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이름을 처음 짓던 밤이 생생하다. 땅 하나를 보고 간 참이었고, 대체 카페 이름을 뭘로 하지 고심하다 문득 산책 나온 밤에 ‘동네’ 두 글자가 보름달처럼 내 머릿속에 둥실 떠올랐다. “동네 어때? 동네.” 위치도 뜻도 개인사에서도 의미가 있는 이름이었기에, 남편과 나는 퍽 흡족했다.
검색을 해보니 다른 지역에 동명의 카페가 하나 있었다.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흐를수록 동명 카페의 규모가 커졌다. 프랜차이즈가 되더니 연달아 2, 3호점이 들어선 것. SNS에서도 동시에 검색되는 걸 한참 지켜보다 결국 이름을 슬며시 바꿨다. ‘제주동네’로. 별별 이름을 다 떠올려봤지만, 결국 이전 이름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로 결정을 지은 것.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슴슴한 이름이, 우리 부부에게는 애착이 가기도 하고 아쉬움이 묻어나기도 하는 이름이, 수 년간 우리 카페의 간판이 되어주었다.
‘글방을 해야지’ 마음을 먹고는 수첩에 떠오르는 대로 이름을 적어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오랜 시간 필명으로 쓴 현안이었다. 현안글방으로 할까, 순우글방은 좀 민망하니. 제주어 사전을 낱낱이 뒤지고, 온갖 좋은 말들을 다 갖다 붙이다 문득 ‘섬’이 떠올랐다. ‘동네’를 만났던 그 밤처럼, 어느 날 갑자기 둥실 내 마음에 ‘섬’이 들어찼다.
섬. 우선 발음이 마음에 들었다. 서어엄. 왠지 천천히 공들여 발음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아니나 다를까 사전을 찾아보니 섬은 장음이었다. ‘섬:’인 것. 천천히 소리나며 입 속을 야물게 가득 채우는 느낌이 꽤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island라는 뜻도 있지만, ‘서다’의 명사형이 된다는 것도 좋았다. 쓴다는 건 멈춰야 가능한 일이니까. 바쁘게 나아가기보다 느리게 멈춰 서서 나를 들여다 봐야만 쓸 수 있는 게 글이니까.
오랜 단골 손님 하나가 ‘오다 주웠다’는 느낌으로 툭 놓고 가신 책의 제목도 ‘섬’이었다. 알베르 카뮈의 스승으로 알려진 장 그르니에의 에세이집. 손님은 그 책을 놔두시면서 “이 책은 이 집과 잘 어울려. 왠지 여기에 있어야 할 것 같아.” 두 마디의 말을 남기셨다. 늘 혈혈단신으로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시는 손님이었는데, 한 번 같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너무나 죽이 잘 맞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곤 했다.
그 분은 아셨을까. 미래의 내가 그 책에 영향을 받아 글방 이름을 ‘섬’이라고 지으리라는 걸.
“섬들을 생각할 때면 왜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일어나는 것일까? 난바다의 시원한 공기며 사방의 수평선으로 자유롭게 터진 바다를 섬 말고 어디서 만날 수 있으며 육체적 황홀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섬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섬에 가면 ‘격리된다(isole).’-섬(ile)의 어원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섬, 혹은 ‘혼자뿐인’ 한 인간. 섬들, 혹은 ‘혼자씩일 뿐인’ 인간들.”
책을 읽어 내려가다 이 글귀에서 나는 망부석처럼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지난 십 년간 섬에 살면서 수없이 들었던 양가적 마음이 그대로 녹아 있었기에. 섬은 때로 자유로웠지만 때로 감옥 같았다. 사방의 바다는 때로 두 발을 지느러미처럼 유연하게 만들었지만, 때로 두 발을 차가운 모래 속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가두었다.
나는 나의 선택이 낳은 결과 속에서 허우적대며 십 년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격리와 자유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갔을까. 글을 정신없이 쓴 뒤부터 격리된 삶 속에서도 자유 찾는 법을 조금 알게 되었다. 가족 안에서 나를 찾는 법 역시. 지긋지긋한 과거 속에서 나를 구해내는 법도 글로 알게 되었고. 글이 나를 살렸다고 해야 할까.
섬에 대한 정의도 공감이 갔지만, 무엇보다 사람을 섬으로 표현한 게 탁월해 보였다.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결국 혼자인 사람. 혼자뿐인 사람. 나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 그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기에 자유와 격리를 오가며 나를 이해하고 나를 보듬으며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
나로 살고 나로 서려면 나를 드러내야 한다. 인간에게 예술이 필요한 건 그 때문. 형태가 무엇이든 드러내는 삶이라야 나를 알 수 있다. 나를 안을 수 있다. 글쓰기는 나를 위한 예술이다. 아무런 재능이 없어도, 어떤 조건과 환경의 사람이라 해도, 할 수 있는 단 하나가 바로 글쓰기인 것.
내가 ‘섬’에서 멈춰 ‘서서’ ‘섬’처럼 혼자일 뿐인 당신과 함께 글을 쓰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게 바로 글방 이름이 ‘섬’이 된 까닭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