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 오후에 비 올 것 같은데 우산 가져갈래?"
"응 알겠어요."
까다롭지 않은 첫째는 내가 권하는 대로 순순히 따르는 편이다. 마른하늘 아래 우산을 들고 가는 게 귀찮을 법도 한데, 아이는 군소리 없이 성큼성큼 두 발을 디뎌 학교로 향한다. 아주 가끔 "비가 많이 오면 엄마가 우산 갖다 주면 되잖아" 하고 되묻는다. 그런 날은 알겠다고 하고 우산 없이 아이를 보낸다. 대신 엄마가 좀 늦을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카페 문을 닫고 가야 하니, 다른 엄마들보다 늦을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아이는 개의치 않고 알겠다고 말한다.
귀가 시간이 됐는데 정말 장대비라도 쏟아지면 마음이 분주해진다. 부랴부랴 카페를 마감하고, 먼저 집에 도착한 둘째에게 집에 잘 있으라고 당부를 한 뒤 우산 두 개를 들고 집을 나선다. 하나는 활짝 펴서 한 손에 들고, 하나는 다른 손에 들고 쫄래쫄래 서두르는 발걸음. 돌봄 교실에 홀로 남아 있는 아이를 데리고 올 때면 마음이 짠하다. 친구들은 언제 갔는지, 친구들이 먼저 가서 심심하진 않았는지, 잇따르는 질문들.
외부적인 요인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편인 첫째는 마냥 쿨하다. 친구들 좀 전에 갔어. 혼자 블록하고 놀았지. 선생님이랑 이야기했어. 아이는 조잘대며 우산을 들고 간다. 엄마와의 대화보다 제 발 밑의 달팽이에 더 관심이 많은 아이. 아이는 이제 제법 우산을 잘 받쳐든다. 처음 저 혼자 우산을 들 때만 해도 중심을 잡지 못해 불안했는데, 아이는 참 쑥쑥 잘도 자란다. 그래서 감사하고, 그래서 아쉬운 시간들.
의도치 않아도 아이와 우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수십 년 전 한 초등학교 앞에 서고 만다. 강력한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기는 설운 기억. 수업을 마치고 학교 밖으로 나온 아이들. 갑자기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 교문 앞에서 우산을 들고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들. 애타게 발을 동동 거리다 기다리던 얼굴을 만나면 반갑게 미소 지으며 어깨를 맞대고 하나둘 사라지는 친구들. 그 무리 속에서 나는 늘 가장 마지막까지 홀로 남아있는 아이였다.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내가 아는 얼굴은 우산을 들고 나타나지 않았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나는 깨달았다. 아무리 비가 세차게 쏟아져도 엄마는 절대 오지 않는다는 걸. 나는 그 뒤로 조금 독해졌다. 최대한 비를 많이 맞기 위해, 그 젖은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주기 위해, 아주 천천히 걸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보송한 부위가 단 하나도 남지 않도록, 이대로 독한 감기에 걸려 앓아눕도록, 느리게 걸었다.
마침내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마는 여느 때처럼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집은 엄마의 사무실이기도 했으니까. 분주한 엄마는 나를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장부만 들여다보며 말했다. 비 맞았니. 씻어라. 딱 두 마디. 엄마는 밖에 비가 세차게 내린다는 것도, 그 비를 쫄딱 맞고 집에 돌아오리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 그런데도 꿈쩍 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그 시절 나의 엄마였다.
그날 이후 나는 비에 한이 맺힌 사람처럼 굴었다. 하굣길에 비가 내리는 날이면 애타게 기다리는 대신 빗속에서 맨발로 뛰어다녔다. 엄마는 어차피 안 와. 내가 쫄딱 젖는다 해도 신경 쓰지 않아. 어차피 맞을 비라면 신나게 맞자. 내리막길을 타고 졸졸 흐르는 빗물을 맨발로 거슬러 오르며 뛰어놀기도 하고, 미친년처럼 얼굴을 들어 올려 내리는 비를 온 얼굴이 다 맞도록 한참 내버려 두기도 하고, 양팔을 벌리고 빗속을 뛰어다니기도 하면서. 속옷까지 홀딱 젖도록 나는 빗속에서 한참을 놀다 집으로 가곤 했다.
그렇게 빗속에서 한참 놀다 집으로 돌아간 어느 날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엄마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할아버지 못 만났어?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너 우산 갖다 준다고 가셨는데. 교문 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당연히 아무도 없을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누군가 날 위해 우산을 들고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할아버지는 얼마나 오랫동안 빗 속에서 나를 기다렸을까.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할아버지는 웃으시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으셨다. 나는 그 뒤로 교문 앞에서 구부정한 허리를 하고 우산을 들고 서있는 할아버지를 자주 떠올렸다. 반갑게 서로가 서로를 알아봤더라면 좋았을 텐데. 비록 어긋났지만, 누군가 나를 기다려줬다는 것만으로 마음에 온기가 들어찼다. 차마 메울 수 없는 한 구석이 남아 있긴 했지만.
우산이 뭐라고. 빗속에서 뛰어노는 게 자유로우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서러웠다. 딱 한 번만이라도 엄마가 날 위해 우산을 들고 나와줬다면. 비를 맞은 나를 보고 춥진 않았는지 물어보기라도 했다면. 너무 바빠 우산을 갖고 가지 못했다고 뒤늦은 미안함이라도 보여줬다면. 나는 조금 덜 서러웠을까. 가장이자 며느리이자 엄마이자 살림꾼이었던 엄마에게 하루는 너무나 짧았을 것이다. 눈코 뜰 새 없이 해야 할 일들로 둘러싸여 있는 엄마를 둔 아이는 눈치껏 알아서 자라야 했다. 엄마는 종종 다른 아이들과 나를 비교했지만, 나는 차마 다른 엄마들과 엄마를 비교할 수 없었다. 왜 나를 위해 우산 한 번 가져다주지 않았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묻지 못했다.
그 시절 엄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너무 잘 알면서도, 나는 아직 엄마를 끌어안지 못한다. 나 역시 워킹맘이 되어 1분 1초가 아쉬운 삶을 살고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엄마를 원망한다. 그래도 한 번은 갖다 주지. 한 번은 웃어주지. 한 번은 미안하다고도 하고, 한 번은 사랑한다고도 하지. 그 한 번이 아쉬워 나는 우산을 그저 우산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렇게 내 안의 우산은 빗물 대신 한이 맺혀 있다.
어린아이에게 부모의 사랑은 밥 같은 것이었구나. 당연히 먹어야 했던, 마땅히 맛을 느껴야 했던, 진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보다 더 소중한 밥. 그러니 엄마의 삶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도 설움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겠지. 아무리 내 그릇을 넓히고 넓혀도, 아무리 욕심을 버리고 버려도, 그 시절 채우지 못한 가슴은 여전히 사무치게 시리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듯, 덩그러니 비어 있는 가슴.
그러니 나는 당장 맛있는 밥을 짓지는 못해도, 당장 번쩍이는 옷을 사주지는 못해도, 내 아이들을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끝없이 속삭인다. 단호하게 훈육을 하다가도 끝에는 두 팔을 벌려 아이를 끌어안는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 품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아이들. 엄마의 모든 말과 행동의 근원은 결국 사랑이라는 걸 아이가 느낄 수 있도록, 나는 뼈가 으스러지도록 아이를 끌어안는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내 부모는 왜 제대로 한 번 안아주지 않았을까. 한 맺힌 상념들을 애써 떨친다. 사랑으로만 채울 수 있는 허기가 있다. 나는 절대 그 때를 놓치지 않으리라. 그렇게 나는 나의 결핍을 덮는다.
*글쓰기 모임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글감은 '우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