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품위있는 죽음2] 홀로 죽음은 노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by 박순우

2022/10/14 얼룩소



암에 걸려 죽고 싶다는 사람들


박완서 작가는 담낭암 투병을 하다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벌써 십일 년 전의 일이다. 작가의 투병 소식보다 더 충격이었던 건 사실 작가가 원하던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었다. 박완서 작가는 평소 주변에 암에 걸려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 차 사고 같은 갑작스런 죽음보다 암에 걸려 서서히 죽음을 맞고 싶어 했다. 이를 처음 알았을 때는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병마와 싸우다 죽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자다가 가는 건 복이라는 어른들의 말처럼 어디 아픈 곳 하나 없이 건강히 살다 자면서 고통 없이 죽는 것, 그게 죽음 중에서는 그나마 괜찮은 죽음으로 받아들여진다.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적어도 그렇다.


하지만 이상은 현실과 다르다. 건강수명이라는 말이 있다. 기대수명에서 질병 또는 장애를 가진 기간을 제외한 수명으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특별한 이상 없이 생활하는 기간을 의미한다. 2020년 현재 여자의 기대수명은 86.5세, 남자는 80.5세로 평균 83.5세다. 이에 반해 건강수명은 2019년 기준 여자 74.7세, 남자 71.3세로 평균 72세다. 이는 적어도 수 년의 병치레하는 시기가 존재한다는 걸 의미한다. 사람들의 소망은 아마도 건강수명이 늘어나는 것일테다. 아픈 상태로 수명만 연장하는 걸 원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박완서 작가는 왜 암에 걸려 죽고 싶어 했을까. 지난번에 소개한 우에노 교수 역시 암으로 죽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주치의 제도가 있고 왕진 의사가 많다. 이들이 살던 곳에서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임종 케어’라고 한다. 우에노 교수는 임종 케어를 실천하는 일본 의사들이 죽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면 암으로 죽고 싶어 한다고 전한다. 암 선고를 청천벽력으로 받아들이는 보통 사람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이 생각의 전제는 고령일 경우다. 나이를 많이 먹은 뒤 암에 걸려 죽고싶다는 이야기다. 이유는 이렇다. 암은 죽는 시기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어 미리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 노인의 암은 빨리 진행되지 않는다. 말기에 이르기까지 신체활동을 할 수 있으며 마지막까지 의식이 또렷하다는 장점을 지닌다. 대신 혼수상태에 빠지면 단시간에 죽음에 이른다. 이런 암의 특성은 이들을 암에 걸려 죽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한다. 건강하게만 살다 가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죽음 앞에 몸과 마음의 대비를 할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고독사든 재택사든 정확한 실태조사부터


혼자 살다 혼자 죽는 것, 재택사가 아니라 고독사라 불리는 건 혼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숨진 뒤 오래 방치된 현장의 끔찍함 때문이다. 죽음의 현장이 방치되는 걸 막으려면 가족, 친구, 지인 등과의 연락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게 필수다. 걱정과 달리 나이가 들면 천천히 쇠약해지기 때문에 돌연사는 드물고 죽음은 대체로 예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문제는 예상 외로 노인이 아닌 중장년층이다. 노인은 노인돌봄 시스템이나 가족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는 경우가 다수지만, 중장년층은 사실상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중장년층은 오히려 노인층보다 돌연사가 많고 병이 갑작스레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 단적인 예로, 2020년 알코올성 간 질환이나 위염 등 음주로 사망한 사람 수가 5000명을 돌파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중 다수가 혼자 사는 중장년층이었다.


고령사회 진입과 1인 가구 증가로 고독사는 해마다 늘고 있지만, 제대로 집계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올해 첫 실태조사를 실시할 예정이지만 지역마다 그 기준이 달라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독사 추정 사망자 수만 알 수 있는데 2019년 659명, 2020년 845명, 2021년 953명으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무연고 사망자 수를 보면 수치는 훨씬 증가한다.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홀로 죽음을 맞는 '무연고' 사망자 수는 2018년 2447명에서 2021년 3603명으로 4년만에 1.4배가 됐다. 성별로 보면 남성이 여성보다 3배 가량 많았다. 특히 중장년층인 50-60대는 남성이 여성보다 많게는 10배 가량 더 사망자 수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홀로 죽음을 맞이했지만 시신을 인수할 가족이 있으면 '고독사', 시신 인수자가 없거나 가족이 거부하면 '무연고사'로 분류한다. 12개 지자체는 무연고사 자료를 제출했고, 서울과 부산, 제주는 자체적인 고독사 집계 자료를 냈다. 광주, 전북, 경북, 경남은 자료가 아예 없어 제출조차 하지 못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초고령사회 대비 고독사 대응 현황과 과제'보고서는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뿐만 아니라 통계청, 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국민건강보험공단, 사회보장정보원 등 다양한 관계기관들 간 정보 협력과 거버넌스 구축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확한 데이터를 취합하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독사를 재택사로 인식 전환을 하려면 우선적으로 시신이 방치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한 알맞은 정책을 설계하려면 바탕에 둘 기초 자료가 필수적이다. 정책 기반이 될 자료가 탄탄해야 제대로된 정책도 만들 수 있다. 그래야 늘어나는 고령자와 1인 가구의 시대를 제대로 대비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마련된 고독사예방법에 따라 하반기 중으로 첫 고독사 실태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아직 집계 기준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별도의 기준을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춧돌이 제대로 놓여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재택사로의 인식 전환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참고한 글들

e-나라지표, 건강 수명기대 수명
죽어서도 외면 당하는 고독사…기준없어 통계도 못낸다 / 뉴시스
“암으로 죽고 싶다”…‘임종 케어’ 의사들 선택, 왜 암이냐면 / 한겨레신문
죽음조차 외로웠다…5060 고독사, 남자가 여자보다 10배 많다 [채기자의 현장]
알코올 사망자 역대 최다… “혼자사는 5060이 다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품위있는 죽음 1] 독거노인은 불행하기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