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나에게

몰입과 명상, 그리고 글쓰기

by 박순우

나는 오랜 시간 명상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붓다처럼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 머릿속을 완전히 비워내는 일. 그게 명상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그런 상태가 가능할까. 인간의 머릿속을 완전히 비워내고 무無의 상태를 지속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아주 찰나의 시간도 비우지 못하고 무언가를 계속 떠올리고 생각하고 곱씹는 게 인간이 아닌가. 의문이 깊어갔다.


그러다 명상 일을 하는 분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명상에 대한 인터뷰는 아니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명상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그분은 내게 명상을 오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상은 완전히 뇌를 비우는 게 아니라 어느 한 가지에 몰입한 상태라는 것이다. 지금, 여기, 나에게, 집중한 게 명상이라는 것. 명상에 무지했던 내게 그분의 이야기는 퍽 놀라웠다.


그날 이후로 몰입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을 부유했다. 몰입이란 무엇인가. 나는 언제 어디서 무엇에 가장 몰입하나. 단연 떠오른 건 글이었다. 글을 쓸 때 나는 몰입한다. 글은 온전히 집중하지 않으면 쓸 수 없다. 평소에 글을 쓰지 않는 사람들도 몇 자의 글을 써보라 하면, 갑자기 머리를 숙이고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몇 초만에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몰두하는 마법이 펼쳐진다. 이런 상황이 가능한 건, 글은 집중하지 않으면 완성할 수 없는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막 잠이 쏟아질 때 잠시라도 눈을 붙이고 나면 정신은 한결 맑아진다. 글도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내가 지금 쓰고자 하는 글에 완전히 몰입해 쓰고 나면, 마치 단잠을 자고 일어난 듯 개운하다. 좀 부족한 글이더라도, 퇴고를 더 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더라도. 지금, 여기, 나에게, 집중해 초고를 쓰고 나면 머릿속을 비워낸 동시에, 건강한 에너지를 채운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흠뻑 빠진 그 순간의 나를 사랑해 글쓰기가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온 마음을 내주며 무아지경에 이를 수 있는 단 하나가 내게는 글인 것 같다. 이런 몰입이 명상이라면, 명상은 에너지를 비우며 동시에 에너지를 채우는 행위가 아닐까.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두한 뒤에는, 에너지를 썼음에도 오히려 에너지가 차오르는 느낌이 드는 게 아닐까. 명상을 배운 적은 없지만, 나도 모르게 명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퍽 신기했다.


학교 운동회를 가보면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곤 한다.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모여든 보호자들. 진행자의 권유에 따라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지만, 행동은 굼뜨고 표정은 떨떠름하다. 그러다 점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분위기는 반전된다. 아이들의 대결과 우리 팀의 승리에 집중하다 보면, 얼굴은 상기되고 목소리는 커진다. 다함께 웃고 열심히 뛰다 보면, 어느새 운동회는 아이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가족들의 행사가 된다. 운동회를 마치고 나면 흠칫 놀라고 만다. 나 운동회에 진심이었네.


몰입은 그런 것이다. 미래의 일도, 쌓인 걱정도, 풀어야 할 문제도 모두 내려두고,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에만 온 마음을 내어주는 것. 진정한 웃음과 보람과 행복은 그런 순간들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수확물인 듯하다. 이리저리 눈치보고 상황을 판단한다고 촉을 세우기보다, 지금 여기 나와 나의 사람 혹은 나의 일에만 집중하는 것. 세상에는 의외로 단순함이 답인 경우가 참 많다.


진화적으로 인간은 원래 산만하다고 한다. 수렵채집 시절 각종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했다는 것. 시시각각 촉을 세우고 빨리 반응한 인간이 더 잘 살아남았을 것이다. 어쩌면 명상은 인간이 개발한, 인간이 극복한 뇌의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몰입이 없었다면 우리 사회가 이만큼 진보할 수 있었을까. 위대한 발견이나 발명, 훌륭한 작품 뒤에는 분명 이런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집중하느냐가 최종 결과와 연결되는 건 당연한 일인 듯하다.


아이들 방학이 끝나고 긴장이 풀리면서 잔뜩 산만해진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 어느 것에도 잘 집중하지 못한다. 여기저기 촉각을 세워야 했던 시간들로 인해,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의 총량이 단축된 느낌이다. 때문에 가장 타격을 입는 건 다름 아닌 글쓰기. 써야 할 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주변만 배회한다. 좀 쉬면 나아질까 싶어 정신줄을 이따금 놓아버리기도 하고, 이 글처럼 우선순위에서 밀려있는 글을 쓰기도 한다. 유일한 명상이 글쓰기이고, 글로 힘을 얻는 나에게, 글에 몰입하지 못하는 나날은 너무나 암담하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보며 마음 한구석은 안달이 난다. 언제쯤 다시 마음을 잡을 수 있을까. 언제쯤 써야 하는 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까. 걸음마를 다시 배우는 아이처럼 어색한 발을 내딛는다. 어디가 마른 땅이고 어디가 젖은 땅인지 알지 못해 발끝만 세우고 콕콕 땅을 두드리는 것처럼, 나의 걸음은 한없이 더디기만 하다.


제주 중산간엔 비가 잦았지만 동쪽은 한동안 가물었는데, 오랜만에 세찬 소나기가 쏟아졌다. 한낮의 열기가 시원한 빗줄기로 식어가는 걸 보면서, 두보의 시구인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이 떠올랐다.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는 말. 간절히 바라고 계속 두드리다 보면, 내게도 문장이 소나기처럼 내릴 날이 다시 찾아오겠지. 결국 답은 하나뿐인 것 같다. 몰입하는 것. 지금, 여기, 나에게. 이 글이 디딤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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