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을 포기하지 않고,

세상과 맞서더라도 따뜻하게

by 박순우

프로젝트 얼룩소에서 활동하면서 작은 규모지만 스스로를 내 팬이라 칭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내가 쓰는 글 가운데 사회 이슈에 관한 글보다 사유가 담긴 에세이를 이분들이 더 좋아한다는 걸 잘 안다. 그 분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번은 꼬박 에세이를 쓰려 노력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에세이보다는 사회 이슈 글을 더 많이 쓰고 있다. 민감한 사안들,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사안들에 대해. 게다가 토론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나는 자주 표적이 된다. 손가락질 받는 대상이 되는 것. 오래 서로의 글을 봐오면서 정을 나눴던 사이라도 예외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만 쓰면 되지, 굳이 왜 욕 먹는 글을 쓰느냐고 누군가 내게 물을 수도 있다. 쉬운 길을 놔두고 나는 왜 어려운 길을 갈까. 나의 대답은 장강명 작가가 <책, 이게 뭐라고>에서 쓴 이 글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에세이를 쓰면 치유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내게 에세이 작업의 매력은 거기까지다. 세계에 맞선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세상과 함께 흘러간다는 느낌이다. 긴 장편소설이나 논픽션을 쓸 때 비로소 세계와 싸운다는 느낌이 든다. p192-193


나는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 내가 살아내야만 했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글을 쓰며 스스로가 치유받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종종 공감을 얻으며 글을 쓰는 삶에 대한 동기도 얻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내가 사회 이슈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건 내가 살아내야만 했던 이야기 속에 왜곡된 사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삶이 여기저기 꼬이고 상처가 났을 때, 원인은 단지 한 개인에게만 있지 않다.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분명 존재한다. 과거와는 다른 시대가 다가오고 세상이 변해가는 한, 기댈 곳 없는 한 개인은 속절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나는 글을 쓰며 이런 세상과 맞서고 싶었다.


큰 방황을 했던 이십대에 나는 명함만 세번쯤 바꿨다. 그 와중에 가장 정을 붙이고 오래 한 일은 기자였다. 삼 년쯤 일을 했고, 결국은 손을 놓고 나왔다. 기자를 그만 둔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그럼에도 나와 가장 맞았던 직업이었던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언젠가 이 이야기도 적을 날이 오겠지.) 그 당시 누군가 내게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던져 답을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더 그런 엇갈린 반응을 얻곤 했다. 어떤 사람들은 평소 다른 사람들과 하지 못했던 사회 문제에 대해 갑자기 내 의사를 묻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인상과 다른 일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좋은 점이 있다면 나를 만만하게 보는 사람들이 적어진다는 것. 그저 직업이었을 뿐인데 대접이 달라졌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나는 즐기기도 했고, 동시에 경멸하기도 했다.


그 시절에 내가 배운 것 중 하나를 꼽자면, 글은 칼과 같다는 것. 어떤 글은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기도 하지만, 어떤 글은 사람을 칼보다 더 잔인하게 난도질한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나였다. 그런 나의 글이 자꾸 날카로워진다. 한 문장 한 문장 단어나 조사를 고르고 최대한 상처받지 않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던 오랜 날들이 내게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글을 잘 거르지 못한다. 이렇게 글을 쓰면 쓸수록 내게서 떨어져나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런데도 직설적인 말들을 쏟아낸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말하는 어정쩡한 사람이 되는 게 싫어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나라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자꾸 글이 날카로워진다.


좀 억울했던 것도 같다. 모든 계급장을 떼고 글로만 서로를 보기 바라온 나의 진심이 무참히 짓밟히면서, 단어를 고르고 골라가며 글을 쓴다는 게 한순간 내게 쓸데없는 고된 과정으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았어야 한다. 더 순한 말들을 찾아 설득해야 했다. 찌질하게 핑계를 대자면 나는 좀 많이 지쳐있었다. 동시에 이제 곧 글을 매일 쓸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더 옥죄고 있었다. 어제 읽던 책에서 나는 우연히 이런 나의 고민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어느 정도까지 공격적으로 말해도 될 것인가가 오래 하고 있는 고민이다. '조신하게, 예쁘게 말해'하는 식의 강요는 지긋지긋해서 굴절 없이 똑바로 말하고 싶은데 또 어느 선을 지나치면 따가운 공격성밖에 남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하면서도 부정적 감정의 발산으로 그치지 않도록 적정 수준을 찾는 것. 고민은 하는데 매번 실패하는 느낌이다. 언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정교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면 깎아낸 부분이 남긴 부분보다 많아 심지없는 완곡어법을 쓰게 되고, 세게 밀어붙이는 글을 쓰다 보면 꼭 엉뚱한 사람이 다치게 되어 후회스럽다. ...(중략)...사회적 맥락과 개인을 동시에 온전히 이해하는 것, 내가 쓰는 언어의 요철을 없애면서도 예각을 잃지 않는 것. 그 지난한 두 가지가 포기할 수 없는 목표인 것 같다. 실패하면 그다음 번에 다이얼을 더 잘 돌릴 수 있겠지,하는 마음으로 계속한다.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p119-120>

인기 작가의 고민을 엿보면서, 나는 조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걸, 글을 쓰는 한 펜을 놓는 그 순간까지 끝없는 줄다리기를 하듯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어야 한다는 걸, 그럼에도 하고자 하는 말을 함에 있어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걸, 내 안에 각인한다. 쓰면 쓸수록 실력이 늘어나는 정직함이 좋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작과는 달리 쓰면 쓸수록 책임감이 생기고 더 조심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글을 쓰기로 한 이상 아무리 지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얼마 되진 않지만, 내 글만 보고 나를 마냥 응원하게 된 사람들을 보면서 더 곧게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아무리 날이 선 글을 써도, 그 이면의 나를 오롯이 바라보는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 중 한분이 내게 해준 말을 떠올린다. 아마 내가 평생 기억하게 될 말.

"현안님 글을 읽으면, 따뜻한 밥 한 공기를 든든하게 먹은 기분이 들어요."

그분들이 늘 그런 따뜻함을 가져갈 수 있도록, 포기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앞으로 가리라. 실패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 실패를 실패라 말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실패하더라도 펜을 놓지는 않겠다. 내게 남은 단 하나, 글이므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도망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