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잘 안 구해진다. 글방 말이다. 그럼 그렇지. 단박에 사람이 들어차고 그럴 리가 있나. 책 한 권 냈다고 사람들이 금방 몰려와 함께 글을 쓰자고 할 리가 있겠나. 어림없는 소리. 세상이 그리 쉬웠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테지. 글을 쓸 필요가 없었을 테지. 그나마 구해진 사람들과도 오해와 이해관계가 얽혀 불협화음을 내고 말았다. 능숙하지 못한 초보 글방지기의 수난사라고 해야 할까.
속 끓일까 봐 걱정이라는 지인의 염려에 별생각 없던 나는 새삼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괜찮은가. 사실 사람이 구해지지 않으면 내 글을 쓰면 된다. 돈은 못 벌겠지만,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만 살아야 하니 빠듯하겠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된다. 그건 큰 걱정이 되지 않는다. 참고로 나도 글로 돈을 벌긴 한다. 아주아주 적은 돈이지만.
면이 서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 텐데... 이런 상황이 정말 그렇게 판단할 일일까.
‘첫 술에 배부르랴.’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온갖 속담을 가져오지 않아도 처음은 많은 것을 너그러이 용서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인스타그램 같은 SNS상에서는 거르고 걸러 좋은 모습들만 보이니, 누군가는 어려움 하나 없이 일을 착착 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삶이라는 게 그리 쉬울 리가, 인생이 그리 간단할 리가, 있을까.
쉬운 인생은 없다고 믿는 나에게 SNS 세상은 마치 일부분만 수면 위로 드러낸 거대한 빙하처럼 보인다. 수면 아래 무엇이 있을지는, 얼마나 큰 얼음 덩어리가 자리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사자밖에는. 그러니 함부로 부러워하거나 함부로 연민하지 않는다. 나는 나만의 길을 내려하니 굳이 고개를 돌리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타협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SNS를 싫어하지만 열심히 해야 할지도 모르고(나름 열심히 하는 중이다), 타인에게 강권하는 걸 꺼리지만 어느 정도는 권유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활동하는 플랫폼은 이런 홍보를 하는데 적합하지 않으니, 인스타그램이라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안 하던 짓을 하려니 영 쉽지가 않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다. 사람은 바꿔 쓰는 거 아니라는 데 내가 딱 그 모양이다. 배가 덜 고픈 걸까.
온라인 수업 문의가 있는데, 그렇게 하면 조금 더 사람을 구하기가 쉬울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오프라인 수업을 고집한다. 인구도 적은 시골에서 무슨 똥고집인지. 불경기라는 제주에서 무슨 배짱인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어쩌면 조만간 고집을 꺾고 온라인 수업을 시작할지도 모르지. 도무지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다. 내가 선택한 길은 이런 길이다.
프리랜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이기도 하다. 다이어리에는 빼곡히 일정이 적혀 있다. 글방 수업은 시작도 안 했는데 일상이 참 공사다망하다. 학교일에, 집안일에, 아직 끝나지 않은 공사에, 어쩌다 맡은 토론글쓰기 수업 하나까지. 빨래를 널고 청소기를 밀다 회의를 하고 수업 자료를 만든다. 글감을 짜내서 글을 쓰고 틈틈이 책을 읽는다.
카페를 그만 두면 숨 좀 돌리고 살까 싶었는데, 여전히 촘촘한 일상 사이클을 돌고 돈다. 카페를 그만 두면 집안일에 좀 더 정성을 기울일까 싶었는데, 나는 여전히 살림에 취미가 없다. 사람은 상황이 바뀐다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나는 나를 보며 알아챈다. 나는 애초에 살림과는 친해질 수 없는 사람인 것. 눈은 자꾸 밖으로 향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에 온 신경의 초점을 맞춘다.
쓰다 보니 명색이 글방 주인인데 글이 산으로 간다. 글방 이야기를 했다가 프리랜서로 사는 어려움을 이야기했다가 살림 못하는 스스로를 드러냈다가. 이런 글도 있고 저런 글도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난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내 손을 잡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갈 수 없다는 걸, 나는 결국 그 길을 걷기 시작한 뒤에야 깨닫는다. 걸어야만 보이는 길이 있다.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진리가 있고.
바람이 차다. 오월인데. 바람이 거세게 몰아친다. 육지엔 사흘째 비가 온다더니 육지가 되지 못한 섬은 홀로 서서 흘러드는 바람만 하염없이 받아들인다. 오월이면 마냥 따뜻할 줄 알았는데, 난데없는 날씨에 몸과 마음이 움츠러든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흘러 결국 진땀이 나는 계절로 들어서겠지.
내가 고집해 걷는다고 모두 길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잘못 들어섰다면 방향을 잡아 다시 길을 내야 할지도 모른다. 도서관 강연 자리를 알아볼까. 온라인 수업을 계획해 볼까. 아이들과 하는 토론글쓰기 수업을 더 늘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머릿속의 수많은 생각들이 난잡하게 흩어져 있다.
잘 안 되면 다른 길로도 가봐야지. 내가 선택한 삶은 고속도로가 아니라 인적이 드문 산길이다. 발길이 뜸하다 해서 길이 아닌 건 아니다. 길이 되려면 길이 될 때까지 걷는 수밖에 없는지도. 이런 나의 걸음은 고집인가, 뚝심인가. 아직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