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을 나왔다

공간만 바뀐 글쓰기

by 박순우

도망나왔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네 시간쯤. 갑자기 도망을 결정하고는 부랴부랴 준비해 밖으로 나왔다. 핸드폰, 노트북, 지갑, 책 한 권을 챙겨서. 원래 오늘은 비행기를 타고 도망가려 했던 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단 한 번도 혼자 여행을 가본 적 없었던 나는 이번이 정말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유인즉 남편이 곧 출근을 하게 된 것. 자영업만으로 버텨온 지 만 8년이 넘어가고, 코로나도 끝나가면서 더는 카페만으로 네 식구가 먹고 살기 힘들다 판단한 시점에 남편에게 취업자리가 들어왔다. 다행이 최종합격해 출근이 결정된 상황.


원래 내 목표는 코로나 종식 이전에 글로 어떻게든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기성 작가들도 글쓰기만으로 밥벌이를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어쩌면 불가능한 목표를 처음부터 설정했는지도 모르겠다. 프로젝트 얼룩소라는 플랫폼을 알게 돼 그곳에서 글로 어느 정도 부수익을 얻고는 있지만, 수익의 규모가 애매한 상황. 게다가 플랫폼의 앞날을 확신할 수도 없고. 언제까지 이런 보상 시스템을 가져갈지도 모른다. 결국 작가가 되려면 책을 내야 하는데, 하루아침에 쌓을 수는 없는 일. 책을 낸다해도 어느 정도 이상의 수익을 내는 건 또 다른 문제.


글은 매일 쓰지만,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지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프로젝트 얼룩소를 위한 글인지, 내 자신을 위한 글인지, 헷갈리는 몇 달을 흘려보냈다. 보상은 제법 받았지만 그저 용돈벌이 수준인데다, 안정된 수익도 아니다. 게다가 한동안 활자중독증이 너무 심했다. 얼룩소 글들을 읽고, 각종 기사와 정보들을 읽어내느라 노안을 앞둔 눈은 점점 피로감이 더해갔다. 어느날 문득 정신없이 글들을 읽어내려가다가, 무엇을 위해 글을 읽는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다. 이렇게 눈이 피로한데도 나는 왜 계속 읽는가.


마음이 좀 급했다. 책을 읽지 않은 시간이 길었고, 세상엔 나보다 박학다식한 사람이 널렸으며, 읽고 싶은 책 목록은 내가 읽어내는 책의 수보다 늘 몇 배 빨리 늘어났다. 기계처럼 글을 쓰는 순간이 늘어날수록 기계처럼 읽어내는 시간 또한 늘어난 것. 결국 나는 얼룩소를 놓아버렸다. 얼룩소를 위한 글쓰기를 멈춰버렸다. 보상도 멈추리라는 걸 알지만, 과부하가 걸린 지금을 지속하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며칠을 보내고 그리고 오늘은 결국 도망을 나왔다.


옥빛의 잔잔한 바다와 바람에 살랑이는 야자수, 여행을 떠나 온 사람들, 제주에 살지만 온전히 제주를 느끼며 사는 날은 많지 않다. 바다가 잘 보이는 카페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다 중간중간 한번씩 창밖을 내다본다. 그리고 생각을 내려둔다. 모든 걸 내려놓는 시간. 모든 게 어쩌면 제자리로 돌아가는 시간. 그 시간을 가만가만 어루만진다. 내게 필요했던 진공의 상태. 그 안을 서성인다. 그러곤 역시 나는 도망이 체질이구나싶어 피식 웃는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 세 시간. 결국은 또 글을 쓰겠지. 글을 쓰고야 말겠지. 사실 지금도 결국 글을 쓰고 있지. 글이 뭐라고. 그러고보니 글을 쓰는 공간만 바뀐 도망이다. 못내 멀리멀리 날아가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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