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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Feb 18. 2024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해

읽고 쓰는 일상이 버벅댄다

읽고 쓰는 것에 의무감을 느끼는 편이다. 스스로를

쓰는 사람으로 정의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읽는 것이 끊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읽고 쓰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연휴 내내 집을 떠나 있어 일상을 지속하지 못하기도 했고, 다녀와서도 자꾸 체력이 고갈되는 느낌에 시달린다. 아이가 방학이다 보니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 온전히 내 일에 집중하지 못하기도 하고.


쓰고 보니 왠지 핑계만 잔뜩 갖다 붙인 것 같다. 정작 원인은 내게 있는데, 내가 게을러 못한 것뿐인데 애꿎은 주변만 나무라는 모양새랄까. 사실 읽고 쓰는

일 말고 잡다한 다른 일들을 더 하고 있다. 의무감에 정의감에 시작한 일들이었고,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 어깨에 올려진 짐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책임감 때문에 차마 돌이킬 수가 없었다.


도움을 청할 때와 받을 때를 구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정도를 잘 가늠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나는 여전히 도움을 잘 청하지 못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한다. 해서 늘 혼자 감당하고 일상이 버거워질 정도가 되어서야 자책을 한다. 또 이러고 있다며. 아직도 나는 그대로라며.


도움을 청해야 하는 일이 하나 있고, 내려 놓아야 하는 일이 하나 있다. 두 가지를 멀찌감치 세워두고 차일피일 시간만 죽이고 있다.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사이 내게 가장 중요한 읽고 쓰는 일은 점점 멀어져 간다. 공백이 필요하다. 삶의 공백, 삶의 여백. 여백이 없는 삶은 사유할 수 없으니, 생각도 깊어지지 않고 타인의 견해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니.


덜어내야만 하는 시간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도와달라 말해야 하고, 이제 그만 하겠다 선언해야 한다. 여백을 찾아야 내가 꼭 해야 하는 일들에 집중하는 삶으로 건너갈 수 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며 나를 설득한다. 멀찌감치에서 현 상황을 관망만 하고 있던 나를 가까이 불러내 말을 건다. 이제 더는 늦으면 안 된다고. 제자리로 돌아가자고.


용기를 내야 한다. 이상하게도 용기는 벽에 부딪히고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내게 된다. 좀 더 가벼운 사람이 되고 싶다. 바로바로 알아채고 용기 있게 말하고 실현하는 사람. 망설이고 끙끙대고 혼자 고군분투하는 사람 말고. 사람 바꿔 쓰는 게 이렇게나 힘들다. 용기가 선이라는 니체의 말을 마음에도 책에도 새겨놓았으면서, 나는 여전히 이렇게 서성인다.


정의감은 위험하다.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 내가 가장 잘 해낼 수 있다는 생각, 내가 다 껴안으려는 생각까지. 사람이 힘들고 상황이 버거워도 나눠야 한다. 내가 가진 정의의 정의는 결코 정답이 아니니. 나를 돌보지 않으면서까지 껴안는 건 선이 아니니. 나는 나를 바라보며 이제 제발 내려놓으라고 사정을 한다.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다. 이 짐을 내려놔야 읽고 쓰는 일상이 다시 원활해지리라. 이만 내려놓자. 삶의 뼈대만을 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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