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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Jun 29. 2023

타인의 소리를 내 글로 전하는 일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시작은 사소했다. 이 모든 건 십(10)이라는 숫자 때문이었다. 9월이면 제주로 이주한 지 십 년이다. 내년 1월이면 카페를 오픈한 지 십 년이고. 십에 가까워질수록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십 년이라니. 지나온 시간을 주마등처럼 떠올려보기도 했고, 십 년 동안 이룬 것들을 되짚어보기도 했다. 희로애락. 생각을 할수록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켜켜이 박힌 지난 십 년의 속살이 되살아났다. 


처음에는 낯선 곳에 정착한다고 발버둥을 쳤고, 그러다 두 아이를 낳아 기른다고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뒤에는 먹고산다고, 동시에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겠다며 글과 일,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지내왔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은 어떤 의미일까. 앞으로의 십 년은 또 어떤 날들이 될까. 생각은 끝없이 이어져 결국 다른 사람에게로 호기심이 옮겨갔다. 


제주 이주 열풍이 분 지 십 년이 넘었다. 2010년대 초반 올레길을 걸으며 오롯한 제주의 모습에 반한 사람들은 하나둘 제주로 이주를 하기 시작했다. '제주 이민'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들은 좀 다르게 살기를 희망하며 섬으로 모여들었다. 2018년 이주하는 사람의 숫자가 줄기 시작하자, 언론들은 앞다퉈 이들이 떠나는 이유를 집중조명하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연봉이 적다, 일자리가 없다, 궨당(친인척을 뜻하는 제주어로 이웃까지 범위를 넓혀 사용된다.) 문화가 힘들다 등등.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궁금증이 일었다. 언론이 주목하지는 않지만, 내 주변에는 아직도 이곳에서의 삶을 유지해 가는 이주민들이 많다. 그동안 떠난 사람들도 많지만, 이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도 못지않게 많은 것. 그들은 어떻게 쉽지 않다는 섬 살이를 지속하고 있는 걸까. 나는 먹고산다고, 아이들 키운다고 정신없이 보낸 십 년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한 자리에 모여 한바탕 신명 나게 수다라도 떨어보고 싶었다. 분명 기존에 들을 수 없었던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리라.


그러다 내가 직접 인터뷰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처음에는 내가 뭐라고 인터뷰를 하나 싶었지만, 곧이어 뭣도 아니지만 해보면 또 어떤가 싶었다. 오마이뉴스에서 시민기자 활동을 하고 있으니 그 공간을 통해 몇 명의 인터뷰를 실을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오마이뉴스 편집기자와 일대일 줌미팅이 잡혀 있었다. 미팅 말미에 이런 내 계획을 슬쩍 흘려보니, 편집기자 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다른 사람이 하기 전에 빨리 해보라며 재촉을 한다. 너무나 좋은 기획이라며. 책을 내는 걸 목표로 하면 좋겠다며. 


마음이 분주해졌다. 당장 카페 일과 집안일도 해야 하고 모임이며 합평이며 일이 산더미인데, 일을 줄여도 모자랄 판에 스스로 일을 더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신이 나니 어쩌면 좋을까. 그나저나 무엇부터 해야 하지. 우선 인터뷰 소개글을 써야겠다. 부랴부랴 소개글을 쓰고 공통 질문을 뽑아보았다. 질문은 인터뷰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느 정도 큰 틀은 있어야 했기에. 정리한 걸 편집기자 님께 보내니, 인터뷰는 섭외와 사전조사, 질문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팁을 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인터뷰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 아니다. 돌이켜 보니 기자 일도 사실 넓은 의미의 인터뷰다. 묻고 적고 알아보고, 그걸 토대로 주제를 뽑고 정리해 적는 게 기사이니. 실제 인터뷰 기사도 몇 번 쓴 적이 있긴 하다. 너무 오래전 일이긴 하나. 그때 내게 인터뷰에 대한 철학이 있었던가. 그저 흘러가는 대로 취재의 일환으로 하지 않았나. 그때는 그저 한 꼭지의 기사였다면, 지금 이건 본격적인 인터뷰다. 그렇다면 인터뷰란 과연 무엇일까. 인터뷰를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은 어때야 할까.


인터뷰 대상으로 점찍어놨던 한 분에게 우선 연락을 했다. 실명과 얼굴이 노출되는 부분도 설명했다. 감사하게도 흔쾌히 수락을 한다. 인터뷰 소개글과 공통 질문지를 보낸 뒤, 사전조사 격으로 전화 통화를 했다. 지난 십 년의 삶을 술술 풀어놓는 인터뷰이. 두 달만 있으려다 십 년을 머문 사람이었는데, 십 년이라는 시간만큼이나 숨겨진 이야기와 깨달음이 차고 넘친다.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어. 


통화를 마친 뒤 들은 내용을 정리하면서, 실제 인터뷰에서 던질 만한 질문들을 다시 적어보았다. 이후에 진행할 인터뷰이도 떠올려 보고, 책으로 냈을 때 게시할 순서도 잡아보고. 이 사람에게는 이런 질문들을 던져보면 어떨까. 이 사람과는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면 큰 의미가 있겠다. 끊이지 않는 생각 또 생각.


내 이야기를 글로 쓸 만큼 써서 이제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내 이야기를 내가 직접 하는 것이야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지만, 남의 이야기를 내 손 끝으로 하자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인터뷰 글은 내 글이지만 내 글이 아니다. 인터뷰어의 목소리보다는 인터뷰이의 목소리가 더 많이 실려야 한다. 그럼에도 인터뷰어 역시 그저 경청만 해서는 안 된다. 중심과 방향을 잡고, 더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야 한다.


인터뷰 선배들의 글을 찾아본다. 사전조사는 너무 소홀해도 너무 많이 해도 독이 된다는 말,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는 상하 관계가 아니라는 조언, 인터뷰 외의 시공간에도 인터뷰이에 대한 팁이 있다는 사실까지. 차고 넘치는 조언들을 되새기며 새삼 깨닫는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저 작고 작은 관심에서 발화된 계획일 뿐이었는데. 준비해야 할 것도, 다짐해야 할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참 많구나. 


가슴이 뛴다. 타인의 소리를 내 글로 전하는 일.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마주치고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며, 섬에 대해 섬 살이에 대해, 그리고 그게 어디든 그저 살아가는 삶 그 자체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부딪힘이 감응으로, 감응이 공명으로 이어지기를. 그렇게 비슷하지만 좀 다른 삶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기를. 이제 첫 번째 인터뷰 날짜를 잡아야겠다. 뜨거운 여름이 되리라는 예감이 밀려온다.  




*글쓰기 모임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글감은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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