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치유가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한 번 들으면 그 뒤로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한정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말들이 있다. 내게는 이 말이 그랬다. 글이 치유가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그 말. 그녀의 입에서 이 말이 흘러나오기까지 그녀 역시 제법 긴 고민을 했을 것이다. 함께 하는 글쓰기 모임이 치유를 목적으로 한다는 걸 알게 된 뒤의 말이었다. 누구보다 글에 애정을 갖고 적잖은 세월 글을 써온 사람이었다.
오롯이 즐거움으로 글을 써온 사람에게서는 나와는 좀 다른 향기가 난다. 사람도 글도 단단한 바닥 위에 쌓아 올린 집처럼 거침없고 경쾌하며 재기 발랄하다. 글 위에서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느낌. 한 명의 작가에 꽂혀 에세이며 소설이며 여러 글을 접하다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이 흐리게나마 그려지는 경우가 있다. 사랑받으며 자랐구나. 든든한 지원군이 있구나. 단단한 토대 위에 자신만의 집을 성실히 지어 올리고 있구나.
비교는 결국 나를 갉아먹는다는 걸 알면서도 은연중에 그 작가의 삶과 나의 삶을 맞대본다. 작가의 삶이라는 게 꼭 정해진 게 아닌데, 고통받는 삶을 살아온 사람만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의 굴곡을 가늠하고 있다. 그 사람 안에 얼마나 풍성한 재료가 담겨 있는지 궁금하다는 핑계를 대며.
나와 꽤 비슷한 아픔을 지닌 작가들도 적잖다. 글 사이사이 숨길 수 없는 아픔이 배어 나오면 나도 함께 젖어버리고 만다. 깊고 깊은 상처로 글도 사람도 위태로워 보이지만, 그럼에도 묵직하면서 밀도 있는 글을 써내는 사람들. 모래성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처를 보듬고 사유를 발전하며 자신만의 집을 짓는 사람들. 그런 이들을 만나면 대뜸 반가운 마음부터 든다. 다름보다는 유사함이 더 호감을 유발하는 요소인 걸까.
부모가 결핍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내가 태어난 토양이 단단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문득문득 나를 울컥하게 만든다. 나는 살기 위해 쓸 수밖에 없었는데 누군가는 그저 즐거워 글을 썼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수백 개의 글을 배설한 뒤에야 쓰는 즐거움에 도달할 수 있었는데, 누군가는 굳이 배설하지 않아도 쓰는 흥겨움에 쉽게 다다랐다는 걸 눈치챘을 때. 나는 이를 차마 가볍게 떨치지 못하고 웅크리고 앉아 내 처지를 비관하곤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결핍이 결핍으로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니라는 것. 어둠 속에서 비관만 하고 있으면 자기 연민에 빠질 뿐이라는 걸 나는 결핍을 통해 배웠다. 한바탕 눈물을 쏟고 나면 눈물자국을 지우며 다시 저벅저벅 빛이 새어 나오는 곳으로 걸어 나온다. 그리곤 떠올리는 문장 하나,
"그 누구에게도 삶은 쉽지 않다."
단단한 토양 위에 집을 지은 사람들이 아무리 밝아 보여도 어딘가 분명 어둡고 힘든 구석이 존재한다고.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고, 그들이 조금 더 빨리 일어나는 것뿐이라고, 명과 암을 동시에 갖지 않는 인생은 없다고. 나는 나를 힘겹게 설득한다. 생명의 다양성을 인정하듯, 삶의 다양성도 인정하자고. 차마 삶으로 줄을 세우진 말자고 나는 나를 꼬집는다.
이따금 내 안에 쌓아둔 사랑이 없는데 바닥까지 긁고 또 긁어내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더는 퍼올릴 게 없어 막막할 때면 아이들을 꼭 껴안는다. 엄마를 사랑해 줘. 엄마를 안아줘. 내 속에서 나온 아이들은 묻지도 않고 그저 나를 안아준다. 나를 사랑해 준다. 사랑의 원형과도 같은 그들의 사랑을 받으며 나는 나를 채운다. 그리고 그 사랑을 헐어 다시 내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그러니 나의 사랑은 원천이 내가 아닌 아이들이다.
집을 지으려고 땅을 파던 날, 누가 화산섬 아니랄까 봐 굴착기를 꽂는 족족 커다란 바위가 튀어나왔다. 예상보다 오래 걸리겠는데. 토목과를 나왔다는 소장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럼 어쩌죠,라고 묻는 내게 그가 대답했다. 돌바닥이 파는 건 오래 걸리지만 집 지어놓으면 제일 튼튼해요. 말없이 한참 굴착기의 반복운동을 바라보다 그가 덧붙였다. 돌바닥보다 더 좋은 건 사실 모래예요. 모래에 짓는 게 제일 단단하게 집을 지을 수 있어요.
바닷가의 모래만이, 파도에 부딪혀 속절없이 지워지고 허물어지던 모래성만이 내 머릿속 전부였기 때문일까. 그날의 그 말 역시 내 머릿속에서 오랜 시간 맴돌았다. 오래전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종종 그 말을 떠올린다. 한낱 힘없는 모래 같다 생각했던 나의 토양을 지그시 바라본다. 어쩌면 나의 집도 더 야무지고 굳세게 쌓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웃긴 글이 쓰고 싶다. 재미난 글, 맛깔난 글, 읽는 맛이 있는 글. 깔깔대며 읽지만, 다 읽고 나면 자연히 손에 작은 무언가 하나를 쥐게 되는 그런 글. 한없이 진지하고 무겁게 가라앉는 나를 붙잡아 올린다. 조금 더 가벼워지자고. 꽤 배설했으니, 이제 나도 글 위에서 춤을 출 수 있을 거라고. 처연한 춤사위가 아니라 경쾌한 왈츠 같은 춤을. 나는 나를 꼭 껴안고 다시 힘차게 일어선다.
*이 글은 [얼룩소 에세이 쓰기 모임]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글감은 '결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