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다. 먼저 책 제목이 결정됐고, 이어 표지 디자인이 그리고 이름까지 확정됐다. 제2, 제3의 선택지 앞에서 서성이고 또 서성였다. 책 제목은 나보다 출판계 경험이 훨씬 많을 출판사 대표님의 결정에 따랐고, 표지 디자인은 내 의견을 반영했다. 이름은 실명으로 할까 필명으로 할까 계속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다, 결국 남편에게 부탁했다. 정해줘! 남편은 피식 웃더니 실명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실명으로 내 책을 내게 되었다.
선택은 행복한 고민이기도 하지만, 결정 시점이 늦어질 때면 무척 고통스럽기도 하다. 책 제목과 표지 디자인은 빠르고 과감하게 결정을 내렸지만, 이름을 정하는 문제는 좀처럼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실명과 필명을 검색창에 치기도 하고, 같은 이름으로 책을 낸 저자가 있는지도 살피고, 실명을 알고 있는 내 지인들과 필명이 더 익숙할 독자들까지 다양한 얼굴들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기도 했다.
다시 태어난 것만 같은 느낌 때문에 내심 필명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는데, 실명을 추천하는 대표님과 남편 그리고 친구의 말이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다. 실명을 우두커니 바라보다 보면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그 이름으로 겪어온 수많은 날들이 스쳐갔다. 때로는 미워하고 때로는 도망가고 때로는 애정했던 나의 이름.
책에는 필명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도 해봤지만, 필명이 가진 뜻이 퍽 글과 잘 어울린다고 여기기도 했지만, 결국 나는 실명 앞에 선다. 어쩌면 실명이 정말 나다운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글에서만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내가 되고 싶다 외쳐왔는데, 실명 앞에 물끄러미 선 뒤에야 어쩌면 이 실명이야말로 그 무엇도 아닌 그저 나라는 걸 인지한다.
끝 모를 선택의 한복판에서 허우적대던 날을 떠올리면, 결혼식을 한창 준비하던 때와 낯선 땅에 집을 짓던 십 년 전이 떠오른다. 한다기보다 해치운다는 느낌이 강했던 결혼식은 내 결정보다는 엄마의 결정으로 진행한 것이 더 많았다. 수저부터 가구에 이르기까지. 집을 짓는 건 문고리부터 내외장재까지 수많은 선택을 내려야 진행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 속에서 나와 남편은 참 많이 다퉜다. 연애할 때도 결혼을 하고도 싸움이라고는 해본 적 없던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대차게 싸워 댔다.
카페를 열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메뉴별 컵을 고르는 것부터 카페 구조와 가구, 벽 색깔, 인테리어, 소품의 위치, 커피 금액에 이르기까지. 쉬운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선택이라기보다 차라리 지옥에 가까웠다. 집을 짓고 난 뒤라 연이은 선택은 더 힘겹기만 했는데, 때문에 힘이 빠진 나머지 적잖은 부분에서 너무 쉽게 결정을 내려버리기도 했다. 그 결과는 가까운 미래에 결국 후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내게 밀려왔고. 그러면 또 다른 결정을 해야 했다. 혹은 내가 내린 결정을 묵묵히 감당하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작고 작은 선택들이 모여 조화를 이뤄야 할 때는 더 난감했다. 카페와 집이 그런 경우였다. 개별적으로는 마음에 들어 선택을 해도, 하나로 합쳐 보면 잘 어우러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보통 의상을 코디할 때 평소 시도하지 않았던 스타일에 도전하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아이템을 새로 장만해야 할 때가 있는데, 카페나 집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를 바꾼다는 건 전체를 바꿔야 한다는 뜻이었다.
집이야 내가 사는 공간이니 그냥 지내면 그뿐이지만, 카페의 경우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어 적잖은 고민이 뒤따랐다. 비용도 용기도 없었던 나는 그저 내가 한 선택을 받아들이고 책임지는 수밖에 없었다. 시일이 흘러 또 작은 선택의 기로에 설 때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해보려 애를 써야 했다. 그런 삶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것에 비하니 지금 출판을 위해 내리고 있는 결정들은 수가 많지 않아 보인다. 고민은 길었지만, 막상 선택하고 나니 뒤돌아보지 않게 된다. 번복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어쩌면 나는 번복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린 결정들은 곧 실물이 되어 내 두 손에 쥐어지겠지. 그때에 나는 순간의 후회를 또 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선택을 내린 것에 만족하고 싶다. 길고 긴 터널을 이제야 빠져나왔으니 뒤돌아보고 싶지는 않다. 눈앞에 무엇이 닥칠까 염려하고 싶지도 않고. 그저 지금 이 지점에 놓인 나를 격려해야지.
선택에 지친 때문인지 저자 프로필은 단숨에 적어냈다. 학력이나 경력을 줄줄이 적을 생각도 없고, 나를 화려하게 꾸밀 생각도 없어, 그저 담담히 떠오르는 대로 적어 내려갔다. 내가 쓰는 사람으로 살아오면서 가장 사랑하는 순간은 그저 담담히 적던 순간 그 자체이기도 했으니. 굳이 치장하지도 않고, 애써 메시지를 던지려 안간힘을 쓰지도 않았다. 손이 가는 대로 두서없이 지껄이는 게 내가 가장 사랑한 쓰기의 순간이기도 하니.
이제 마지막 퇴고가 남았다. 작은 책 한 권을 내는 데도 이렇게 많은 에너지가 드는데, 나보다 훨씬 밀도 있고 무게감 있는 책들을 내는 저자들은 대체 어떻게 작업을 하는 걸까. 하나의 정신으로 흔들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하며 글을 쓴다는 건, 인간이 홀로 할 수 있는 일인가. 가늠할 수 없는 집중력을 보여주는 온갖 책들을 떠올리며 경외심을 품는다. 아직 내게는 멀기만 한 저 너머 어딘가의 능력 같아 보인다.
그 사이 온 가족은 계절 열병과도 같은 코로나를 뚫고 지나왔다. ‘왜 하필’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 그런 시간을 지난 것뿐이니까. 의문은 적절한 곳에 품어야 한다. 아무 곳에나 말고. 나는 다시 훌훌 털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잘 자고 먹고 걸으며, 잘 읽고 쓰고 사유하는 유유히 흘러가는 하루로. 그런 하루들이 쌓이고 쌓이면 나는 또 폭풍 같은 선택의 순간들로 접어들겠지. 그때는 지금보다 한결 여유로운 선택들을 할 수 있기를 다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