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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Apr 05. 2023

더할 나위 없는 날들

  지난밤 자리에 누우며 생각했다. 오늘 나는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떠 밤에 눈을 감기 전까지 단 한순간도 낭비하지 않고 촘촘히 해야 할 일로 가득 찬 하루를 보냈다. 이른 아침부터 회의에 회의가 이어졌고, 카페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다음 주 출산을 하는 친구가 간신히 시간을 내어 카페에 들렀고 지인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곧이어 아이들이 나란히 귀가를 해 간식을 챙기고, 오프라인 글쓰기 모임 합평 준비를 했다. 가족들과 저녁을 챙겨 먹고, 회의록을 작성해 올리고. 아이들을 재우고, 가벼운 글까지 하나 쓰고.


  목소리도 잘 안 나오는데 뭐가 그리 바빴는지. 눕자마자 설핏 잠에 빠져들었지만 새벽녘 잠에서 깼다. 오후 늦게 커피를 마신 탓일까. 책 읽어줄 때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봐 염려가 쌓여서일까. 두서없는 생각을 걷어내고 걷어내며 가수면 상태로 머물러 있다 결국 아침이 밝았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아침이었다. 비를 뚫고 둘째를 챙겨 보내고, 첫째와 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목캔디 하나를 물고 교실에 들어갔다.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 아이들과 통성명을 하고 책을 함께 읽었다. 이만큼이라도 목소리가 나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마음을 쓸어내리며.


  또 회의가 이어지고 다시 카페로 와서 글쓰기 모임을 하고, 손님을 치르고. 마음 속 짐처럼 남아있던 일들을 모두 치른 뒤 잠시 멍하게 앉아있었다. 책을 열까 글을 쓸까 책축제 준비를 할까. 그러다 드는 생각, 잠시 그저 가만히 있자. 손님이 끊긴 시간을 이용해 눈의 초점을 흐리게 한 뒤 고개를 떨궜다. 거세게 몰아치던 비바람은 어느새 잠잠해졌다. 봄비의 경제적 가치가 수천억 원이라는데, 이번 비로 대지는 해갈이 되었을까. 목이 나아진 만큼 미세먼지가 걷힌 공기도 청량하다. 벚꽃은 다 떨어졌겠구나. 꽃이 떨어진다고 봄도 끝나는 건 아닌데, 괜히 봄마저 다 흘러간 듯 쓸쓸하다.


  멍하니 있자니 과제처럼 남아있는 얼에모가 떠오른다. 얼룩소 에세이 쓰기 모임. 뭔가 마무리 글을 써야 할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있는데 쓰지 못하고 빙빙 겉돌기만 한다. 나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그렇다고 거창하게 글을 써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그저 조용히 마무리 짓고 싶은데. 한참 걸어 나왔지만 문을 아직 열어둔 것처럼 뒤가 찝찝하다. 찬바람이 문틈으로 솔솔 들어오는 것만 같은 느낌.


  얼에모 이야기를 들은 오프라인 모임 멤버가 내게 물었다. 그게 언니한테 어떤 도움이 돼요? 내가 합평을 받기보다 하는 입장인 모임에서 내가 과연 얻을 것이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내 대답은 언제나 예스.


“여러 사람의 삶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아요. 난 항상 지금 이 사람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거든요. 과거가 그 사람은 아니지만, 그 사람이 되는데 분명 영향을 미쳤을 테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화가 잘 안 나요."


  말을 이어가다 나도 모르게 도달한 결론이었다. 삶을 더 깊게 들여다볼수록 화가 잘 나지 않는다. 육아를 하며 아이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할수록 화를 덜 내게 되는 것처럼. 타인을 향한 시선에도 너그러움을 더해가는 일이 내게는 관찰이고 합평이었다.


  합평은 천천히 읽는 일이다. 속독이 만연한 세상에서 멈춰 서고 또 멈춰 서며 눈을 고정하는 일이다. 연필 한 자루를 손에 쥐고 동그라미도 치고 밑줄도 치면서, 글쓴이의 마음을 따라간다. 별생각 없이 쓴 표현에도 여지없이 그 사람이 담긴다. 모두의 인생에는 흘러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어떤 삶도 쉽지 않다는 걸 알아채면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기적이 되니까. 그 기적 같은 한 명 한 명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 내게는 에세이 합평이다. 평면적이었던 인물이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가장 긴장을 많이 하는 건 나 자신이다. 합평을 하려니, 내 말에 힘을 실으려니, 내 글을 제대로 써야 했다. 오프라인 모임을 진행하면서도 시작점에는 내가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지만, 날이 갈수록 가장 수혜를 입은 건 나였다. 결코 주기만 하는 관계는 세상에 없는 듯했다. 내가 준 만큼 나는 돌려받았다. 스스로가 부끄러운 글을 쓰고 있진 않은지, 거짓의 감정을 싣진 않는지, 표현이 서툴진 않은지. 나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았다. 합평을 하는 일은 남을 꼬집는 동시에 나를 다잡는 일이다. 남의 통찰을 엿보는 동시에 나의 가치관을 돌아보는 일이다.


  혼자 쓰면 외롭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내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나조차도 헷갈린다. 그 글이 그 글 같고, 했던 소리를 또 하고 있는 것만 같다. 모임이라는 합평이라는 강제가 들어감으로써 적절한 긴장이 더해지면, 단어와 문장을 뜯어보게 된다. 나의 글쓰기를 돌아보게 된다. 내 삶을 곱씹게 된다.


  마치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이들을 가이드하는 셰르파처럼. 나는 남을 돕는다는 핑계로 나의 근육을 단련하고 있었다. 그러니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거창하게 마무리 짓기도 뭣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니 어딘가 아쉽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수필인 만큼, 힘을 빼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나열한다. 그렇게 지난 두 달의 여정을 끝내려 한다.


  가장 많이 가져간 사람은, 누구보다 최선을 다한 사람일 것이다. 그건 자기 자신만이 안다.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글을 썼는지, 사유를 발전시키려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 타인의 글에 얼마나 정성껏 합평을 했는지. 쏟은 노력만큼 가져갈 수밖에 없다. 글쓰기는 정직한 세계다. 나는 그 정직함이 참 좋다.


  감사. 두 글자면 충분한 것을 또 주절주절 길게 떠들었다. 감사한 날들이었다. 더할 나위 없는 날들이었다. 그 말이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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