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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Aug 25. 2023

책임과 능력 그리고 경계에 대해

일주일에 하나씩 연재하던 글을 거의 한 달째 쓰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 방학이라 집중력이 분산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매일 쓰지 않던 시절에는 일상이 흔들려야 글감이 생기고 글이 잘 써졌는데, 매일 쓰는 삶으로 건너가고부터는 일상이 정리되지 않으면 글도 쓰이지 않는다. 영감이나 재능에 기대던 날들이 성실과 노력에 기대는 날로 건너간 것이다.


속이 타들어 갔다. 일주일에 한 번이 어렵다면 2주에 하나라도 써야 할 텐데. 날짜는 째깍째깍 잘도 흘러가는데 도무지 내 글은 진전이 없었다. 집중력도 연습과 꾸준함이 필요한 듯했다. 학교가 개학을 하면서 나도 다시 이전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며칠은 멍하기만 했다. 머릿속에 무언가를 넣고 뒤집어 보며 골똘히 몰두하는 상태에 이르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 어떻게든 써야 한다. 써야만 다시 쓰는 삶으로 건너갈 수 있다. 독하게 마음을 먹은 건, 책임감 때문이었다.


몇 달 전 독서모임에서 MBTI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J와 P 성향을 비교하고 있었다. J는 계획적인 성향을, P는 즉흥적인 성향을 가리킨다. 별생각 없이 "나는 완전 P성향이다. 계획 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니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내가 너무나 J라고 생각했다는 것. 모임을 운영하는 입장이라, 그동안 앞에 나서서 계획하고 진행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계획성이라고는 없는 사람이 J성향으로 보일 만큼 다르게 행동한 건, 역시 책임감 때문이었다.


나는 책임을 엄마에게서 배웠다. 어릴 적 엄마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였고, 친정의 장녀이자 시집의 맏며느리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한 사업체를 이끄는 사람이었다. 시부모를 모시면서 거래처에 연락을 하고 장부를 정리했다. 삼시세끼 밥을 하며 두 아이를 돌봤고, 집안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책임감이 강한 데다 깔끔한 성격을 놓지 못해 틈만 나면 쓸고 닦았으니, 그녀의 삶은 늘 의무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가 철인인 줄로만 알았다.


아빠는 엄마와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맡은 역할은 많았지만 수행은 하지 않았다. 처자식의 삶에 크게 관심이 없었고, 집안에서보다 집 밖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는 사람이었다. 쌀독에 쌀이 떨어졌는지도 몰랐고, 가족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내일 출근을 해야 하는데도 오늘밤 술이 달면 끝까지 마셔야 하는 게 그 시절 아빠의 모습이었다. 아빠는 내게 존재하지만 부재하는 사람이었던 것.


엄마가 책임감이 강해 아빠가 자신의 역을 내려놓은 건지, 아빠가 책임감이 없어 엄마가 더 강한 책임감으로 살아왔던 건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어느 정도 타고난 성향에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도 한몫을 했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강한 쪽은 더 강해지고, 약한 쪽은 아예 역할을 놓아버린 채 한 가정이 굴러갔다. 한 바퀴로 굴러가는 가정은 자주 소란하고 삐그덕거렸다.


한 사람에게만 책임이 쏠려 있으니, 그 사람은 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보다 더 대단한 사람도, 그 사람보다 더 힘든 사람도 존재할 수 없었다. 다른 이가 아무리 훌륭해도 칭찬을 받을 수 없었고, 아무리 힘들어도 위로받지 못했다. 아빠의 자리는 자꾸 좁아졌고 엄마의 자리는 점점 넓어졌다. 한 가정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각자의 책임을 명확히 나누지 않으면, 모든 책임을 떠안은 사람의 분노와 불만은 깊어지기만 한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면서 나는 더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내 상처를 어루만지기보다 엄마의 상처를 더 들여다봐야 했던 건 그 때문이었다.


덜컹거리는 가정에서 나 역시 많은 상처를 받았다는 걸 깨달은 건,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다. 길었던 시간만큼 상처는 깊었지만, 가족 중에는 나의 상처를 보듬어줄 사람이 없었다. 서로 자신의 상처가 더 아프다고 외칠뿐이었으니까. 오랜 상처가 곪아서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내고 있었으니까. 어린 시절엔 역할을 다하지 않는 아빠만 미워했지만, 머리가 커지고부터는 엄마도 미워졌다. 손바닥과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아빠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에는 엄마의 책임 또한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엄마를 일정 부분 존경하는 건, 평생 외면하지 않았던 책임감 때문이다. 그녀는 적어도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물론 정신적인 면으로는 너무나 많은 걸 놓치고 살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가족을 위해 매일 밥을 짓고 돈을 벌었다. 모든 짐을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었던 순간이 수없이 많았을 텐데도 끝까지 가정을 지켰다.


그녀의 유난한 책임감이 기질에 의한 것인지,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한 의무감이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녀가 내내 보여준 그 책임감은 의도하지 않아도 내 안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책임감을 내면화했고, 아빠의 뒷모습을 보면서는 책임지지 않는 삶을 증오하게 되었다. 그가 그런 삶을 살아온 게 일정 부분 타인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상당 부분의 임무가 그에게 있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었으니까.


드디어 새로운 연재 글을 송고했다. 날짜를 확인해 보니 22일 만이다. 참 오래도 걸렸구나. 늦긴 했지만 완전히 손에서 놓아버리진 않았으니, 이만하면 제법 잘 해냈다고 스스로를 달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결국 글 하나를 써냈으니, 다시 글을 일상의 영역으로, 꾸준함의 영역으로 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나는 나를 믿는다. 엄마에게서 나온 책임감이 뼛속 깊이 박혀, 어떻게든 나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만들어갈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그 책임이 너무 나를 짓눌러, 나를 갉아먹고 타인을 끌어내리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아야 한다고 되뇐다. 한쪽에서는 모든 감정을 자식에게 풀고, 다른 한쪽으로는 굳게 책임을 지는 그녀의 상반된 모습이 나를 숨 막히게 했기에.


책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경계인 듯하다. 할 수 있는 게 어디까지인지를 알고, 할 수 없다면 분명히 의사를 표현하는 것.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을 명확히 알아야, 적어도 내 선택에 내가 숨이 막히는 결과는 없을 테니까. 그러려면 나를 알아야 한다. 내 주위를 알아야 하고. 능력 밖의 일이라고 말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걸 다 잘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 그게 책임을 지는 삶의 진짜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혹여 삶에 거품이 끼어있지 않은지 더 돌아봐야겠다.



*글쓰기 모임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글감은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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