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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Apr 08. 2023

움직이는 모든 걸 사랑하는 아이

  첫째는 동물을 사랑한다. 여기서 동물이라 하면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포근한 털이 달린 친숙한 포유류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그런 짐작은 성급하다. 아이는 말 그대로 동물(動物),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사랑한다고 보면 된다.


  아이가 동물을 유독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건 돌 무렵이었다. 당시에는 동물 중에서도 유독 코끼리를 좋아했다. 아이의 요청에 따라 나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마리의 코끼리를 스케치북에 그려야 했다. 아빠코끼리 엄마코끼리 형아코끼리 아가코끼리 할아버지코끼리 할머니코끼리 고모코끼리 이모코끼리 삼촌코끼리 등등. 툭하면 책장에 꽂힌 책들 중에 코끼리가 나온 책을 모조리 빼서 읽어달라고 졸랐다. 그 중에는 새끼 손톱만한 코끼리가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 없이 그저 그림속 침대에만 놓여 있던 책도 있었다.


  내가 코끼리 그리기의 달인이 되어갈 무렵, 아이는 갑자기 공룡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공룡의 이름은 유독 어려워서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짚어가며 아이에게 이름을 알려주고 특징을 읽어주었다. 아이는 빠르게 온갖 공룡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룡 이름과 생김새를 익히더니, 초식과 육식 잡식 등으로 나누고, 나중에는 시대와 지역, 크기까지 마스터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아이는 공룡 이름을 읽다가 한글을 뗐다. 그 와중에 아이가 내게 공룡 그림을 요청하지 않은 건 천운이었다.


  아이의 지식에 발맞춰 나도 열심히 공룡을 알아갔다. 그러나 아무리 외우려 해도 아이의 수준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아이는 이름만 대도 시대와 크기와 특징을 줄줄 말하는데, 나는 스무 개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도무지 입력이 잘 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그래도 어디가서 아줌마치고 공룡 좀 안다고 할 수 있겠다고 뻐기던 중, 아이는 갑자기 곤충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공룡은 당장 만날 수 없지만, 곤충은 시골살이 하는 아이에게 언제든 지천에서 대면할 수 있는 친구였던 것이다.


  아이는 온갖 곤충을 잡기 시작했다. 잡는다기보다는 줍기 시작했다. 돌만 들추면 나오는 공벌레는 하루에도 수십 마리를 잡았고, 허브밭을 좋아하는 섬서구메뚜기도 늘 잡아들이는 단골 곤충이었다. 호박을 좋아하는 노린재, 어디서나 바쁘게 움직이는 개미떼, 곤충 오브 곤충인 사마귀와 장수풍뎅이 등. 아이는 언제든 눈을 크게 뜨고 곤충을 잡고 풀어주고 또 잡고 풀어주었다.


  곤충만 좋아하고 잡은 건 아니었다. 온갖 달팽이와 지렁이, 거미도 아이는 매의 눈으로 잡아들였다. 나는 온갖 통을 대령해 생명들을 거둬야 했다. 이러다 죽겠다, 똥 치우기 힘들다, 나는 어떻게든 아이를 설득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놓아주도록 유도해야 했다. 아이는 그때마다 아쉬워하면서도 또 쿨하게 놓아주었다. 아이는 웬만한 건 다 맨손으로 잡는다. 거미도 지렁이도 달팽이도 공벌레도 집게벌레도. 아이의 옷은 늘 얼룩 투성이고 손은 새까맣다.


  아이가 이렇게 동물을 좋아하고 용감한(?) 건 남편과 나의 영향도 크다. 우리 부부는 벌레를 크게 무서워하지 않는다. 남편은 지네와 바퀴벌레는 끔찍히 싫어하지만, 나머지는 별로 개의치 않아 한다. 나도 다른 건 몰라도 지네와 바퀴벌레는 좀 힘들었는데, 섬살이 십 년차가 되면서 그런 존재들도 너그러이(?)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무엇에도 편견을 갖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이가 어릴 적부터 아무리 낯설고 혐오스러운 생명체를 맞닥뜨리더라도 쉽게 놀라거나 부정적인 단어를 뱉지 않았다. 징그럽다거나 무섭다거나 혐오스럽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키워서인지 아이는 혀를 낼름 거리는 뱀과 꼬물거리는 새끼 지네를 보며 귀엽다고 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아이의 생각을 이해하려 부단히 애를 써야 했다. 뱀이 누군가에게는 귀여워 보일 수도 있구나. 지네는 아무리 봐도 정이 안 가던데, 특히 거대한 지네를 보면 이 낯선 생명체는 지구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던데, 지네도 새끼는 귀엽게 보일 수도 있구나. 편견을 걷어내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공감이 차오르기도 했다.


  아이는 얼마 전 학교에서 스스로 채집 동아리를 만들었다. 2학년도 그런 걸 만들 수 있냐고 물으니 벌써 신청서를 써서 냈단다. 자신이 동아리 회장이라면서. 동아리 기준 인원인 다섯 명을 순식간에 반 친구들로 채우더니, 동아리 첫 모임도 가졌다. 아이는 멤버들과 학교에 있는 작은 연못에서 소금쟁이도 잡고, 각종 풍뎅이, 개미, 공벌레 등을 잡았다 놓아주었다고 했다. 첫번째 동아리 모임을 한 뒤 인기가 폭발해 최대 인원인 열두 명이 모두 찼단다. 전체 학생수가 예순 명이 조금 넘는 학교에서 열두 명이라니.


  아이는 한달 전부터 집요하게 나와 남편을 조르고 있다. 도마뱀을 키우게 해달라고. 매일 삼십 분씩 아이패드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하는데, 그때마다 게임만 하던 아이가 언제부턴가 도마뱀 잘 키우기 동영상을 보고 있다. 온갖 애완 도마뱀 종류를 찾아보고 비교하며 나에게 브리핑을 한다. 레오파드 게코는 키우기 쉽고 수명이 15년이나 된다, 비어드 드래곤은 수명이 7-8년 정도로 짧고 사막에서 살던 녀석이라 수분 공급을 자주 해주지 않아도 된다, 크레스티드 게코는 벌레가 아닌 사료만 주며 키울 수도 있다. 아이는 또 한번 엄마의 동물 지식을 업그레이드 시켜주고 있다.


  처음에는 아이가 아빠를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남편은 동물을 참 좋아하고 동물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사육사나 수의사가 됐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동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반면 나는 동물에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발 맞추다보니 어떨결에 동물의 세계가 참 흥미롭다는 걸 알게 됐다. 급기야 스스로 동물 책을 찾아보고, 다시 태어난다면 진화생물학 같은 걸 전공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겁없이 잠자리를 손으로 잡고, 사마귀 두 마리를 싸움 붙이며 놀던 어린 내가 떠올랐다. 애초에 무관심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도마뱀을 키울 여건이 되지도 않지만, 동물을 돈 주고 거래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말을 아이에게 꺼내기가 쉽지 않다. 동물을 끔찍히 사랑하는 아이를 키우면서, 동물권을 이유로 동물원에 가지 않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말해야 하고 아이를 설득해야 한다. 우리가 키우는 것보다 자연에서 사는 게 더 좋은 거라고, 생명을 키우는 건 엄청난 책임이 필요한 일이라고. 수차례 말해도 아이는 꿈쩍하지 않는다. 인간과 잘 살 수 있는 동물도 있고, 자신은 누구보다 잘 돌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달 넘게 실랑이를 벌이지만 아이는 어떻게든 도마뱀을 키울 생각에 사로 잡혀 있다. 급기야 나는 악몽도 꿨다. 도마뱀과 함께 분양받은 거북이가 알고보니 새끼를(알도 아니고) 배고 있어서 온 집안이 새끼 거북으로 가득차는 꿈이었다. 남편은 로또각이라고 했지만, 일확천금이 내 생애 있을 거라 믿지 않는 나는 사지 않았다.


  수명이 긴데 키우다 너가 군대 가면 어쩌냐, 진짜 키우면 가고 싶다던 세계여행도 못 간다, 결국 너가 아닌 엄마아빠가 키우는 동물이 될 거다, 별의 별 핑계를 다 대봐도 소용이 없다. 생물학과에 가면 연구실에 동물이 많을 거라고도 해봤지만, 아이는 지금 당장 도마뱀을 키우고 싶단다. 용돈이라도 모아 자신이 사겠다고 하는 아이, 어쩌면 좋을까. 고민이 깊어지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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