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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Feb 09. 2022

‘공평’과 ‘올림픽’의 무게

누군가에게는 최초의 올림픽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배우는 단어 중에 예상보다 접하는 시기가 빨라 놀라곤 하는 단어들이 있다. 대표적인 단어 중 하나가 바로 ‘공평’이다. 단어가 가진 무게에 비해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이 단어를 제 것처럼 받아들이고 사용한다.

“그건 공평하지 않잖아.”

“이건 불공평하지.”

간식을 나누다가, 게임을 진행하다가, 불쑥불쑥 아이들은 공평을 화두로 올린다. 간식의 개수를 똑같이 나눠야 공평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덩치에 맞게 나이에 맞게 차등을 둬야 공평하다 여기는 아이도 있다.

한 사람이 원하는 게임을 얼마간 하고 나면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게임도 그 시간만큼 진행을 해야 한다. 그래야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 혹여나 한 사람이 원하는 것으로만 치우쳐 게임을 진행하면 바로 다른 쪽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아이를 키우면서 인간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것들에 대해 유심히 관찰할 때가 있다. 인간이 지닌 세 가지 기본 욕구 외에도 좀 더 복합적인 개념의 욕구를 아이들이 드러낼 때가 있는데, 공평이 바로 그런 경우다. 공평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본능인가 싶을 만큼 아이들은 매일 매 순간 공평을 바란다. 그리고 불공평한 상황에 분개한다.


내 생애 첫 기억의 올림픽은 88 서울 올림픽이다. 일곱 살이었다. 많은 장면이 기억나진 않지만 내 또래 아이가 굴렁쇠를 굴리던 모습은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돼 있다.

아홉 시면 아이들 칼잠을 재우던 나는 이틀 전 늦은 밤 아이들과 함께 티브이 앞에 앉았다. 아이들에게 생애 첫 올림픽의 기억을 심어주고 싶었다. 이제 여섯 살, 여덟 살인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이번 올림픽은 어렴풋이 기억이 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란히 앉아 동그랗게 눈을 뜨고 경기를 지켜보는 아이들. 쇼트트랙 선수들은 계속 넘어지고 다쳤다. 일부는 상대방 선수를 의도적으로 방해하기도 했다. 게다가 심판이 내린 결론은 공정해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실격이 뭐예요?”

“우리나라 선수가 왜 떨어졌어요?”

“올림픽이 왜 그래요?”


아이들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올림픽인데, 그 무엇보다 더 공정해야만 하는 세계 무대인데, 이 무대에서마저 공정이 실현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나라마다 힘이 다른 것을, 왜 힘이 다른지를, 개최국에게 특권이 주어지는 상황을, 몇몇 나라만이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다는 현실을, 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정해진 규칙 위에 진행되는 올림픽, 그 안에서 오랜 시간 동안 노력을 기울여 마침내 성과를 거두는 감동의 모습을 보려 아이들과 늦은 밤인데도 티브이 앞에 앉았다. 그런 아이들 눈에 올림픽은 어떻게 보일까.  세상은 원래 공평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계기가 올림픽이 되는 건 아닐까.


공평은 분명 완벽한 지점에 도달하기 어려운 단어다. 개개인의 얼굴과 신체조건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다. 인간은 거의 본능적으로 공평을 추구하지만, 실제 공평은 판타지의 세계에서나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완벽하게 공정한 세상을 우리는 만들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공평을 외치는 우리 인간은, 어떻게든 공평이 실현되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인다. 시험을 만들고 대회를 치르고 경기를 개최한다. 완벽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갖춰진 시스템 위에서 노력에 따라 끝내 빛나는 결과를 달성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우리는 감히 공정한 세상을 실현하는데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누군가에게는 최초의 올림픽이다. 누군가에게는 생애 처음으로 도전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노력의 결실이 이토록 감동적인 것이라는 걸, 최초로 깨닫는 자리일 수도 있다. 누가 올림픽의 무게를 이토록 가벼이 다루는 것일까.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아이들에게 올림픽은 공평이 실현되는 공간으로 남을까,  아니면 불공평한 세상을 적나라하게 확인하는 자리로 각인될까.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떤 무대를 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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