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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선인께

by 박순우

예전에 인수위 시절,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반대하며 썼던 글. 얼룩소가 문을 닫는다고 해서 이곳으로 옮겨둔다. 이때만 해도 계엄령까지 선포할 줄은 몰랐는데…




안녕하세요. 저는 지방에 살고 있는 평범한 워킹맘입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인수위 관련 기사가 쏟아지네요. 대통령 자리에 앉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게 얼마나 많을까요. 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매일 쏟아지는 일거리에 몸과 마음이 지치는데, 하물며 한 나라라니요. 정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하루하루가 아닐까 합니다.


제가 이렇게 바쁘신 분께 편지를 쓰는 건 다름아니라, 대통령 집무실 이전 때문입니다. 설마설마했습니다. 청와대를 이전한다고? 그 밖에도 할 일이 많으실텐데, 청와대를 기꺼이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이전까지 하신다니요. 국민들을 생각하는 당선인님의 마음이 이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근데 말입니다, 청와대를 왜 국민에게 돌려준다고 생각하셨나요? 청와대는 원래 국민의 것은 아닌데 말이죠. 청와대는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대신 잘 좀 일하라고 허용한 공간이 아닌가요. 지금도 청와대 견학은 가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국민에게 돌려준 건 청남대 하나로도 충분합니다. 청남대는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으로, 1983년부터 대통령의 공식 별장으로 이용되던 곳이죠. 청남대 개방은 유시민 작가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직접 부탁해 이뤄진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저는 아직 가보진 못했지만, 언젠가 한번 꼭 가보고 싶습니다. 넓은 잔디밭과 숲길, 양어장에 초가정까지 정말 볼거리가 많더군요. 사실 지금의 청와대보다 더 좋아보입니다.


그런데도 굳이 청와대를 왜 국민들에게 돌려주려고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국민들은 청와대보다도 더 좋은 핫플레이스를 많이 알고 있답니다. 이제 당선인님은 얼굴이 많이 알려지셔서 잘 다니지 못하시겠지만, 저희는 사실 휴무일을 놓칠세라 꼬박꼬박 잘도 싸돌아 다닌답니다. 코로나로 해외 여행길이 막혀도 문제 없습니다. 전국을 누비며 열심히 여행을 다니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저희들이 갈 곳이 없을까 걱정하는 마음은 넣어두셔도 됩니다.


집무실 이전 자리로 용산구에 위치한 국방부가 거론되고 있더군요. 유현준 건축가가 그러는데 거기가 그렇게 전망이 좋다면서요? 신의 한수라는 말까지 하더군요. 국방부에게만 내주긴 좀 아까운 자리인가 봅니다. 아무리 좋은 자리라고는 하나 인테리어 공사에, 사무실 이전까지 하려면 너무 번거롭고 힘드시지 않을까요. 아, 물론 일이야 실무진들이 하겠지만 말입니다.


이 조그만 집구석도 이사를 하려면 힘이 참 많이 듭니다. 웬 살림살이가 그렇게 많은지. 꺼내도 꺼내도 또 나오는 짐에 파묻혀버리기 일쑤죠. 하물며 청와대입니다. 얼마나 짐이 많을까요. 게다가 국방부에도 직원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던 집기나 자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일이 많아 힘들어하는 공무원들이 당선인님 말 한 마디에 모든 짐을 싸야할 판입니다. 하던 일은 멈추고 말이죠. 아니죠 아니죠. 하던 일도 해야 하죠. 나랏일이라는 게 어디 잠깐 멈췄다가 할 수 있는 일인가요. 그러다 과로로 쓰러지는 분들이 나오진 않을까 염려도 되네요.


당선인의 목숨은 이제 당선인님의 것만이 아니라는 걸 아시나요.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대통령에 버금가는 경호를 받고 계시죠. 청와대로 가시면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편하게 경호를 받고 안전하게 나랏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방부로 가시면 어떨까요.


대통령의 안전은 그 나라에게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 청와대에 최고의 경호와 보안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그 때문이죠. 대통령이 한번 어디를 방문한다고 하면 그 곳은 난리가 납니다. 혹시 모를 테러를 비롯해, 안전에 대한 점검을 하고 또 하죠. 그런데 아예 집무실을 옮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선인님을 지키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장치를 하고, 점검을 해야 할까요. 평범한 시민인 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국방부는 어떨까요. 국방부가 단순히 군장성들 사무실은 아니지 않나요. 전시에 대비한 각종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겠죠. 상황실이라던가, 작전통제실이라던가, 죄송합니다. 제가 국방부에 무슨 시설이 있는지 잘은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대충 짐작해봐도 저는 도무지 이 중요한 시설들을 모조리 빼고 집무실로 바꾼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국방부가 이사를 하려면 그 시스템들을 모두 잠시 멈춰야 할텐데, 우리나라 안전에 공백이 생기는 건 아닐까요.


이전비용도 상당히 든다고 하더군요. 최소 500억에서 최대 1조까지 예상된다고 하던데, 역시 청와대는 스케일이 다르네요. 하긴 이 작은 집구석도 이사를 하려면 몇 백이 드는데, 대통령 집무실이라니요. 얼마나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까요.


국민과 더 가까이에서 소통하기 위해 이전한다고도 들었습니다. 저희들 이야기를 그렇게 듣고 싶어하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용산으로 이사를 하더라도 저희가 아무때나 집무실을 방문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저희가 뭐 테러범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통령인데 이웃사촌처럼 얼굴 맞대고 매번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지 말입니다.


제가 어쩌면 너무 심한 염려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골머리를 앓았던 지라, 하물며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라고 하니 걱정이 너무 많이 되더군요. 참, 예산에도 이사 비용은 들어가 있지 않다고 하던데, 그 비용은 어찌 충당할 생각이신가요. 물론 당선인님이야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혹시나 혹시나해서 말입니다. 참, 아무리 대통령 당선인이라고는 하나 취임 전에는 집무실 이전이나 공사를 지시할 권한이 없다고 하더군요. 이것도 알고 계신 거겠죠?


토론회에서 보니 잘 모르면 다른 후보들께 묻기도 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은 참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저렇게 겸손하고 배우려하다니. 지금도 여전히 그런 자세를 유지하고 계시는 거겠죠. 실무진들이 아무쪼록 당선인과 인수위의 권한을 잘 알고 일을 추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물론 잘 하고 계시겠지만, 혹시나해서 말입니다.


코로나 확진자수가 최고 60만 명을 찍었고, 유래없는 산불피해로 복구의 손길도 시급합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정세도 심각하게 돌아가고, 인플레이션도 걱정입니다. 참 대통령 자리라는 게 아무나 할 수는 없다는 게 실감납니다. 이 모든 짐들을 안고 가셔야 하는데 건강이라도 나빠지실까 걱정이 됩니다. 게다가 이사까지 하시려면 무척 힘드실텐데 말이죠. 저도 이사 한번 하고 나면 며칠 앓아 눕는답니다. 이게 보통 일이어야지 말이죠.


쓰다보니 글이 꽤 길어졌네요. 저는 자영업자인데 코로나 확진자수가 치솟은 뒤 요즘 도통 손님이 없어서 매일 이렇게 글이나 쓴답니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당선인님께 편지도 쓰게 되었네요. 국민들을 배려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청와대 쓰는 거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괜히 이사한다고 난리치지 마시고, 부디 시급한 현안에 집중하는 날들 보내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참, 제 필명이 마침 현안이기도 하답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두서없는 편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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