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2 얼룩소
인간은 원래 혼자
인간은 원래 혼자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남편이 있고 자식이 있지만 그럼에도 어떤 순간이 되면 나는 나로만 서고 싶어진다. 사실 가장 갈구하는 것도 혼자만의 시간이다. 드러누워 있든 책을 보든 글을 쓰든 밥을 먹든 잠을 자든, 누구의 간섭이나 방해 없이 내가 하고자 하는 걸 자유롭게 하는 시간. 그렇다. 나는 혼자 있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다.
나이가 점점 들어간다. 나는 이제 고작 사십대 초반이지만 종종 죽음을 떠올린다. 이상한 수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태연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래 전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사형을 앞두고 최민수는 말한다. “나 떨고 있냐?” 그렇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다. 후회와 아쉬움이 폭풍처럼 들이닥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떨고 싶지 않다. 죽음을 오롯이 맞설 내면의 준비가 아직 되진 않았지만,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누구보다 편안하게 미련 없이 삶을 끝내고 싶다. 이제야 내 삶이 끝났노라고, 후회는 크지 않았노라고 말하며 눈을 감고 싶다.
독거노인은 불행한가
그런데 의문이다. 나는 자식과 함께 살 생각이 없고, 혼자 있는 걸 즐기는 사람이다보니 굳이 요양원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다. 남편과 오랜 시간 함께 하면 좋겠지만 언젠가는 둘 중 하나가 먼저 갈 것이다. 큰 병이나 사고가 없다고 가정한다면, 남녀 평균 수명의 차이를 감안할 때 홀로 남는 사람은 내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나의 죽음은 고독사가 되는 걸까. 나는 홀로 내 집에서 살다 내 집에서 죽고 싶은데 그래도 이는 고독사일 뿐일까.
사람들은 청년, 중장년은 괜찮은데 갑자기 노년이 되면 혼자 사는 건 고독하다고 말한다. 노년에 혼자 있으면 외로우니 친구를 사귀러 요양원에 들어가거나 자식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혼자 있는 걸 그토록 좋아하는 내가 노인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친구랑 함께 하는 일상을 즐기고 자식들에게 짐이 된 듯한 생활을 만족하게 될까. 아무리 곱씹어봐도 내게 맞지 않는 옷이란 느낌이다. 노인은 혼자 살면 고독하기만 할까. 그렇게 홀로 있다 죽으면 내 죽음은 안타깝기만 한 고독사가 되는 걸까.
홀로 늙어가는 사람의 수는 증가 추세
지난해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0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에 따르면, 미혼 인구 비중은 모든 연령에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30대는 2015년 36.3%에서 2020년 42.5%로 5년 사이 6.2%p의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30세 이상 이혼인구의 비중도 증가 추세로 2010년 5.3%에서 2015년 6.5%, 2020년 7.2%로 상승했다. 2020년 기준 50대 미혼 인구는 62만 명이다. 50대 전체 인구의 7.4%로, 남성이 44만 명으로 여성(18만 명)의 2.4배에 달한다.
인구학에서는 50대에 미혼이면 평생 미혼으로 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이들 중 일부는 요양원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겠지만-혼자서 노년과 죽음을 맞이하는 인구 역시 계속 증가한다고 볼 수 있다. 결혼을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안 하는 경우도 많다. 비혼주의자는 점점 늘고 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혼자만의 삶을 꾸려나간다. 이들이 이르는 삶의 종착점은 모두 고독사일까.
사고의 전환
- 고독사를 재택사로
여기 ‘고독사’라는 말을 ‘재택사’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과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를 쓴 우에노 지즈코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70대 비혼인 우에노 교수는 자신의 즐거운 ‘나 홀로’ 삶과 풍부한 사례 연구를 바탕으로 ‘싱글예찬론’을 꾸준히 펴고 있다. 나이 들어 혼자 사는 것은 불쌍하거나 비참한 일이 아니라며, 편견이 따라붙는 노인의 삶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오사카시 이비인후과 의사 쓰지가와 사토시가 60살 이상 환자를 대상으로 벌인 면접조사 결과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460명이 대답한 이 조사에서 혼자 사는 고령자의 생활만족도(행복지수)는 가족과 동거할 때보다 오히려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독거노인은 불행하다고 여기는 통념과 전면 배치되는 결과다. 물론 이 결과는 경제적 어려움이 적은 대도시 근교 주택가의 중산층 고령자가 조사 대상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인이 너무 많다 보니 일반적인 조사에서는 홀로 맞이하는 노후가 곧 불행으로 왜곡돼 나타난다는 것이다.
함께 사는 사람의 수를 구분해 만족도를 비교한 이 조사에서는 부부 또는 ‘부모 한쪽+자녀 1인’으로 구성된 2인가구의 만족도가 가장 낮았다. 서로에게 애정이 없는 은퇴한 부부나 성년이 된 자녀를 뒷바라지하고 있는 노부모가 독거노인보다 훨씬 불행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특히 은퇴 후 24시간 함께 하면서 늘어나는 간섭과 잔소리, 불균형한 가사노동 등은 서로의 우울증과 불쾌지수를 심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념을 깨는 조사결과는 무척 흥미로웠다. 우리는 늘 독거노인의 삶은 무의미하거나 외롭고 비참한 것으로만 여겨왔다. 진짜 노인의 삶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노인 중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극심한 경우도 있지만, 연금이나 자산으로 일상을 적당히 누리며 사는 사람도 있다. 하이라이트를 비춰야할 곳은 전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후자에게도 관심은 필요하다. 당신은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린 적이 있나. 노년에 어떤 일상을 살다 가기를 원하나. 우리 사회에서 홀로 맞이하는 죽음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를 불쌍하게만 바라봐야 할까. 홀로이지만 함께인 죽음으로 갈 수는 없을까.
덧. 어쩌다보니 시리즈입니다. 세 편쯤 쓰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독사와 재택사라는 서로 다른 개념을 들여다보면서, 홀로 만족하며 사는 노후, 홀로 태연하게 맞이하는 죽음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제 혼자만의 능력으로 깊이 들여다보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여러분이 함께 생각과 지식을 나눠주신다면 풍성한 논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참고한 글들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우에노 지즈코 저
“암으로 죽고 싶다”…‘임종 케어’ 의사들 선택, 왜 암이냐면 , 한겨레신문
죽어서도 외면 당하는 고독사…기준없어 통계도 못낸다 ,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