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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May 01. 2022

노동을 하는 당신이 아름답다

노동의 의미가 퇴색된 시대에 노동을 돌아본다

나는 인간이 일을 하기 위해 지구에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놀기 위해 왔다고 생각한다. 십수 년동안 일을 하면서 살아왔지만, 일보다는 노는 게 늘 훨씬 더 좋았다. 일을 하며 성취감을 느낀 적도 있지만, 그럼에도 마냥 노는 즐거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무슨 일을 해야할지 몰라 길을 잃고 몇 달을 방에 갇혀 지낸 적이 있다. 오랜 꿈을 막 잃은 시점이었는데,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하고 싶은 일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일을 해야 했다. 학교를 모두 졸업했고 더는 기댈 곳이 없었다. 일을 해야 한다기보다는 돈을 벌어야 했다. 내 앞가림을 해야 했던 것. 그렇게 우리는 어느 순간 자의든 타의든 노동에 뛰어든다.


노동을 신성시하는 문화는 과거가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노동을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다. 돈이 충분해 경제적 자유를 갖게 된다면, 기꺼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 두겠다는 사람이 지속하겠다는 사람보다 더 많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하는 건 노동이라기보다는 돈벌기인 것.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범부는 거의 없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한 노동은 평범한 이들에게 숙명이다.


그 숙명을 벗어나고자 사람들은 재테크를 한다. 투자에 성공해 큰 돈을 거머쥔다면 몇 살쯤 일을 그만 두겠다는 꿈을 꾸는 이들도 많다. 건물주를 꿈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노동하지 않고 사는 삶에 대한 꿈 때문이리라. 이 시대에 불로소득이 많은 사람은 분명 선망의 대상이다. 노동이 밥벌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런 인식은 계속될 것이다. 노동이 대접받지 못하는 시대, 노동을 더 이상 신성시하지 않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간다.


노동을 너무 신성시하는 문화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에서도 밝혔듯 나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지구에 일을 하기 위해 왔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는 자를 게으르다고 비웃거나 노동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을 노동의 가치를 모르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으로 업신 여기는 것 또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인간은 점점 노동이 줄어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노동만이 옳다고 여기는 것은 시대를 읽지 않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이다.


그럼에도 나는 노동이 고귀하다고 말하고 싶다. 기꺼이 노동하려는 마음을 귀중하게 여기고 싶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을 기본적으로 거부한다고 한다. 일을 한다는 건, 새로운 걸 습득하는 과정이니 분명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다. 그 타고 태어난 본능을 거부하고 기꺼이 노동을 하는 것만큼 고귀한 것이 있을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함이든, 빚을 갚기 위함이든, 더 나은 내일을 위함이든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게으른 몸을 일으켜 매일 일터로 나간다는 것. 벗어나고만 싶은데도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자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그런 일상을 더하고 더해 결국 자신의 일생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마음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을까.


일요일과 겹쳐 연휴 같지 않은 연휴가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노동절의 의미를 돌아본다. 노동의 의미가 퇴색된 시대에 노동으로 밥을 먹고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많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이 있어 오늘도 우리 사회가 굳건히 버티고 있음을 되새긴다. 더불어 노동절이 와도 결코 쉬어갈 수 없는 자영업자들 또한 떠올린다. 그들이 있어 노동절에 쉬어가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배불리 밥을 먹고, 여유있게 차 한 잔을 마셨으리라. 노동하는 모든 이들이 참 아름답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급변해도, 이 고귀함만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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