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명을 버리려다가,

by 박순우

아침에 밥을 먹다 말고 첫째가 갑자기 묻는다.

"엄마, 엄마는 책 안 내?"

이 녀석 내 속에 들어왔다 나가기라도 한 걸까. 그렇지 않아도 요즘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책 욕심 없다, 굳이 독립출판까지 할 필요가. 이런 생각 속에 살았는데, 쓴 글이 너무 많아지면서 정리할 필요가 생겼다. 사진이 너무 쌓여 현상을 하고 앨범을 만들듯, 나도 내 글을 온라인이나 노트북 안이 아니라 실물로 정리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내고 싶어. 안 그래도 생각 중이야."

첫째가 말한다.

"엄마가 책 내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 같아."

"진짜? 그럴까?"

가만히 듣고 있던 둘째가 말을 보탠다.

"카페에서 팔면 되겠다!"

예쁜 녀석들. 엄마의 책까지 생각해주고 말이지. 내친 김에 요즘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하는 문제 하나를 물어봤다.


"엄마 박현안 이름 이제 안 쓸까 하는데, 엄마 진짜 이름으로 책 내면 어떨까?"

첫째가 대답한다.

"왜? 난 박현안 이름 좋은데?!"

둘째도 맞장구를 친다.

"나도."

"엄마 실명보다 박현안이 더 좋다고? 박현안에 너네 이름이 한 글자씩 들어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첫째가 말한다.

"박현안 소설! 이러면 멋질 거 같아."

둘째가 묻는다.

"소설이 뭐야?"

"소설은 이야기야."

흠 이게 아닌데... 박현안 이름을 버리고 실명으로 가려 했는데.


오마이뉴스에서 실명으로 시민기자 활동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시민기자 선배의 권유로 슬쩍 가입을 해두고 소심하게 글을 하나씩 하나씩 올려왔다. 브런치나 얼룩소에 비해서는 훨씬 적은 양이었다. 아무리 시민기자라고는 하나 '기사'라는 타이틀이 있다보니, 깜이 되어 보이는 글만 송고를 했다. 그곳은 자유롭게 글을 올리더라도 채택이 되어야만 공개가 되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글을 골랐다.


그렇게 올린 글 중에 몇 개가 운좋게 탑에 걸리기도 했다. 신이 나서 지인들에게 자랑하며 링크를 보내주었다. 노출이 많은 만큼 무시무시한 댓글도 많이 달렸다. 오마이뉴스에 기사가 실리면, 포털에도 페이지가 생기는데 그곳의 댓글은 정말 어나더월드였다. 마치 디스토피아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번에는 노키즈존 글을 썼는데, 소재가 소재이니 만큼 역시나 반응이 살벌했다. 눈을 가리고 애써 모른 척 했다. 저 글은 이제 내 글이 아니다. 그들의(?) 글이다. 내가 썼지만 내 손을 떠났다...


오프라인 글쓰기 모임에서도 나는 실명을 사용한다. 내 실명을 알고 있는 분들과 모임을 시작했기에. 함께 보는 인쇄물에는 실명 석 자가 적힌다. 그 글이 온라인으로 오면 글 옆에는 다시 박현안이 따라 붙는다. 그렇게 실명과 필명을 오가며 글을 쓰다 보니 스스로 정체성의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 글 검색하면 실명, 필명 다 나오는데, 굳이 두 개로 나눠서 갈 필요가 있을까. 이 이름 저 이름 쓰지 말고, 확 실명을 까고 활동을 해볼까. 책도 낸다면 실명이 낫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가던 중에, 아이들의 의외의 반응과 마주한 것이다.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반응은 아이들과 비슷했다. 현안이라는 이름 너무 좋은데요, 투 트랙으로 가시죠.


고민이 깊어진다. 내 필명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얼룩소 가입하면서 5초만에 얼렁뚱땅 만들어낸 이름을 이렇게 오랫동안 써먹을 줄이야. 당시만 해도 내 실명을 앞에 내놓을 만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과연 내가 육아를 하고 카페를 지키면서도, 글 쓰는 삶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숨고 싶었던 것도 같다. 살면서 크게 잘못 한 일은 없지만, 등진 사람은 몇 있으니, 작은 두려움도 작용했다. 숨어야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믿었던 것도 같고.


이제는 너무 많이 썼기에, 신상이 이미 에세이상에서 다 털렸기에, 그러려니 한다. 어쩌면 나는 박현안이라는 가면을 쓰고 글을 쓰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진짜 내 이름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결국 진짜 나를 대면하는 일이기에, 나를 더 잘 알고 스스로를 치유하려 써왔기에, 점점 진짜 나를 만나게 된 건 아닐까. 그래서 이제는 내 글 옆에 나란히 실명을 두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걸까.


박현안으로 산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실명 만큼이나 익숙해진 이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인 것 같지만 내가 아닌 것도 같다. 내가 원하는 모습만을, 예쁘게 포장한 모습만을 담고 있는 이름인 것도 같다. 실명을 바라본다. 40년 넘게 나와 함께 살아온 이름이다. 한때 밀어냈지만, 언제부턴가 애정을 갖게 된 나의 이름이다. 켜켜이 쌓인 나의 시간을, 나의 눈물과 환희와 방황과 행복을 모두 알고 있는 나의 이름이다.


이제는 내 이름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예쁘고 정제된 모습만이 아니라, 그 어떤 부족한 모습도 그저 담아내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많아진다. 뭐가 이리 어려운지. 남의 눈에는 별 것 아닐 일이, 먼훗날에는 추억처럼 되새기고 말 일이, 지금의 내게는 이토록 중대하다. 태어나자마자 내 뜻과는 상관 없이 이름을 갖게 된 것처럼, 지금 내게도 누군가가 이름을 내려준다면 좋겠다. 마치 산신령처럼, 이렇게 하거라! 하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으악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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