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소 서비스 종료로 퍼오는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방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워킹맘입니다. 지난 번에는 집무실 이전 문제로 윤석열 당선인께 편지를 띄운 적이 있는데요, 어쩌다보니 이번에는 이준석 대표님께 편지를 보내게 되었네요. 이전 편지가 뜨거운 반응을 얻어 얼룩소에서 무려 300개가 넘는 좋아요수를 받았거든요. 제가 뭐 또 좋아요수를 많이 받고 싶어서 이러는 건 아니고요.(뭐 솔직히 좋아요수를 많이 안 받고 싶다면 거짓말이겠지만요.) 한번쯤 편지를 띄우고 싶었는데, 마침 기사 하나를 읽고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이렇게 행동에 옮기게 되었답니다.
제가 편지를 다시 쓰게 만든 건 다름이 아니라 드디어 이준석 대표님과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의 토론회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도화선이라는 말이 있죠. 어떤 사건을 일으키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 말입니다. 전장연이 오랜 시간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관련한 시위를 진행했지만, 사실 이게 실제 문제 해결까지 이르게 될 거라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도화선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던 것이죠. 이 과정에서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도 많았고, 장애인들의 답답함을 인정은 하나 왜 하필 가장 복잡한 시간이냐며 볼멘소리를 내뱉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요. 물론 대놓고라기보다는 뒤에서 말이죠.
사람이란 말입니다, 참 희한하게도 타인에 의해 불편한 상황이 벌어져도 자신보다 그 사람이 약자라는 생각이 들면 직접 그 마음을 면전에 대고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약자를 공격하는 파렴치한 인간 같은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아무리 불편해도 그렇지, 오죽하면 시위에 나섰을까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래도 이건 아니지,하고 말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대표님은 참 용감하게도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합니다. 전장연이 성역이 아니다, 시민들을 왜 볼모로 삼느냐 하면서 말이죠. 사람들은 잠시 당황합니다. 어? 나도 좀 불편하긴 했지만 앞에 나서서 말을 직접 할 수는 없었는데 저 사람은 대표라더니 말도 막 하네, 이렇게 말이죠. 그리고 잠시 상황을 살핍니다. 타인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죠.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재밌는 일들이 연거푸 벌어집니다.
그동안 전장연 시위에 딱히 반응이 없었던 이준석 대표님이 몸 담고 있는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까지 이 시위에 대해 한 마디씩 하고 나선 것이죠. 사실 이전까지는 영 반응이 없었거든요. 원래 해왔던 대로 없는 사람들 취급을 했달까요. 그래서 늘 전장연의 시위가 구멍난 독에 물 붓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대표님의 발언 이후 국민의힘 의원들까지 나서서 오히려 그 발언에 대해 사과하는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나라가 선진국이라 하겠는가? 게다가 고령인구가 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는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전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아 이게 과연 내가 알던 나경원 의원이 맞는가. 내가 알던 국민의힘이 맞는가. 여기에 민주당의 몇몇 의원들은 갑자기 휠체어 체험에 나섭니다. 일각에서는 쇼라고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쇼면 어떻습니까. 체험을 한다는 건 참 아름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저도 사실 장애인 이동권에 관심이 많지 않았는데요, 아이를 키우면서 유아차를 몇 번 끌어보니 절로 장애인 이동권에 관심이 갔답니다. 오랜 시간도 필요 없어요. 정말 딱 한 시간만, 아니 삼십 분만 유아차를 끌고 다녀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도로들이 얼마나 장애인들과 유아차, 거동이 힘든 노약자들에게 불편하게 설계되어 있는지 말이죠. 경험해보는 것과 경험해보지 않는 것은 이렇듯 정말 큰 차이가 난답니다.
이준석 대표님이 의도를 했든 안했든 도화선에 불은 붙었고, 결국 오는 13일 토론회까지 잡혔습니다. 저는 손꼽아 이날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알람까지 맞춰 본방송을 시청할 예정입니다. 어린 두 아이들과 함께 말이죠. 장애인 이동권 보장은 정말 오랜 시간 목소리를 높여온 일이지만, 오랜 시간 외면 받아온 일이기도 합니다. 대학 때 저상버스 도입을 위한 시위에 한번 나간 적이 있는데요, 단 한 명의 기자도 없이 시위하는 분들을 보면서 이분들은 정말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런데 티브이에서 맞짱토론이라니요, 이 얼마나 흥분되는 성과인가요.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해오면 싸우던 나라들도 다함께 힘을 합쳐 외계인 물리치는데 힘을 보탤 것이란 말이 있죠. 아군도 때론 적이 되고, 적군도 때론 아군이 되는데 외계인이라는 존재는 바로 이런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이번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관련된 논란에서, 이준석 대표님은 과연 전장연의 아군이었는지, 적군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의도를 했든 하지 않았든 용기있는(?) 발언을 통해 도화선 역할을 하시면서 오히려 전장연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이번 기회에 제대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목소리들을 내게 되었으니까요.
제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온 수십 년 동안 장애인과 관련한 문제가 이렇게 뜨겁게 논란이 되고 수면 위로 올라온 적은 단언컨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덕분에 마음이 들뜹니다. 하루 빨리 토론회를 시청하고, 의견들이 모아져 더 이상 장애인들이 집에서만 숨어지내는 게 아니라 비장애인들과 함께 거리를 누볐으면 좋겠습니다.
한번은 아이들과 한 중증 장애인의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무섭다는 말을 하더군요. 순간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평소 보지 못해서일뿐 우리 주변에는 크고 작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답니다. 시골이라 다문화 가정의 친구나 지적장애를 앓는 친구 등 제법 다양한 친구들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희 아이들이 실제 중증 장애인을 마주하는 경험이 드물었던 것이었죠.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많은 장애인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비장애인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더 이상 아이들이 장애인의 존재를 낯설게 여기지 않고, 그저 똑같은 이웃일 뿐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기를 고대합니다. 제가 아이들과 함께 토론회를 기다리는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이 편지는 감사의 편지랍니다. 스스로 외계인을 자처해 각종 욕을 먹으면서도 결과적으로 문제를 제대로 수면 위로 올려놓는데 일조하신 점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이쯤 되면 이준석 대표님은 적군이 아니라 전장연의 아군이 아닐런지요. 참, 이왕이면 토론회에 가실 때 쇼라고 생각지 마시고 휠체어를 타고 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분명 경험을 해보는 것과 해보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나니 말입니다. 그럼 13일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참, 아군이신 건 비밀로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