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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은 정말 '문제'일까

by 박순우

2022/04/08 얼룩소



저출생은 나쁘다, 저출생 문제로 미래 사회를 떠받칠 인력이 없다, 경제 인구가 줄어든다 등의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이따금 지구를 떠올립니다. 인간을 위해서는 인구가 늘어나는 게 옳다고 하나, 과연 지구를 위해서도 인구가 늘어나는 게 마냥 좋은 일일까.


인구가 늘어나서 좋은 건 누구일까. 기업이겠죠. 그리고 고령화 되어가는 또 다른 인간이겠죠. 기업은 소비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야 수익이 더 증대되기에 인구가 늘어나면 가장 이익을 볼 수 있겠죠. 국가도 일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야, 세금을 낼 인구가 늘어나야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고 더 많은 곳에 배분할 수 있겠죠. 국민연금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의 노년을 미래에 떠받칠 일하는 젊은 세대가 줄어드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듯, 결국은 인간의 문제를 풀기 위해 인구의 문제를 꺼내는 건 아닐까요.


반면 지구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 있습니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동식물의 수는 먹이사슬에 의해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하죠. 그런데 어쩌다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폭발적인 수로 증가를 했습니다. 게다가 생태계 자체를 자신들의 손으로 바꾸고 있다면, 지구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어, 이게 아닌데? 갸우뚱하지 않을까요. 지구를 구성하는 생태계가 자연선택적이지 않고 인간선택적인 것, 과연 지구를 위해 자연을 위해 바람직할까요.


인구는 산업혁명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19세기 초반에 지구의 인구는 10억 명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약 80억 명에 육박합니다. 갑자기 인구가 증폭한 시기는 불과 200년밖에 되지 않은 것이죠. 인간이 자연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시기도 바로 급격히 인구가 증가한 이 시점부터죠.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수명을 크게 좌우한 건 사실 영아 사망률이었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들의 사망률이 워낙 높아 전체적인 인간의 평균 수명도 낮았던 것이죠. 하지만 19세기 초부터 영아 사망률은 의학의 발달로 급격하게 감소합니다. 인구가 늘어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죠.


인구만 늘어난 게 아닙니다. 인간에게 주 단백질 공급원이 되는 동물들의 수도 급격하게 증가하죠. 축산업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887년이고 소, 돼지, 닭의 밀집 사육 축산이 시작된 것은 1926년이라고 합니다. 키우기 쉽고 빨리 자라 인간의 선택을 받게 된 이 동물들의 개체수는 실로 어마어마하게 늘었습니다. 탄소배출량을 좌우할 정도니까요.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와 인간에 의해 선택적으로 늘어난 동물의 수를 보면서 과연 지구는 흡족해 할까요. 결과적으로 엄청난 인구가 만들어내는 쓰레기에 몸살을 앓고, 인간의 선택을 받지 못한 생물들의 멸종을 초래하고 있지 않나요.


저출생은 왜 문제일까요. 저출생을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아닐까요. 저출생이 문제가 되는 건 결국 경제때문에, 인간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 아닌가요.


인류 역사상 최초이자 가장 적극적으로 여성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시점에, 여성들이 단지 출산과 양육을 위한 존재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당당한 사회구성원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 저출생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물일 수도 있습니다. 페미니즘이 저출생의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게 아닙니다.(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저출생의 원인은 여성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에 물어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다만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도 더 이상 유전자를 퍼뜨리는 게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닌 시대를 살아가면서, 저출생을 계속 문제라고 받아들이는 시선 자체가 혹시 가장 큰 문제는 아닐까요.


그렇다면 시선을 달리해서 저출생을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필연적인 과정이라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인구가 어느 정도 줄어드는 게 인간을 위해서도 지구를 위해서도 당연하다고 여긴다면, 인간이 풀어야 하는 숙제는 저출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인구가 늘지 않아도 원활히 돌아갈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그게 결국 앞으로 인간이 풀어야 하는 진짜 숙제가 아닐까요. 이런 제 생각은 너무 발칙한 것일까요.



도움을 준 책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폴 몰랜드 <인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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