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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Jun 09. 2023

밤이라는 마법과 개똥철학

사람이 두려우면서도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이십 대에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 대학교 2학년 때는 한 달 내내 주말마다 엠티를 간 적도 있었다. 학과 엠티, 단대 엠티, 동기 엠티, 동아리 엠티까지 다 다른 엠티를 매주 떠나는 바쁜 대학생이었다. 스무 살, 스물한 살 무렵의 엠티는 그야말로 술판이었다. 술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술자리를 좋아하는 나는, 밤새 벌어지는 술판에 빠지지 않고 끼어들었다. 게임도 하고 대화도 하고 그러다 눈이 맞은 사람들끼리는 산책도 나가는, 피 끓는 이십 대의 밤은 어수선하지만 뜨거웠다.


엠티 때만 밤을 새운 건 아니었다. 수시로 친구들과 온라인 게임을 하거나 채팅방에서 수다를 떤다고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휴대폰을 과열로 폭발하기 직전까지 붙잡고 통화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상대는 그냥 친구이거나 썸을 타는 사람, 혹은 사랑하고 있는 사람 등 그때그때 달랐다. 그렇게 밤새 수다를 떨거나 게임을 하다가도 아침이 되면 벌떡 일어나 다시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갔다.


그 시절 밤은 모든 역사가 이뤄지는 시간이었다. 썸 타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도, 마음에만 담겨있던 이야기를 친구에게 털어놓는 것도, 밤이라는 시간의 마법에 기대면 가능했다. 밤은 그런 시간이었다. 세상은 어둠에 가려져 있지만, 눈빛과 마음만은 더 영롱하게 반짝이는 시간. 어둠에 취해 없던 용기도 솟아나고, 이상한 객기도 부리던 날들.


지구에서는 빛이 있는 낮이 기본이지만, 우주에서는 어두운 밤이 기본이다. 얼마 전 한 물리학자의 강연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내가 보냈던 수많은 밤을 떠올렸다. 밤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지고, 세상을 더 선연하게 느끼던 그 시간들을. 내 안에 우주의 법칙이 숨어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기도 하면서.


되짚어 보면 그런 때는 사실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스물다섯이 지나자 밤은 더 이상 뚜렷하지만은 않았다. 몸은 노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밤을 힘겨워하기 시작했다. 서른이 넘어가니 밤샘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서른다섯이 넘은 뒤에는 친구들과 모임이라도 하면 새벽 두 시를 넘기지 못하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어느새 우주의 법칙(?)을 잃어버린 우리는 지구의 법칙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이따금 그 시절이 그립다. 다음날 컨디션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고, 어둠에 취해 웃고 울던 시간들. 아무리 밤을 새도 다음 날 머리를 맞대고 라면 한 그릇씩만 뚝딱 해치우고 나면, 다시 샘솟던 기운. 오가는 버스나 기차 안에서 청하는 쪽잠만으로도 체력을 보충할 수 있었던 젊음의 기억. 방황이 죄가 아니라 오히려 삶의 이유라 내가 누군지,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미처 알지 못해도 용인되던 날들. 비틀비틀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 흘러가도 괜찮았던 청춘만의 특혜.


어느덧 마흔이 넘은 나는 이제 열두 시도 안 돼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아이들보다 먼저 잠드는 경우도 많다. 나이트 라이프라고는 없는 삶을 살아간다. 낮이 삶의 전부인, 해가 지면 절로 몸도 저무는, 지구에 최적화된 삶. 어쩌다 선물처럼 정신이 맑고 아이들은 모두 잠든 밤을 맞이하면, 이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쓸까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그래봤자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두세 시간이 전부지만, 다음 날을 위해 또 일찍 잠자리에 누워야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신과 자신이 살고자 하는 방향을 잘 알아야 하는 건, 체력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전보다 시간이 더 빨리 간다고 느끼는 것도, 체력이 없어 밤 시간을 누리지 못해 그런 건 아닐까. 젊은 날에는 방황하고 흔들리고 마음껏 탕진해도 또 채워지던 체력과 시간이, 이제는 아무리 채워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빠져나가니. 때문에 늙어갈수록 체력과 시간의 낭비 없이 살아가기 위해 더 나를,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명확히 알아야 하는 건 아닐까. 방황이 더는 용인되지 않는 나이가 됐기에. 그러기엔 어깨에 짊어진 짐이 너무 많기에.


밤이라는 단어의 힘을 빌려 개똥철학을 읊어본다.




*글쓰기 모임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글감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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