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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Oct 17. 2018

이제 막 엄마가 된 당신에게

두려워하지 말아요


첫 아기를 낳고 이주 간의 조리원을 거쳐 드디어 집으로 돌아오던 날.

그날의 나를 떠올리면 캄캄한 머릿속이 떠오른다.

나름 조카들이 크는 걸 가까이에서 지켜봤고 아기를 평소에도 이뻐하던 나였지만, 막상 진짜 엄마가 되고나니 어느것 하나 익숙지 않았다.


한동안 내 손길이 닿지 않은 집에 도착하니 남편이 아무리 청소를 했다해도 내 눈엔 온통 일거리뿐이었다.

아기를 한쪽에 뉘이고 창을 열고 물건을 정리하고 청소를 하고.

아기의 살림들을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도 몰라 서성이던 시간들.


남편을 위해 각방을 쓰다 다시 합치기도 하고.

두 시간마다 이어지는 수유로 몸도 마음도 지쳐갔던 시간들.

한 고비를 넘기면 또 한 고비가 찾아오고, 아이는 늘 새로운 과제를 내게 부여하곤 했다.

매너리즘이라고는 빠질 수 없는 육아라는 길고 긴 여정.


친한 친구가 아기를 낳고 집에 돌아왔다는 연락을 받고선 마음이 계속 그곳으로 향했다.

그때의 내가 떠올랐고 지금의 그가 자꾸 아른거렸다.


아무리 책을 읽고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도 현실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상황들에 어찌할 바를 몰랐던 시간들.

부모가 되는 건 한 사람을 길러내는 일임에도 교육되지 않고 그저 부딪히고 고뇌하고 다시 부딪히는 일의 연속임을 그때는 정말 알지 못했다.


둘째를 낳고 짧은 조리원 생활 후 집에 돌아올 때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아직 어린이집에도 가지 않는 첫째와 아무것도 모르는 둘째를 한 집에서 어떻게 가족으로 만들어나갈지 암담하기만 했다.

조리원 퇴실을 앞두고 남편과 통화하며 하염없이 울던 밤이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깨달았다. 울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이 내 앞에 놓여있다는 것을.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늘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해야 했다.

첫째 책을 읽어주며 둘째 우유를 먹이고.

꺼이꺼이 울어대는 둘째를 두고 첫째 똥기저귀를 갈고.

첫째가 호기심에 아기를 만지거나 찔러보면 늘 조마조마하면서도 여유로운 척 하고.

두 아기가 모두 울어대면 행여나 동생을 미워할까봐 첫째부터 안아 달래고.

둘째가 아무리 이뻐도 첫째 앞에서는 애정표현도 하지 못하던 날이 있었다.


열거하기 시작하니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에피소드들.

지금은 어느덧 색이 바래 기억이 옅어진 아쉬우면서도 다행인 지난 날.


일년만 내가 없다 생각하자 마음을 먹었고 그렇게 둘째의 돌을 지나고.

어느덧 둘째는 19개월이 되었다.

첫째가 동생을 본 게 21개월이었을 때니 둘째의 나이가 거의 그때와 비슷해진 것.


돌이켜보니 나는 언제 이 시간들을 지나왔나 새삼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이제 막 출발선상에 선 친구들을 보니 뭔가 마음이 짠하다.


난 늘 벽에 부딪혔고 그때마다 조언을 구할 사람을 찾을 수 없어 대신 책을 펼쳤다.

정확한 답을 주는 책은 없었다.

다만 읽을수록 이건 꼭 실천해야지 하는 것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나만의 길을 만들며 한 발 한 발 내딛었던 지난 날.


아직 갈 길은 멀다.

이제 아이들은 겨우 40개월 19개월.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또 벽에 부딪힐 것이다.

그때마다 난 또 고뇌하고 책을 뒤지겠지.

나만의 답을 찾아내기 위해 또 열심히 일상을 살아낼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의 친구가 그리고 이제 막 엄마가 된 당신이.

우린 모두 미성숙하고 우린 모두 엄마가 처음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예상보다 늘 몇 뼘은 더 세상을 이해하고 있는 놀라운 존재들이다.


고군분투하는 내게 친언니는 문득 그런 말을 해주었다.

너무 완벽하게 하려 하지 말라고.

뒷통수를 맞은듯 그 말을 듣고는 한동안 좀 멍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든 잘해보려, 처음이지만 처음이 아닌 것처럼 잘해내려 노력했던 내 자신이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부모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실은 부모가 아이들의 도움을 받을 때가 참 많다.

부모도 실수를 하고 부모도 빈틈이 있다는 걸 아는 아이들은 부모를 위로하고 이해한다.

처음 부모가 되었을 때는 나 혼자 모든 걸 해야한다는 생각에 더 머릿속이 캄캄했다.


아이 둘을 낳고 놀라운 날들을 수없이 경험하고나니 부모가 되는 건 혼자만의 길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아이가 커갈수록 아이와 질문하듯 그렇게 함께 길을 찾아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기를.

당신 앞에 놓인 그 작은 존재가 언젠가 당신과 함께 길을 걸어가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있을테니.

당신은 분명 혼자가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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