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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Oct 31. 2024

날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날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아침부터 머릿속을 채운 문장이다. 생일이라서. 생일이니까.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날이니까. 내 생일은 핼러윈. 죽을 때까지 내 생일은 기쁜 날인 동시에 슬픈 날이다. 이태원 참사가 있은 뒤로 이맘때가 되면 자동적으로 그날의 사건이 떠오른다.      


누군가의 생일이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진 날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 전쟁 속에서도 생명이 태어나고, 누군가 폭죽을 터뜨리는 순간에도 누군가의 목숨은 사그라든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건 당연할지 모르지만, 하필 내 생일 즈음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는 건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악몽 같았던 생일을 지나 보내고 어느덧 2년이 흘렀다.     


다시 생일로 돌아와 날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되묻는다. 떠오르는 건 오직 하나, 글이다. 나를 위한 글을 쓰자. 나를 위한 글, 나만을 위한 글, 내 영혼을 달래기 위한 글. 그런 글을 쓴 지가 오래되었다. 필요에 의한 글, 목적이 분명한 글들을 쓰고 있다.      


요즘은 글보다 디자인을 더 많이 하고 있는 듯하다. 느즈막이 배운 디자인이 여기저기 쓰일 때가 많아, 자주 이것저것 만드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그림도 못 그리는 사람이 팔자에 없던 디자인이라니. 십 년 아니 오 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아마 내 삶이 아니라 부정할지도 모르겠다.      


언니가 보내준 케이크 쿠폰으로 베이커리에 가서 내 몫의 케이크를 직접 샀다. 미역국은 늘 다음날인 남편의 생일날 끓이곤 하는데, 올해는 웬일인지 일찌감치 끓일 생각에 핏물을 빼기 위해 고기를 물에 담가 두었다. 요리하는 걸 즐기지 않는 편인데, 흑백요리사를 보고 나서는 조금 즐겨보려고 마음을 바꿔보고 있다.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 않아 늘 30분컷 요리로 밥상을 채우지만, 마음만은 정성스럽게 차린 식탁을 놓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렇게 공을 들인 밥상이 왜 다른지 잘 알고 있다. 들인 공에 비해 허무하게 사라지는 음식들이 못마땅했는데, 그 음식들이 쌓여 결국 나를 그리고 우리 가족을 움직이게 한다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삶이 요동친다. 요즘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건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선천적으로 돈만 보고 달려가는 걸 못하는 사람인 데다, 홍보에는 젬병이다 보니 글방 일은 진전이 별로 없다. 학교 일이 비대해져 시간적 여유가 허락하지 않은 탓이 제일 크지만. 계속 내년을 생각한다. ‘내년에는... 내년에는...’ 현재만 살기로 한 사람이 내년을 떠올린다는 건 행복하지 않은 증거일까.     


불행하게 살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꼭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조금 더 나의 일상을 나를 위해 쓰고 싶은 것뿐. 일상 전부를 아이들만을 위해 쏟아붓기에는 나는 아직 작고 작은 인간인 것 같다. 내 아이들만을 위한 일상을 보내는 것도 힘겨울 때가 있는데, 다른 아이들까지 챙긴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분명 해야 하는 일인데. 그게 나일 수도 있는데... 스스로가 가진 그릇보다 더 큰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자주 넘어지고 상처 받고 되돌아 보고 두들긴다. 잘 가고 있는 건지,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지 몰라 자주 뒤를 흘끔 거린다. 맞지 않는 엄마의 뾰족구두를 신고 계단을 오르내리던 어린 날의 나를 마주하고 있는 것만 같달까.     


아침부터 종일 머릿속에 온갖 문장들이 범람했는데, 막상 자리에 앉아 글을 쓰자니 대부분 휘발돼 남아 있지 않다. 문장을 잡기보다 흘려보내는 날들이었구나. 알고 있었으면서도 도장을 찍듯 글로 새기니 내가 해야 할 게 무엇인지 더 또렷해진다.      


내가 요즘 하고 싶은 건 단 하나. 읽고 쓰고 사유하고 또 읽고 쓰고 사유하는 것. 복잡해질수록 본질로부터 멀어진다. 돈이 되든 되지 않든, 남들이 보든 보지 않든, 나는 써야 하는 사람. 멀어질수록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선명해진다. 내가 서야 하는 자리가 어디인지,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예전의 나보다는 꽤 단단해졌지만, 그럼에도 이따금 흔들리는 자신을 바로 세우고 싶다.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언제 처음 가졌던가. 생즉고. 삶이 즉 고통이듯, 살아가며 흔들리지 않는 건 불가능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런 날을 꿈꾼다. 계속 읽고 쓰고 사유하다 보면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큰 것엔 마땅히 분노하고 싸우겠지만, 작은 것은 그저 흘려 보낼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다시 나를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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