지만, 저녁 내내 내리는 비에 아이들과 번잡스럽게 나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케이크라도 하나 사오려 했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맞지 않아 사오지 못했다. 그러니 케이크도 없고, 외식도 없는, 그냥 매일 먹는 똑같은 밥을 먹으며 결혼기념일을 보냈다. 나는 늘 그렇듯 아무 선물도 준비하지 않았고, 남편은 갑자기 돈을 내 통장으로 보내왔다. 사고 싶은 걸 사라며. 사고 싶은 게 딱히 없는 사람이라 안 살 걸 알아서인지, 남편은 꼭 사라고 말을 덧붙인다. 응 뭐... 말 끝을 흐리고 말았다.


누가 보면 참 심심하게 산다고 할 만하다. 멋대가리 없는 집안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 엄마에 그 아들이라고 해야 할까. 결혼할 때는 프로포즈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 굳이 필요 없다고 했고, 남편은 못내 아쉬웠는지 꽃다발을 건네 주었다. 그게 끝이었다. 생일이야 케이크에 초를 꽂아 노래를 부르고 나면 파티는 끝. 별 장식도 없고, 특별한 이벤트도 없다. 그래도 아이들은 촛불이 켜진 마법같은 순간을 사랑하고 무척 즐긴다. 꿈처럼 짧게 끝나버리고 말지만.


내가 왜 기념일에 연연하지 않는지 궁금했는데, 둘째를 보며 이게 기질인가 싶다. 별 게 다 기질이다 싶기도 하고. 그래도 어릴 적엔 시끌벅적하게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생일 파티를 하는 게 퍽 좋았던 것도 같은데. 이게 나의 기질이 맞는 걸까. 어릴 적 사랑을 많이 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란 터라, 자존심 강한 성격에 스스로 기념일 챙기는 걸 밀어낸다고 오래 생각해왔다. 나이가 들면서는 매일 평화롭게 서로 배려하며 살아가는 게 시끌벅적하게 기념일을 챙기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굳이 이벤트를 하지 않았다.


어릴 적 나처럼 사랑을 적게 받는 것도 아니고, 평소 사랑이 넘쳐 흐르는 둘째는 왜 요란한 생일을 거부하는 걸까. 심지어 음식도 자신에게 먼저 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아이. 그래도 행여나 조금이라도 서운함이 있을까 싶어 자기 전 아이를 꼭 끌어안으며 정말 생일 축하한다고,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자신도 사랑한다며 나를 마주 끌어안는다. 이걸로 정말 충만할 걸까. 괜찮은 걸까. 내가 낳았지만 알 수 없는 영혼이다. 나도 아직 나를 다 모르는데, 내 자식이라 한들 다 알까 싶다마는.


여차저차 3월을 보내고 4월로 건너왔다. 주말에는 벚꽃이 이제 져버릴 것 같아,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사람이 많은 유명지는 아니지만, 어느 곳보다 눈부신 벚꽃이 날리는 곳. 제2공항이 생기면 사라지는 곳이라 그런지, 그곳의 풍경은 숨막히게 아름다웠다. 슬픔이 깃든 아름다움은 봄날인데도 처연했다. 그 풍경 속을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천국이 있다면 분명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다. 천국 같아. 내 말에 첫째가 묻는다. 엄마 하느님 믿어? 믿진 않아도 어딘가 있다면 말이야.


화려한 기념일은 없더라도 매일을 기념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면 되겠지.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자 우리. 그게 더 어려운 거야. 더 눈부신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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