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산다

글을 쓰다 열어버린 판도라의 상자

by 박순우

세상 사람을 과거를 생각하는 사람과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 둘로 나눈다면, 나는 단연 미래가 먼저인 사람이었다. 특별히 꿈꾸는 미래가 있다기보다 과거가 유독 아파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지 않으면 다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상처였다. 그래서 늘 과거를 떠올릴 때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었으니까. 또 살아온 날들을 허물어 내 글을 다시 지어올릴 수 있었으니까.


그런 과거 탓에 누군가 내게 이십대가 좋은지, 지금의 내가 좋은지를 물으면 나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지금의 나를 꼽았다. 겉보기만 화려했지 내면은 썩어가던 이전의 내가 나는 그립지 않았다. 타인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내면을 갖게 된 지금의 내가 나는 그렇게 애틋했다. 이런 내가 되기까지 수많은 상처를 받았기에, 마음을 다잡고 생각을 거듭한 긴 시간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나는 그토록 소중했다.


그러던 내가 과거를 본격적으로 마주한 건 자전적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꼭 쓰고 싶었던 이야기였고 써야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기에 결국 쓰고만 이야기. 초고를 쓰고 두 번쯤 더 고치면서 나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또 하나의 과거와 마주하게 되었다. 글을 구성하던 초반에는 넣을 생각이 전혀 없었던 과거이지만 써내려가면서 필요하다는 생각에 꺼내본 이야기였다.


그 속에는 의외로 꽤 행복했던 내가 살고 있었다. 서른 살 이전의 내 삶에 행복은 없는 줄로만 알았는데 세세하게 과거를 돌아보고 캐내다보니 발견한 분명한 행복이었다. 암흑인 줄만 알았던 시간 속에 그런 날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던 것도 잠시,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글을 쓰지 않을 때도 끊임없이 그때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재생되기 시작했다. 틈날 때마다 문득문득 분명 행복이었다는 걸 어떻게든 스스로에게 알리려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과거는 내 머릿속을 장악해갔다. 그 과거 속에서 머문 지 어느덧 몇 달째.


이제 나는 더 이상 내가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이 소설을 끝내기 전까지 나는 아마도 한참을 더 그 과거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두렵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헛된 욕망을 품는 스스로가 낯설고, 뜬금없이 소환한 과거를 내 안에서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만 같다. 문이 열리고 수많은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결국 이 감정들을 소화할 방법은 나오지 못한 것만 같다.


이 소설을 탈고하고 나면 좀 나아질까. 나는 이 소설을 끝낸 뒤에도 또 내 과거를 뒤져야 한다. 살아온 지난 날들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집을 짓는 게 결국 글이기에, 내가 글을 쓰는 한 아픈 기억이든 행복한 기억이든 내 기억 속의 수많은 순간들을 꺼내고 또 꺼낼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표현하고 써내려갈지 고민할 것이다. 내가 선택한 길이다. 내가 꿈꾸던 삶이다.


그런데 두렵다. 다음번에는 또 어떤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될까. 그 기억은 지금 이곳의 나를 또 얼마나 뒤흔들 것인가. 나를 위한 글쓰기가 행여나 현재의 나를 갉아먹는 글쓰기가 되는 건 아닐까. 글을 쓴다는 게 때로 이렇게 과거를 헤집어 현재까지 헝클어버릴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면, 나는 과연 내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나는 이런 과정을 얼마나 더 겪어야 할까. 작가들은 과거와 현재의 끝없는 변주 속에서 어떻게 매번 중심을 잡고 다시 일어서는 걸까.


여전히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회상한다. 과거란 무엇일까.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는 아니지만, 분명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과거가 있다. 중요한 건 그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정의 내리느냐, 그 정의된 과거를 딛고 지금 나의 삶에 오롯이 집중하느냐다. 몇 달째 과거에 머물고 있는 나는 과연 언제쯤 어떻게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들어선 기분이다. 터널 의 끝은 과거일까 현재일까. 끝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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