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0 얼룩소
어설픈 첫 발을 떼다
정부가 늘어나는 고독사, 무연고사를 막기 위해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한 건 두 해 전이다. 고독사 예방법 시행령에 따라 관계 중앙행정기관장과 시·도지사는 매년 12월 31일까지 다음 연도 고독사 예방 시행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지자체들은 이에 발맞춰 각종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야 첫 발을 뗀 셈이다.
‘국민안심서비스’ 앱은 1인 가구 노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합천군이 시작해 경남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12시간 동안 사용자가 휴대전화를 쓰지 않으면 등록된 자녀나 이장, 담당 공무원 등의 전화번호로 문자 메시지가 전송된다.
부산시는 도시가스 검침으로 고독사를 막고 있다. 도시가스 사용량이 급격히 줄거나 냉장고 문 여는 횟수가 ‘0’이 되면 위험 신호를 분석해 고독사를 예방하는 디지털 서비스다.
서울 서초구는 어르신들이 불안과 우울함을 극복하고 건강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치매 어르신부터 독거어르신 등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AI(인공지능) 로봇’을 도입했다. 인형 모습의 로봇은 애교 섞인 어투로 약 복용 시간과 운동 시간 등을 알려주고, 움직임이 없을 경우 보호자에게 긴급 메시지를 보낸다.
경기 군포시는 관내에서 고립된 50가구를 대상으로 'AI 안부전화 서비스'를 시범운영한다. 이 서비스는 네이버가 개발한 ‘클로바 케어콜’ 시스템의 인공지능(AI)이 주 2회 자동으로 돌봄 대상자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건강 상태·식사 여부 등을 확인하고, 대화를 나눠 정서적 안정을 지원하는 서비스다. AI 상담 결과는 시 무한돌봄센터 복지담당자에게 자동으로 전송된다.
기술의 힘만으로 가능할까
지자체들이 택한 방식은 대부분 기술의 힘을 빌리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다는 이유로 스마트폰을 이용한 앱이나 AI 로봇·서비스 등을 주로 활용한다. 사람의 발이 닿기 어려운 곳에 기술이 역할을 해내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에만 치중하는 게 과연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고독사는 줄일 수 있으나, 고독을 관리하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기술은 움직임을 감지해 문제가 생겼을 때 보호자나 담당자에게 연락하는 단순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쓰러지거나 죽음을 감지해 알리는 것이다. 홀로 죽음을 맞이한 뒤 시신이 오랜 시간 방치되는 걸 막는 데에만 급급한 느낌이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지속적으로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돌봄이 필요한 곳이 없는지 살피는 부분은 빠져있다. 단순한 해법 제시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자체의 근시안적 대책도 문제가 있지만, 일정한 가이드라인 없이 지자체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정부의 안일함도 문제다.
정책의 초점을 죽음이 아닌 삶에 맞춰야 한다. 사망 후 빨리 발견하는 것은 기술적 문제로 쉽게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죽음에 이르기까지 홀로 살아가는 이들이 '잘' 살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잘 죽는다는 건 잘 살다 간다는 걸 의미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의 고통이나 사후 처리보다 그 전의 삶이 얼마나 잘 굴러갔는지가 더 중요하다. 혼자 사는 이들이, 혼자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보완책이 마련돼야 하는 이유다.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노인 돌봄'
최근 시사인은 [코로나 대응, 현장을 가다]라는 이름으로 영국, 일본, 스웨덴을 방문해 코로나 시대 다른 대응을 해온 나라들의 사례를 집중 조명하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일본 사례에서는 '방문 진료'에 집중한다. 일본에서 코로나 방역을 주도하는 법적 지위는 중앙정부가 아닌 '도도부현(광역지자체)'이 가진다. 이는 한국처럼 일사분란한 방역을 하지는 못하지만, 지역 상황에 맞춘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의료진이 환자를 직접 찾아가는 방식은 코로나 유행 기간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취약계층의 의료 접근권을 유지하고 사회적 고립을 막는 장치가 되었다. 자가격리 중 상태가 악화됐을 때 병상을 기다리는 것 외의 의료적 처치를 받을 길이 없던 한국과 대조된다.
시사인은 이 '방문 진료'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의제인 '노인 돌봄' 문제를 모색할 단서로 본다. 일본은 초고령 시대를 맞아 늘어나는 복지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1986년 방문 진료를 제도화한다. 요양 시설에 입소하는 것보다 자신의 집에 거주하며 진료, 간호, 요양 서비스를 받는 게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65~74세 인구의 7%, 75~84세의 30%, 85세 이상의 60%가 방문 진료를 이용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장에서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은 바로 지역 의료진이다. 기사에서 소개한 오미나미 패밀리 클리닉은 오전에는 진료실을 열고, 오후에는 방문 진료에 나선다. 의사, 간호사, 원무과 직원 이렇게 셋이 한 팀을 이루는데 원무과 직원은 환자의 생활환경, 가족관계, 경제적 상황 등을 파악한다. 10분이라는 짧은 방문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방문 요양'을 나가는 요양보호사인 헬퍼와 담당 사회복지사와도 계속 소통한다.
코로나 유행 기간 드러난 문제점도 있었다. 노인 돌봄은 의료진의 '방문 진료'와 요양보호사 헬퍼들의 '방문 요양'이 함께 박자를 맞추어야 하는데, '방문 요양'부문에 가산 수당이 책정되지 않아 헬퍼들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목욕을 시키거나 집안일을 돕는 이들의 방문이 끊기면서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건강 상태가 악화되는 등의 문제가 생기는 가정이 늘어났다.
고독사에서 재택사로 가려면
기술의 힘에만 의존하려는 한국 지자체의 방향과 비추어볼 때, 일본의 '노인 돌봄'은 훨씬 다각적이어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 팀을 꾸려 활동하는 의료진과 지자체 담당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까지. 여기에 적절히 지급되는 세금과 사회적 관심도 필수로 보인다. 여기에 연령별 맞춤 정책도 필요해 보인다. 중장년층 남성의 경우 고독사 비율은 높지만 방문 진료나 요양은 필요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들이 처한 실질적인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이에 맞는 정책 개발이 필수적이다.
노인의 경우 지자체 별로 다른 서비스 제공을 습득하고 이용하는 게 번거로울 수 있다. 이런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직접 방문 홍보와 실태 조사 파악이 필수적이다. 어르신들 중에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파악하고 이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코로나 같은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시에도 방문 요양과 진료가 지속될 수 있도록 관련 매뉴얼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물론 한국은 이제야 첫 삽을 떴으니 앞으로 더 다양한 정책이 개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술에만 의존하고 다른 지자체 쫓아가기에만 급급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기우이길 바란다. 한국 사회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1인 가구 증가 속도도 심상치 않다. 자신이 살던 집에서 살다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겉잡을 수 없을 만큼 늘어날 것이다. 소득과 자산을 넘어 보편적인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하는 이유다.
재택사를 보편적인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마음 편히 혼자 살다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자식이 있든 없든, 결혼을 하든 하지 않았든, 소득이나 자산이 있든 없든,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하고 홀로 죽음도 담담히 맞이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사회가 완성된 어느 날, 나 역시 내 집에서 홀로 살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덧. 무언가에 이끌리듯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무척 부족한 시리즈가 되었습니다. 더 다각도로 접근해보고 싶었지만 역량 부족이었어요. 초라한 시리즈이지만 우리에게 닥친 '홀로 죽음'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하루빨리 대안을 마련하는데 아주 작은 도움이라고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참고한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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