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너 어린이집 안 가.”
찡그리고 있던 둘째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진다. 비실비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결국 함박웃음 꽃을 피운다. 아이들도 벌써 휴일을 좋아한다. 친구들이랑 만나 신나게 노는 것도 즐기지만, 편하게 집에서 뒹굴대거나 밖으로 나들이 갈 수 있는 휴일의 달콤함도 아주 잘 알고 있다.
듣고 있던 첫째가 묻는다.
“엄마 왜 안 가? 나도 안 가?”
“아니, 아빠도 출근 안 하시는데, 너는 가.”
“왜 나만 가?”
이 상황을 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까.
“오늘은 근로자의 날이라고,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날이야. 그래서 아빠도 출근 안 하시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쉬시는 거야. 그런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학교 선생님들은 근로자로 보지 않아서, 학교는 문을 열어.”
설명을 하면서도 참 앞뒤가 맞지 않는다. 어린이집 선생님도 학교 선생님도 모두 같은 선생님인데, 왜 학교 선생님은 쉬지 못한단 말인가. 같은 노동자인데 왜 이렇게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듣고 있던 첫째가 말한다.
”그게 말이 돼? 선생님들도 일을 하는데. 대체 누가 그런 법을 만든 거야?“
듣고 있던 둘째가 말한다.
“나중에 내가 크면 선생님들은 쉬게 하고, 선생님들 못 쉬게 한 사람들은 다 일하게 할 거야.”
아이들은 참 훌륭한 판관이다.
그렇게 노동절날 첫째는 학교를 가고, 나는 카페 문을 열고, 남편과 둘째는 쉬어갔다. 노동절은 휴일일까, 휴일이 아닐까. 종일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여러 얼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학교에는 선생님만 있지 않다. 행정실에 근무하는 분들, 급식실에 종사하는 분들, 보건선생님과 청소를 맡아주시는 분, 아이들 방과후 수업을 해주시는 선생님들까지. 학교가 쉬지 않으니 이분들도 모두 쉬어가지 못한다. 이분들에게 쉬어가는 가족이 있다면, 그 가족이 돌봄의 손길을 필요로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근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혼자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의 둘째도 아직 어린이집에 다니니, 친구는 아침부터 둘째를 어딘가에 맡기고 출근을 했을 것이다. 내내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며 하루를 보냈을 테지. 읍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친구도 떠올랐다. 공무원도 쉬지 못하니, 그 친구는 부부가 공무원이니, 어린이집에 다니는 딸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출근했을 것이다.
노동절만 되면 마음이 무겁다. 일하는 모두가 함께 쉬어가지 못하는 날. 남들 쉴 때 나 혼자 일한다는 생각이 들면 몸과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나도 노동자인데 나는 왜 쉬어가지 못하나 싶은 마음에 울분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돌봄이 필요한 가족이 쉬어가는 경우,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누군가는 돌봄을 위해 손을 내밀어야 하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누군가는 그 짐을 나눠서 짊어져야 하고.
이번 노동절도 종일 무거운 마음으로 지냈다. 아이들에게 이 이상한 상황을 설명하는 것부터가 난해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향해 밝게 웃어주시고, 곧 있을 학교행사 준비로 여념이 없는 선생님들을 마주하면서, 더불어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준 다른 분들의 얼굴을 보면서, 마냥 죄송스럽고 감사하기만 했다.
내년이라고 다를까. 우리는 언제쯤 모든 노동자가 노동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마음 편히 다같이 쉬어갈 수 있을까. 가정의 달 오월을 노동절로 시작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가정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노동절이라니. 밥벌이는 결국 나 자신과 가정을 위한 게 아닌가. 올해도 어김없이 씁쓸한 기분으로 오월을 시작한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