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순우 Dec 12. 2024

무너진 일상을 복원해야지

아이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어느덧 2년이 훌쩍 넘었다. 집과 카페밖에 모르던 사람에게 학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자 낯선 사회생활의 시작점이었다. 조용한 일상에 굳이 변화를 꾀한 건 글 속에서만 정의롭기 싫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글을 쓰다 보면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그른 일을 글 속에서 주장할 리 없으니, 옳은 것에만 힘을 싣는 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가 무슨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것만 같다.


현실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작은 내 삶 속에서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할지라도, 사회 속의 나는 그저 쓰는 사람일 뿐이었다. 말이 아닌 발로 뛰는 사람이고 싶었다. 언행일치를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다 내 주변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로 찾은 게 학교 일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만 했고, 그 뒤에는 보호자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보호자 동아리를 운영하는 일을 맡았다. 그러다 올해는 보호자 책 동아리의 대표를 맡고 학부모회에서도 일을 하게 되었다.


보호자는 교육의 3주체라 불린다. 혁신학교의 경우 그 역할이 일반학교에 비해 더 크다. 일은 많지만 손은 늘 부족하다. 그런 텃밭이다 보니 나서서 하겠다 마음을 먹은 사람에게 일은 끊이지 않고 주어졌다. 일이 너무 많아 버거워하는 회원들을 위해 대표를 맡으며 동아리 일을 대폭 줄였지만, 학부모회 일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밀려드는 회의와 일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1년을 보냈다.


정기적인 회의와 독서모임, 각종 행사 기획과 준비 등. 학교를 내 집 드나들 듯 오가고, 각종 회의 속에서 온갖 의견들을 듣고 내뱉어야 했다. 대외적으로 맡은 역할이 많고 하겠다 마음을 먹었으니, 최선을 다해 책임을 지는 것만이 답이라 생각했다. 하루하루 밀려드는 일을 체크해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하나씩 처리했다. 보수는 받지 못하지만 보통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이어왔다. 그리고 이제 12월이 되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돌아본다. 나는 나를 시험하는 시간을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며 스스로가 단단한 동시에 유연해졌다는 느낌을 많이 받곤 했다. 자존감도 이전보다 높아진 느낌이었다. 이런 내가 사회에 나가 다시 사람들과 부딪히면 어떨까,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또 쉽게 상처를 받고 넘어지는 건 아닐까. 궁금증에 더 깊이 파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활동하며 위기의 순간이 올 때마다 나를 돌아봤다.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돈이 주어지지 않는 일이었고, 품은 많이 드는 일이었으니 수시로 나를 점검하며 내가 하는 일에 동기를 부여해야 했다. 내 아이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를 위한다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내가 속한 공동체의 건강을 위한 일이라고 자주 내게 말을 걸었다.


모든 난관이 그렇지만, 고비고비마다 결국 나를 들여다 보게 된다. 스스로를 혼자 하는 일이 더 맞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정말 그런지, 여럿이 함께 하는 생활에서 내가 힘들어 하는 지점은 무엇인지를 돌아봤다. 더 나은 공동체가 되려면, 더 건강한 소통을 하려면 어떤 태도와 방식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글을 꾸준히 쓰기 이전보다 훨씬 유연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일희일비 하지 않았고,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마음을 다쳐도 깊은 고민 속에 근원을 응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혼자 끙끙 앓기보다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더 중요한 일에 에너지를 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 내가 기특하기도 하고, 꾸준한 글쓰기의 힘이 이렇게 세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 보인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득만 있진 않았다. 실도 많았다. 너무 많은 시간을 학교 일에 쓰다 보니 정작 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올해는 내게 무척 중요한 해였다. 2월에 첫 책을 출간했고, 3월에 십 년을 운영하던 카페를 접었다. 지난한 공사를 마치고 글방을 오픈했다. 작은 수업들을 이어갔지만, 제대로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2년 전부터 해오던 인터뷰의 경우 올해 열 명을 채우는 게 목표였지만, 추진할 시간이 없어 결국 여덟 번째에서 멈춰서야 했다.   


고정적인 삶에서 프리랜서의 삶으로 건너가니, 내 시간을 운용하는 건 오롯이 내 몫이었다. 새로운 일을 추진하자니 에너지가 많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텃밭을 갈고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으며 관리해야만 하는데, 자신이 없으니 더 학교 일로 눈을 돌렸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부터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 일에 대한 불확실성이 나를 더 학교 일로 도피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제자리로 돌아오니 일상의 너무 많은 것들이 무너져 있다. 매일 쓰던 글쓰기는 한 달에 고작 2-3편 쓰는 글쓰기로 전락했다. 학교 일과 관련한 글을 쓰긴 했지만, 나를 위한 글,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은 이전보다 훨씬 적은 양 밖에 쓰지 못했다.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어느 정도 루틴에 따라 움직이는 삶을 살고자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들쭉날쭉한 일상 속에 간신히 맡은 일들을 처리해왔다.


습관을 잃은 게 가장 뼈아프다. 카페를 운영할 때는 늘 같은 시간에 문을 열고 닫아야 해 틈틈이 글을 읽고 쓰는 게 자연스러웠는데, 그 부산한 와중에도 책을 낼 정도로 몰입하는 삶을 살아 왔는데. 고정된 일이 없으니 나는 자꾸 망설인다. 스스로 작은 목표를 설정하고 하나둘 해나가던, 성과를 넘어 꾸준함을 추구하던 나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그냥 하면 되는데, 고민만 반복하는 이전의 나로 다시 돌아와 있다. 감옥 같았던 카페 일이 내게 오히려 부지런한 삶의 루틴을 만들어주는 원동력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얻는 게 있으니 잃은 것도 있다. 어쩌면 잃었기에 얻을 수 있었는지도. 삶의 덧셈과 뺄셈은 가혹할 정도로 칼 같다. 이전의 삶을 놓지 않았다면 나는 이 일도 저 일도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마음의 지옥 속에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후회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글 밖으로 뛰쳐나와 내 나름의 사회 활동을 하고자 했던 나의 다짐이 그른 건 아니었으니. 혼자 일하는 게 더 맞는 사람이지만, 사람과 끊임없이 부딪히는 사회생활 또한 이전보다는 조금 더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확인했으니 그걸로 되었다.


얼마 전 한 인터뷰에 응했는데, 이런 질문이 있었다.


"작가님이 하는 일을 통해 꼭 이루고 싶은 바람 혹은 꿈은 무엇인가요?"


그에 대한 나의 서면 답변은 이것이었다.


"꼭 이뤄야 한다, 이것만은 내가 꼭 해야지, 이런 바람은 솔직히 없는 것 같아요.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그저 오늘의 내 삶을 부끄럽지 않게 살아내는 게 제 바람이에요."


아이들과 24시간 붙어있으리라 예상되는 방학이 코앞이고, 먹고살 걱정이 밀려오지만, 그럼에도 다짐한다. 규칙적인 삶을 살겠다고. 몸에 안 좋은 음식들을 멀리 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삶의 정답은 없지만 그럼에도 정답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해답이 있다면, 그건 결국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을 부여잡고 한없이 게을러지는 몸과 마음을 다시 붙잡는다. 무너진 일상을 복원해야지. 다시 삶의 균형을 찾아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