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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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 “좋은 사람”이라 불리는 이들은 누구일까. 이들은 언제나 말수가 적고, 조용하고, 부드럽다. 상대의 기분을 살피며, 큰 소리 내지 않고,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며 분위기를 흐리지 않는다. 특히 한국처럼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가장 이상적인 조직인처럼 여겨진다. 다정하고, 매끄럽고, 사람들과 마찰이 없는 모습이야말로 ‘이상적인 조직인’의 전형으로 간주된다.
그런데도 이상하다. 겉으론 평화로운 이 조직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공기는 점점 무거워진다. 회의에서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정작 결정된 일들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회의실을 나서면 복도와 커피 머신 앞에서 이런 말들이 쏟아진다.
“사실 그거 아닌 것 같은데…”
“근데 말하면 괜히 찍힐까 봐.”
“나는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
겉보기에는 ‘착한 사람들’로 가득한데, 왜 조직은 이토록 답답할까? 이게 바로 착한 침묵의 역설이다.
사람들은 서로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침묵하고, 침묵이 반복되면 조직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부에서 서서히 병들어간다. 착한 침묵은 단순히 말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성장과 변화를 멈추는 가장 무서운 독이 될 수 있다.
문제의 시작은 우리가 ‘착함’을 잘못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조직에서 착함은 곧 침묵과 동의어처럼 쓰인다. “불편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착함이고, “분위기를 흐리지 않는 것”이 매너라고 여긴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이런 착함은 결국 조직의 변화를 막고 신뢰를 무너뜨린다.
불편한 말을 하지 않는 것 → 문제를 덮어둠
동의하지 않아도 웃고 넘어가는 것 → 불만이 축적됨
갈등을 피하는 것 → 변화가 막힘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 → 신뢰가 약해짐
사람들은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조직의 평화라고 믿는다. 하지만 조직의 진짜 건강함은 얼마나 불편한 이야기를 안전하게 꺼낼 수 있느냐로 결정된다. 갈등이 없는 조직이 건강한 것이 아니라, 갈등을 건강하게 다룰 수 있는 조직이야말로 건강한 조직이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조직은 ‘좋은 사람들’로만 가득 채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실행이 되지 않는 무력한 집단으로 전락한다. 더 나아가 갈등의 부재를 조직의 미덕처럼 포장하면서, 오히려 문제가 곪아터질 때까지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위험에 빠진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이렇게 침묵을 택할까? 단순히 용기가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그 배경에는 훨씬 복잡하고 교묘한 심리적, 문화적 요인들이 작동하고 있다.
✅ 먼저, 한국처럼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사회일수록 갈등은 곧 관계 단절의 신호처럼 여겨진다.
사람들은 “내가 굳이 말 안 해도 알아서 바뀌겠지.” 혹은 “괜히 트집 잡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하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말을 삼킨다.
말을 꺼내는 순간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거나, 관계가 어색해질까 두려운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단 한마디의 이견이 오랜 관계를 깨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공포는 침묵을 ‘착함’처럼 포장하지만, 실상은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회피하고 방관하는 것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런 관계 비용에 대한 두려움이 결국 조직 내 신뢰를 서서히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겉으로 갈등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서로의 속마음을 알 수 없는 미지의 벽만 높아질 뿐이다.
✅ 또 다른 이유는 자기 이미지 관리 때문이다.
사람들은 조직에서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피하고 싶어 한다. 아담 그랜트가 말한Agreeableness Paradox(동의적 성향의 역설)이 바로 이 현상을 잘 설명한다.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이중적인 태도는 조직 내에서 매우 흔하다. 사람들은 표면적으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지만, 마음속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어”라는 불편함이 차오른다. 이 불일치는 결국 조직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그리고 이런 ‘조용히 동의하는 척’하는 문화가 조직 안에 팽배해 있으면, 처음에는 작은 불만에 불과했던 것이 말하지 못한 채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크게 폭발한다. 그때 조직은 훨씬 더 큰 비용을 혹독하게 치르게 된다.
✅ 그리고 많은 ‘착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환상이 자리한다.
“말하지 않아도 다들 눈치챌 거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가정이 바로 “말 안 해도 다 알겠지.”라는 생각이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문제는 결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대로 자리만 지킬 뿐, 시간이 갈수록 더 큰 상처와 오해로 번져간다.
사람들은 종종 무언의 신호나 눈치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만, 조직이 커질수록 그리고 역할과 이해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이런 신호들은 왜곡되거나 완전히 사라진다. 침묵은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아니라, 문제를 묻어버리는 힘이다.
결국 이런 심리적·문화적 이유들이 얽혀, 사람들은 갈등을 드러내기보다는 침묵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침묵은 결코 조직을 건강하게 만들지 못하며, 오히려 더 큰 갈등과 비용을 불러온다.
많은 조직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을 외친다. 회의 때마다 리더들은 말한다. “여기는 뭐든 말해도 돼.” “틀려도 괜찮으니까 의견 내 봐.”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회의실은 정적만 흐르고, 질문하라는 말이 무색하게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혹은 누군가 말을 꺼내더라도, 그 내용이 단순한 불만 토로로 끝나 버린다. 이게 바로 심리적 안전감의 허상이다.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이 말한 심리적 안전감의 정의는 명료하다.
“심리적 안전감은 팀원들이 처벌이나 창피를 두려워하지 않고 솔직히 의견을 말할 수 있다고 믿는 상태이다.”
심리적 안전감은 분명히 조직 건강을 위한 필수 토대다. 사람들이 침묵하지 않게 하고, 문제를 드러낼 수 있게 하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도록 만든다. 하지만 실제 조직 현장에서 심리적 안전감은 종종 오해되거나 과대평가되곤 한다.
✅ 먼저 많은 리더들이 심리적 안전감을 곧 ‘편안함’으로 착각한다.
리더가 “틀려도 괜찮다”라고 말해도, 그 뒤에 따르는 미묘한 표정 변화나 말투, 혹은 나중에 평가에 반영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사람들을 주저하게 만든다.
구성원들은 여전히 눈치를 본다. “내가 이런 얘기를 꺼내도 괜찮을까?”, “혹시 나만 유난스러워 보이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 또 다른 오해는 심리적 안전감이 갈등 없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다.
심리적 안전감은 갈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드러내고 다룰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과 혼동되기 쉽다.
그 결과 사람들은 불편한 이야기를 계속 삼키며, 결국 표면적으로만 평화로운 조직이 된다.
✅ 현실적으로 심리적 안전감은 문화적 맥락과도 깊이 얽혀 있다.
특히 한국처럼 체면, 위계, 집단 조화를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심리적 안전감을 아무리 강조해도 구성원들이 솔직한 피드백을 꺼내는 데 한계가 있다. 말을 꺼내는 순간 생길 수 있는 관계 단절, 혹은 “괜히 트집 잡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두려움은 강력하다.
✅ 심리적 안전감을 조성한다는 것이 단순히 “편하게 이야기하세요”라는 구호로만 끝나는 경우도 많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어떤 언어를 써야 할지, 그리고 말한 뒤 무슨 후속 조치가 필요한지에 대한 실질적 훈련이나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안전감을 말로만 외친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또 하나의 한계는, 심리적 안전감이 권리만 열어주고 책임은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틀려도 된다”는 메시지는 사람들이 마음 편히 의견을 내게 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문제를 짚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행동까지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구성원들이 이야기를 꺼냈다 하더라도, 그것이 불만 표출에만 그치고 구체적인 해결이나 변화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여기서 킴 스콧(Kim Scott)이 말한 Radical Candor(급진적 솔직함)가 등장한다. 그녀가 말한 핵심은 명확하다. “Care Personally, Challenge Directly.” Radical Candor가 요구하는 것은 두 가지다.
Care Personally (진심 어린 배려) : 상대의 상황/감정을 신경 쓰고, 무례하거나 냉정해지지 않는다.
Challenge Directly (직설적 도전) : 해야 할 말은 반드시 한다.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Radical Candor가 말하는 솔직함은 단순히 직설적인 화법이 아니다. 그 본질은 배려와 도전의 공존이다.
“나는 너를 존중하고, 네 성장을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서 불편하지만 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
Radical Candor는 상대방을 아끼지 않는 사람은 결코 진짜 솔직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무례하지 않기 위해, 혹은 관계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말을 삼키기 때문이다. Radical Candor는 “말할 수 있다”로 끝나지 않는다. “말해야 한다.”는 행동의 책임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말은 반드시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비난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 두 개념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작동 방식과 초점이 확연히 다르다.
심리적 안전감은 주로 분위기 형성에 중심을 둔다. 구성원들이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비난이나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의견을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덕분에 팀원들이 위축되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참여가 종종 소극적으로 머무를 수 있고,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반면 Radical Candor는 분위기를 넘어 구체적인 행동과 피드백으로 초점을 옮긴다. 단순히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넘어서, 구성원들에게 말해야 할 책임을 요구한다. 불편하더라도 필요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꺼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를 잃지 않아야 한다. Radical Candor가 지향하는 것은 단순히 비난을 피하는 안전한 환경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도 주저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다. 때문에 참여를 소극적으로 유도하는 수준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피드백을 설계하고 실행하도록 요구한다.
결국, 심리적 안전감이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라면, Radical Candor는 “말해야 할 책임”까지 함께 지우는 것이다. 이 두 개념은 모두 조직의 건강을 위해 중요하지만, 조직이 실제 변화를 원한다면 Radical Candor처럼 구체적 행동으로 연결되는 피드백 문화가 필요하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조직은 여전히 ‘착한 침묵’이라는 덫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많은 조직에서 Radical Candor가 그저 구호에 그치고 만다. “Radical Candor 하자”고 외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솔직하고 건강한 대화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 첫째, 배려 없는 솔직함의 문제다.
일부 리더들은 Radical Candor를 단순히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도 된다”는 의미로 잘못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솔직함이라는 이름 아래 공격적이고 무례한 발언이 쏟아진다. “하고 싶은 말 다 해라!”라는 외침은 곧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무례한 공격으로 변질되기 쉽다. 그리고 “나는 솔직했을 뿐인데?”라는 변명은 관계와 신뢰를 깨뜨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배려 없는 솔직함은 결국 Obnoxious Aggression(공격적 무례)으로 변해 버리고, 구성원들은 이런 분위기에 상처받아 더 깊은 침묵으로 숨게 된다. Radical Candor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Care다. 배려가 빠진 솔직함은 그저 공격일 뿐이고, 그 피해는 조직 문화 전반으로 되돌아온다.
✅ 둘째는 구체적 스킬의 부재다.
많은 조직에서 피드백을 단순히 마음가짐이나 용기의 문제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피드백은 명백히 기술(skill)이다. Radical Candor가 의지라면, 그것을 실제로 구체화하는 Direct Feedback은 기술이다.
조직이 이 기술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훈련하지 않는 한, Radical Candor는 늘 “왜 말해야 하나?”라는 추상적 차원에서 멈춰 버리고 만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까지 다루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피드백 문화는 구호로만 끝날 뿐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 셋째는 책임 없는 피드백의 문제다.
일부 사람들은 문제를 지적하고 나서 “내 할 말은 했다”라며 대화를 끝내 버린다. 그러나 Radical Candor의 본질은 단순히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까지 함께 고민하고 책임을 지는 데 있다.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면, 이어서 “어떻게 바꿀지”를 반드시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드백은 결국 비난으로만 남고, 조직 안에 불필요한 긴장과 불신을 키우게 된다. 문제 제기 후에는 반드시 구체적 해결책과 행동 계획이 따라야만 Radical Candor가 온전히 작동할 수 있다.
Radical Candor를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Direct Feedback으로 연결하려면 반드시 구체적인 스킬과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조직 안에서 효과적인 Direct Feedback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전제 조건들이 있다.
✅ 우선, 배려의 언어를 구체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Radical Candor가 말하는 Care Personally는 단순히 목소리를 낮추거나 말투를 부드럽게 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입장과 감정을 충분히 살피고, 솔직한 피드백을 꺼낼 수 있도록 대화를 설계하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이 얘기하기 나도 쉽지 않은데, 네가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꼭 이야기하고 싶었어”처럼 말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배려란 단순히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상대가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 또한, 관찰된 사실로부터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Direct Feedback은 ‘느낌’이나 ‘생각’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 회의 두 번 연속 늦었어” 혹은 “지난 보고서에서 숫자 세 군데가 틀렸어”처럼 말해야 한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방어적으로 반응하거나 “네가 뭘 몰라서 그래”라고 반발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다. 사실을 기반으로 대화를 시작할 때, 문제 해결은 한층 수월해진다.
✅ 그리고 피드백은 영향과 대안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단순히 잘못을 지적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왜 그것이 문제인지, 조직이나 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까지 이어져야 한다.
예컨대 “보고서 오류 때문에 클라이언트 신뢰가 흔들렸어. 검수 프로세스를 같이 점검해보자”라고 말하면, 피드백이 비난으로 그치지 않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공동의 과정으로 발전할 수 있다.
Radical Candor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변화를 이끌어내고 조직을 개선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 마지막으로, 리더가 먼저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
Radical Candor가 조직에 뿌리내리려면 리더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리더가 먼저 자신의 생각을 열고 솔직함을 드러낼 때 비로소 조직 전체가 변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이 부분은 나도 불확실해. 혹시 내가 놓친 점 있으면 꼭 얘기해 줘”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조직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리더가 자신도 틀릴 수 있다는 취약함을 인정하고 드러내면, 구성원들은 ‘말해도 괜찮다’는 신뢰를 느끼게 되고, 조직은 점점 더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나는 결국 이렇게 믿는다. 착한 사람이 조직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말은 절반만 진실이다. 조직을 무너뜨리는 것도, 역설적으로 그런 착한 침묵일 때가 많았다. 심리적 안전감은 소중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심리적 안전감은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열어주지만, Radical Candor는 말해야 할 책임을 요구하고, Direct Feedback은 그 책임을 구체적 행동으로 옮긴다.
착한 침묵을 깨기 위해서는 솔직함과 배려의 균형을 설계해야 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 스킬을 조직이 함께 익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권력거리의 벽을 낮추고 리더가 먼저 솔직해져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아무리 착한 사람들로 가득 찬 조직이라도 결국은 침묵과 무기력에 빠지고 만다. 착함은 조직을 살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착함이 침묵으로 변하는 순간, 조직은 점점 학습하지 못하고, 문제를 덮어두며, 결국 더 큰 리스크를 떠안게 된다. 진짜 착함이란, 불편한 이야기를 피하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용기가 조직 안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려면, 단순히 마음가짐을 넘어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대화의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나는 조직이 착함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착함을 찾자고 말하고 싶다. 그 진짜 착함은 상대를 무례하게 몰아붙이지 않으면서도, 반드시 말해야 할 것은 명확히 말하는 것이다. 조직 안에서 갈등은 언제나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그 갈등을 어떻게 다루느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하게 매끄러운 조직이 아니라, 불편함도 함께 끌어안고 풀어낼 수 있는 용기와 구조다. 그래야만 우리는 “우리 조직 사람들 다 착한데, 왜 이렇게 답답하죠?”라는 리더들의 탄식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착함이 조직을 살리려면, 불편함을 마주할 용기와 이를 뒷받침할 대화의 기술과 구조가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착함이며, 결국 조직을 성장시키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