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살아야지

by 박순우

한 달 전쯤,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대뜸 내 카페 인스타그램에 댓글을 다셨다. 오마이뉴스 잘 보고 있어요. 헉. 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보았다. 저분이 내 실명을 어떻게 아셨지? 내가 무슨 글들을 썼더라? 민감한 내용은 없었나?


제주 현안과 관련된 글의 경우 같은 도민이라 해도 입장이 다를 수 있기에, 쓰면서도 그 첨예한 입장들 속에서 어떻게 내 생각을 전달할까 머리가 복잡해지곤 한다. 나름 부드럽게 쓴다고 쓰지만 그럼에도 글이라는 게 오해를 부를 수도 있으니, 나를 잘 모르는 이웃이 내 글을 계속 읽고 있다는 말이 적잖이 신경쓰였다. 그러다 이내 ‘최선을 다해 썼으면 된 거지. 너무 신경쓰지 말자’ 결론을 내리고, 글 읽어줘서 감사하다, 착하게(?) 살겠다는 말로 훈훈하게 대화를 마쳤다.


두 번째 십년 차 이주민 인터뷰가 나간 날, 남편 친구가 남편에게 톡을 보내왔다. 내 인터뷰 기사 링크였다. 이 기사 쓴 사람이 내가 맞느냐고 묻는 톡이 이어졌다. 헐. 어떻게 알았지. 놀라서 물으니 남편이 말한다. 기사 볼 때 보통 기자 이름 안 보지 않나? 그러게. 근데 이건 십 년차 이주민이 같은 이주민을 인터뷰한다 해서 유심히 봤나 보다. 뿌듯함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아이들과 일주일에 한 번 인근 도서관에 간다. 책을 반납하고 다시 빌리고. 희망도서를 받거나 예약도서를 찾는다. 한 사서 분이 언제부턴가 내 이름을 기억하신다. 대출회원증을 꺼내보이지 않아도 내 이름을 부르며 예약한 책을 턱턱 꺼내 주신다. 내 이름이 기억하기가 쉬운가?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이름이라 했지. 게다가 매주 갔으니. 알아볼 만도 하지 싶었다.


어제 저녁 여느 날처럼 아이들과 함께 책을 반납하고 대출하고 도서관을 막 빠져나오려는데, 사서 님이 갑자기 웃으며 말한다. 기사 잘 보고 있어요. 헉. 다시 세상이 멈추는 느낌이 들었다. 내 이름을 알고 계신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나는 엉거주춤 서서 웃으며 감사하다 인사한 뒤 재빨리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아이들이 토끼눈을 하고 내게 물었다. 사서 선생님이 엄마 글 봤대? 어떻게 보지? 엄마 글이 인터넷에 있어서 볼 수 있거든. 남편도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저 분이 내 이름 아시잖아. 남편은 기자 이름까지 확인하며 글을 읽는 사람들이 계속 신기하단다. 그러게, 나도 신기하다. 나중에 책 나오면 도서관에 강연 자리나 뚫어볼까 했는데, 글 열심히 써야겠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피식 웃었다.


내가 나서서 알리지 않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에 묘한 감정이 인다. 마냥 좋지도 마냥 싫지도 않은 복잡미묘한 마음. 알아봐준 게 감사하고, 내 글을 읽어줬단 사실이 퍽 감동이다. 동시에 어딘가로 숨고 싶은 마음도 든다. 무슨 글을 썼는지 뻔히 알면서도 괜히 다시 열어본다. 내가 뭐라고 썼더라. 이상한 말은 안 썼나. 부끄러운 글은 없나.


이상한 말을 썼더라도, 행여 부끄러운 글이 있다 해도 내가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미 써놓은 글을 지울 수도 없고, 본 걸 안 본 것으로 할 수도 없으니. 결국 마음을 내려놓는다. 글은 쓰는 동안에는 내 것이지만, 쓰고 나면 읽는 사람의 것이 된다. 오해도 이해도 반감도 공감도 내 몫이 아니다. 이왕이면 이해와 공감이 더 많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내가 나서서 타인의 머릿속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첫째 방학에, 둘째 어린이집 등원 거부에, 늘어난 손님에, 한 달 동안 제대로 글을 쓰지 못한 게 한동안 너무나 속상했다. 둘째가 아침에 내 속을 다 뒤집고 등원을 하고 나면 오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손님을 받으며 정신을 좀 차리고, 이제 좀 마음을 잡고 읽거나 쓰려 하면 첫째가 귀가를 한다. 아이 밥을 챙기려 하면 손님들이 연거푸 들이닥친다. 정신 없이 손님을 치르고 애를 챙기다 보면 어느새 둘째가 하원할 시간.


하원하자마다 칭얼대는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가 카페를 마감하고, 우당탕대는 아이들 곁에서 책장을 간신히 두어 장 넘긴다. 밥을 하다가 글을 좀 끼적이다가 쌓인 집안일을 마저 한다. 잔뜩 예민한 아이를 간신히 재우고 읽던 책을 조금 더 읽다 잠이 드는 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분주하고 피폐했던 한 달이 지났다. 다음주는 드디어 첫째의 학교가 개학을 한다.


둘째에게는 선전포고를 했다. 문명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너가 원하든 원치 않든 기관을 다녀야 한다. 하루 8시간이고 이를 어기면 안 된다. 문명사회가 싫다면 아직 지구상에 몇 남아있는 수렵채집 사회로 가라. 여기서 살려면 여기 법을 따라라. 그게 싫다면 지금은 따르되 나중에 커서 법을 바꾸는 사람이 되어라. 주 5일제와 일일 8시간 근무를 바꿀 방법이 지금 엄마에게는 없다. 한달 동안 이어진 너의 짜증을 이제 더는 견딜 수 없다. 엄마에게 한계가 왔다. 아이는 바락바락 대들며 골을 냈지만, 달라진 나의 눈치를 힐끔 보기도 했다. 과연 변화가 있을까.


출간이 처음이라 얼떨결에 잡은 마감일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방학 내내 제대로 글을 쓰지 못했는데. 이제 겨우 삼분의 일쯤을 썼는데. 나머지는 뭘로 채우지. 언제 다 쓰지. 내가 무슨 책을 낸다고. 내가 내도 될까. 글은 누구든 써도 된다는 연재를 하고 있으면서, 나는 정작 나의 자격을 묻고 써온 시간을 부정하며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제대로 쓰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늘어가는 건 지혜가 아니라 잡념이었다.


내 글을 읽고 있다는 예상치 못한 인사를 건넨 지인들을 떠올리며 다잡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들의 인사에 오묘해진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건, 어쩔 수 없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쓰는 순간의 나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의 내가 진심이었기에, 내 글이 어떤 생김이든 나는 나의 글을 사랑하기에, 그거면 된다고 생각했다. 타인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나는 나를 믿고 가야지.


한동안 굳어 있었던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그 마음을 곱씹는다. 자격보다 내게 더 필요한 건, 주어진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과 써온 시간과 자신에 대한 믿음 뿐이라고. 그동안 해온대로 진심을 담아 쓰면 된다고. 너무 잘 쓰려고도 하지 말고, 더 있어 보이려고도 하지 말자고. 그렇게 나는 내 글을 딛고 다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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