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좀 앓았다. 몸에 염증이 생겨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약을 지어왔다. 앓았다고 말하기에 뚜렷한 통증은 없었다. 다만 몸의 기력이 모두 바닥난 것만 같은 느낌으로 며칠을 살았다. 자꾸 졸음이 쏟아졌고, 입맛이 통 없었다. 온몸의 기운이 염증을 치료하는 데로 쏠리기라도 한 걸까. 끝 모를 듯 가라앉는 몸뚱이를 바라보며, 내게 필요한 건 제대로 된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남편이 취업을 하고 홀로 카페를 지키면서 가장 기뻤던 건, 점심을 챙기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일의 특성상 문을 닫고 식사를 할 수 없으니 번갈아가며 식사를 해야 했다. 식사를 준비하고, 돌아가면서 먹고 치우는 데까지 족히 두 시간이 걸렸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아이들이 귀가할 시간이 코앞이었다. 늘 시간이 부족했다. '먹는 시간을 아낄 수만 있다면'이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남편의 점심을 챙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찾아오니 뛸 듯이 기뻤다. 제주에 와서 거의 24시간 남편과 붙어있었는데, 처음으로 삼시세끼 중 한 끼의 의무에서 해방된 것이다. 혼자라면 식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터였다. 남편이 돈을 벌어오는 것보다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게 더 마음에 들었다. 늘 하루가 40시간쯤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으니까.
처음에는 나름 집에서 밥을 챙겨 와 도시락처럼 까먹었다. 찬이 없어도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빵이나 시리얼로 때운 적도 많았다. 그러다 점점 과자 같은 주전부리로 한 끼를 해결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그럴수록 점점 내 몸에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카페를 비울 수는 없고, 매번 도시락을 싸는 건 준비하는 것도 먹는 것도 번거로웠다. 냄새가 나지 않는 음식으로 골라서 싸야 하니, 준비 과정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빵이나 과자는 질렸는지 이제 잘 먹히지 않는다.
나는 카페에서 먹는 밥을 도둑밥이라고 부른다. 냄새를 풍기면 안 되고, 먹는 모습을 들켜도 안 되니. 손님이 있으면 카운터에 숨어서 야금야금 꺼내 먹고, 손님이 없으면 누가 오나 안 오나 살피며 서서 먹는다. 간신히 한 끼를 먹고 나면 안도와 동시에 서러움이 밀려온다. 이렇게 먹는 밥이 온전히 내 몸에 흡수가 될까 하는 의구심도 피어오른다.
앓고 나니 밥이 참 소중하다. 먹히지 않아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먹어야 한다. 몸 안에 축적된 체력이 하나도 없는지 먹지 않으면 금세 휘청인다. 어지럼증이 몰려올 때도 있고, 온몸에 피가 빠져나간 듯 기운이 없을 때도 있다. 그러니 먹어야 한다. 배터리 충전을 하듯 나는 배를 채운다. 살기 위해 먹는다. 쓰기 위해 먹는 것 같기도 하고. 앓을 때마다 느끼는 건, 오래 쓰려면 건강해야 한다는 것. 결국 몸이 건강해야 글도 쓸 수 있다는 것. 이럴 땐 글이 나를 키우는 것 같다.
차 안에서 허겁지겁 빵을 먹는 택배기사들, 화장실이나 계단 아래 좁은 공간에서 도시락을 먹는 청소부들, 나처럼 교대할 인원이 없어 홀로 도둑밥을 먹고 있을 자영업자들. 자주 떠올리는 얼굴들이다. 잘 먹는다는 건, 단지 음식의 종류가 아니라 편히 먹을 수 있는 시공간이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다. 제대로 먹지 않는 지금의 시간이 내 몸 안 어딘가에 나이테처럼 새겨질 것만 같다. 색은 얼룩덜룩하고 조직은 엉성한 나이테. 나를 위하는 게 참 어렵다. 잘 먹는 게 이렇게 힘들다. 평생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게 굴레 같다.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