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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Aug 17. 2023

도망가고 싶다

격하게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카페 문을 열었다. 노트북이랑 책 하나 싸들고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멍하니 창 밖만 쳐다보며 뇌를 완전히 비우거나, 쓰기나 읽기에 몰입해 현실을 잊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도망을 가지 않은 건 첫째가 오전 돌봄만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 아무리 멀리 간다 해도 그 시간이 되면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무슨 신데렐라도 아닌데 말이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발악을 하는 아이를 간신히 버스에 태워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울었다. 오늘만, 오늘 한 번만 가지 않겠다는 아이. 아이의 말을 받아들이면 당장은 마음이 편하겠지만, 집에 머물러도 된다는 사실을 인식한 아이의 떼는 더 길어질 것이다. 이를 잘 알기에 독하게 이를 꽉 깨물고 그럼에도 너는 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무리 단호하게 말해도 끄떡하지 않는 아이. 20kg이 채 되지 않고, 세상에 태어난 지 이제 겨우 6년 5개월인 아이. 자신만의 논리로 가득찬 아이는, 모든 감각을 낯선 세상을 밀어내는데 쓰고 있는 아이는, 나를 매일 천국과 지옥으로 보낸다. 엄마의 예민함과 아빠의 예민함을 모두 장착하고 세상에 나온 아이. 너를 낳고자한 건 나의 의지였지만, 너를 빚은 건 내가 아니다. 너 역시 너의 삶도 생김도 선택하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으니, 문득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그런 우연의 생명들로 가득찬 이 땅이 모순 덩어리 같다.


타고난 기질이 강한 아이에게 문명사회의 의무를 가르친다는 건 너무나 어렵다. 이해가 아니라 인정을 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말해도 아이는 끝까지 이해를 바란다. 너가 아무리 요구해도 내게는 답이 없다. 인간은 왜 5일을 일하고, 왜 2일만 쉬어가야 하는지. 하루 대부분을 왜 일터에서 보내야만 하는지. 매일 휴일 같은 삶을 사는 건 왜 불가능한지. 노동의 신성함을 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의 의문은 정당하기에 나는 말문이 턱턱 막힌다.


세상의 굴레가 답답했던 내가 아이를 원했던 건, 아이로 인해 절로 굴러가는 삶을 바랐기 때문이었다. 나만의 의지로 굴러가는 게 아니라, 너를 키우기 위해 어떻게든 살아야만 하는 인생을 나는 한때 바랐다. 죽는 날까지 반복될 허무를 홀로 견뎌낼 배짱이 당시 내게는 없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도 작용했다. 이왕 태어났으니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 중 하나가 내게는 부모가 되는 일이었다.


너는 내게 어쩌면 도구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삶을 움직이고, 나의 경험을 위한 도구. 엄마가 되는 게 원한다고 누구나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은 뒤에야 나는 나의 헛된 욕망을 접을 수 있었다. 그런 뒤에야 내 안에 새 생명이 찾아왔기에, 나는 그나마 원죄로부터 놓여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끊임없이 시험대 위에 오른다. 어디 가서 명함 한 장 내밀 수 없고, 경력으로도 쳐주지 않는 육아의 길이 이토록 멀고 험난하다.


그래도 나는 너를 선택했겠지. 엄마가 되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겠지. 나란 사람은 평탄한 길보다 위험천만한 길을 더 선호하는 조금은 삐딱하고 이상한 사람이니까. 생이 두 번이라면 한 번쯤은 혈혈단신으로 살아갔겠지만, 한 번이었기에 나는 너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낳았고, 그래서 키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어른이기에. 시작이 어떤 마음이었든, 돌이킬 수는 없는 길이기에 나는 너와 함께 이 길을 간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버겁다.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무얼 삼켜도 체할 것만 같은 느낌이 지속된다. 주위의 모두가 빛나는 여름을 찬양하는데, 나는 차마 그럴 수가 없다. 


광복절이 지나자 공기 중의 습도가 말라가듯 손님들도 눈에 띄게 줄어간다. 한낮에 작열하는 태양은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해질 무렵이면 여름내 몸집을 불린 귀뚜라미가 맹렬히 울고 마당 위에는 잠자리떼가 맴돈다. 다음주면 첫째도 개학이다. 다음주에는 도망을 가야지. 꼭 하루 아이들과 남편을 보내고 난 뒤 나 홀로 자유시간을 만끽해야지. 굳게 다짐을 한다. 과연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 그러고 나면 여름동안 쌓인 이 무거운 짐을 털어내고 조금이나마 홀가분해질까. 가벼워지고 싶다. 유쾌한 글을 쓰고 싶다. 떠나고 싶다.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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