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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실수인가, 인간의 실수인가

by 박순우

2022/09/08 얼룩소



얼마 전 한 지인이 무료이미지 제공 사이트인 픽사베이에 ‘청년’을 검색했더니 가슴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다수의 여성 사진이 나와 놀랐다는 말을 전했다. 청년이라는 일반적인 단어에 누가 이런 사진을 적용해둔 걸까. 단순 실수이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오늘 이런 기사를 마주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미디어감시팀에 따르면 팀은 지난 5일 "성적인 의미가 없는 일상어를 검색했을 때 성적이고 성차별적인 이미지가 노출되는" 문제 검색어를 선정하고, 인터넷상의 성차별적 유해환경을 개선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구글·네이버 등 대형 포털 사이트 측에 전달했다.

포털 사이트 이용자들이 △원래 뜻과 상관없는 선정적인 이미지 다수 검색되어 지는 검색어 △신체 노출이 심하고 특정 신체 부위를 강조하거나 성적 대상화된 여성의 이미지가 다수 발견되는 검색어 △유해한 연관 검색어가 노출되는 검색어 등의 사례를 단체 측에 제보했고, 단체는 해당 검색어와 검색어에 따른 문제적 검색결과들을 포털 측에 전달했다. - 위 기사 일부 인용 -


단체가 지적한 단어는 호불호, 레전드, girl, 여대생 등으로 이 단어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특정 신체를 강조한 여성의 사진이 상단에 노출된다. girl의 경우 영어를 배우는 어린이가 언제든 검색해볼 수 있는 단어다. 성에 대한 개념도 잘 잡히지 않은 아이가 이런 검색 결과를 마주하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포털이 제공하는 검색 보조기능도 성 편향적이다. 일상적인 단어를 검색해도 그 단어 뒤에 여성과 관련된 다른 단어가 따라와, 결과적으로 여성의 신체를 과장해 드러내는 이미지가 노출된다. 이런 이미지 중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동의 없이 촬영됐을 가능성이 농후한 사진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이런 사진들은 별도의 성인인증을 하지 않아도 공개되고 있다.

아이들이 이런 이미지에 별도의 절차 없이 마구잡이로 노출된다면 어떻게 될까. 자라는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정형화된 여성의 이미지가 자리잡혀 있을리 없다. 이런 이미지의 과다 노출은 결국 특정 부위가 강조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줄 것이다. 거기에 성 역할에 대한 편향된 시선도 갖게 될지 모른다.

성별 간의 불균형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추고자 진행되고 있는 성인지 교육은 최근 몇 년 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시대에 걸맞는 성평등 인식을 어릴 때부터 심어주는 건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검색 포털이 유해한 환경을 노출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오히려 교육에 반하는 행보가 아닌가.

2013년 유엔여성(UN Women)은 구글 검색엔진에 '여성'을 입력했을 때 알고리즘을 통해 '여성은 투표를 해선 안 된다' 등의 차별적 문구가 제공된다며 성평등 캠페인 광고를 제작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인공지능 챗봇 서비스인 'AI 이루다'가 일부 이용자들의 성차별적 채팅을 그대로 반영해 타 이용자들과의 대화에 노출하면서 인공지능 윤리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이런 문제는 이용자들의 성편향 문제일까, 포털의 방관이 문제일까. 이용자들이 가진 편향의 문제를 포털이 사전에 차단할 수는 없겠지만, 드러난 문제가 확대 재생산 되지 않도록 후속 조치는 할 수 있다. 포털은 책임감을 인식하고 편견과 차별을 심어주지 않는 환경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의 실수라고 하기에, 나태한 인간의 실수가 결코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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