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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d] HR은 왜 연애상담과 닮았을까?

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by iid 이드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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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은 왜 연애상담과 닮았을까?
― 바꿀 수 없음을 아는 이들의 기술


연애상담의 역설: 바꾸지 못하지만 듣지 않을 수도 없다

나는 HR 이야기를 할 때 종종 연애상담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이 둘은 정말 닮아 있다.


어느 날 새벽녘, 누군가 내게 전화를 걸어온다. 목소리는 이미 눈물이 맺혀 떨리고 있다. “나, 이제 헤어져야 할까?” 그 순간 나는 자연스레 ‘친구 모드’가 발동한다. 온갖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헤아려주고, 진지하게 고민해본다. 그리고 잠깐 생각한 뒤 단호하게 말한다. “그런 사람하고 왜 계속 만나? 당장 끝내.”


그런데 놀랍게도, 그 친구가 한 달 뒤 다시 전화를 걸어 똑같은 이야기를 꺼내면 나는 잠시 멍해진다. 그 사이 그 둘은 여전히 함께 있고, 심지어 한동안 사이가 좋았다가 다시 싸운 모양이다. 결국 나는 한숨을 쉬며, 저번에 했던 말을 거의 똑같이 반복한다. “왜 아직도 안 헤어졌냐고…”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연애상담에서 상대가 하는 고민은 듣는 나로 하여금 마치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엄청난 문제’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하지만 그 고민이 곧바로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그 순간만 보면, 정말 헤어져야 할 것 같고, 상대가 너무한 게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감정과 정, 함께 쌓아온 시간, 그리고 잠깐의 달콤함이 다시 한 번 결정을 미루게 만든다.

그리고 상담을 듣는 나 자신도 그 사실을 종종 잊는다. 상대의 이야기에 너무 몰입하다 보면, 마치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한다.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다.


왜냐하면 연애상담의 본질은 조언을 해줄 수는 있어도, 결국 그 사람을 바꿀 수는 없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득해도 소용없다. “네가 더 소중해”라고 말해도, “그 사람은 안 변해”라고 말해도, 결국 상대가 마음을 닫아버리면 모든 대화는 벽에 부딪히고 만다. 게다가 조언을 주려다가 도리어 싸움이 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가 선의로 “네가 행복해지길 바라서 하는 말이야”라고 해도, 상대는 종종 이렇게 되묻는다. “넌 왜 내 마음을 몰라? 네가 뭔데 내 연애에 이래라저래라야?” 그리고 나중에는 나를 원망하기도 한다. “그때 네가 헤어지라고 해서 헤어졌는데, 이제 너무 힘들어…” 결국 연애라는 건 본인이 직접 겪고, 부딪히고, 상처받고, 깨달아야만 비로소 바뀐다. 터지고 나서야 “네 말이 맞았어”라고 하게 되는 것이 연애상담의 가장 냉정한 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연애상담이 쓸모없다는 뜻은 아니다. 잘하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그들의 스킬은 상대방의 삶을 대신 살아주거나 억지로 바꾸는 데 있지 않다. 상대가 지금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게끔 말해주거나, 때로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유도해 깨달음의 순간을 맞도록 돕는 것, 그것뿐이다



모두가 알지만, 나만은 아닐 거라는 착각


HR이 대표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런 문제는 대부분의 회사에서 발생해요. 대표님도 대비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지 않을까?”이건 단순한 자기 확신만은 아니다. 대표의 사고방식은 언제나 자기 조직이 예외일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그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통제해왔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례’에 자신이 포함된다는 말은 곧 그동안의 판단과 리더십을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심리는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예외 편향(exception bias)”, 또는 “선택적 무적감(invulnerability illusion)”에 가깝다. 모두가 실패하는 길이라 해도, 나는 다르게 해낼 수 있다는 신념. 그리고 바로 그 신념이 조직 고도화의 속도를 늦추는 가장 큰 방해 요인이 된다. 왜 그럴까? HR이 “이런 문제는 99% 발생합니다”라고 말하면, 대표는 그 1%의 예외가 되기 위해 더 강하게 ‘자기 방식’을 고집한다. 그 방식이 특별하지 않아도, 특별하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이건 연애상담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패턴이다. 모든 사람이 말린다. “그 사람, 너한테 상처 줄 거야.” “그런 유형은 대부분 이기적이야.” 하지만 본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나한테는 다르게 대해줄지도 몰라.” 그리고 그 기대가 꺾이는 건, 늘 같은 순간이다. 상처가 발생하고, 후회가 밀려올 때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표는 이직률이 올라가고, 핵심 인재가 떠나고, 리더십 위계가 흐트러진 이후에야 비로소 말한다. “그때 그 말이 맞았구나.” 하지만 그 깨달음은 이미 고비용으로 치러진 후다. 그동안 놓친 신뢰, 무너진 시스템, 뒤늦은 제도 도입. 모두 다시 쌓는 데엔 더 많은 리소스가 필요하다.


대표는 자신이 1%의 예외라고 굳게 믿는다. 그 믿음을 억지로 꺾으려 해봤자 소용없다. 대신, 자기 손으로 그 예외가 아니라는 걸 체감하게 해야 한다. 아주 작은 구조의 균열을 테스트하게 하자. 시뮬레이션을 통해 문제를 가시화하자. 기준을 강요하기보다, 대표의 감정 언어 안에 질문을 던지자. 비교 대상이 아니라 자기 조직 안에서 ‘왜 이건 불편한가’를 발견하게 하자. 그러면 대표는 스스로의 경험을 근거로 변화의 설계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때 변화는 설득이 아니라 ‘내가 겪은 문제의 해법’이 되기 때문에, 비로소 실행된다.



HR도 같은 딜레마 속에 있다


대표를 바꿀 수 없는데, 모두 HR에게 바꾸라고 한다. 나는 HR도 연애상담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많은 HR담당자들이 내게 이렇게 묻는다. “대표님을 어떻게 설득하면 좋을까요?” 나도 예전에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꽤 애썼다. 사례를 잔뜩 모아 보여주기도 하고, 데이터를 예쁘게 가공해보기도 하고, 리스크를 조목조목 정리해 프레젠테이션도 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분명히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대표는 말만으로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는 스스로 겪어야만 깨닫는다. 대표가 늘 ‘나는 다를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움직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 믿음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사업을 버텨낸 힘이자 스스로를 지탱해온 자부심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표가 쉽게 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다. 아직 직접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 용어로 설명하자면, 이는 가용성 편향 때문이다. 사람은 보고 들은 이야기보다 자기가 몸으로 겪은 경험에 훨씬 큰 가치를 둔다. 수십 명이 나서서 “위험하다”고 말해도, 실제로 위기가 터지기 전까지는 그 위험이 실감 나지 않는다.


여기에 하나를 더 덧붙여야 한다. 대표는 언제나 “나는 예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은 실패했지만 나는 다를 것이다.” 이 믿음이 스타트업 대표들의 에너지의 근원이자, 동시에 HR의 말을 가볍게 넘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HR이 경고하는 위기들이 대표 눈에는 대체로 ‘다른 회사 이야기’로만 보인다는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피부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더구나 HR 리스크는 특히 더 체감되지 않는다. HR에서 다루는 문제는 대체로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표는 매일 눈앞에 있는 고객, 투자자, 경쟁사와 싸우느라 바쁘다. 그에게 HR의 경고는 늘 “나중 일” 혹은 “부차적 문제”로 밀려난다.


왜 HR 리스크가 이렇게 체감되지 않을까? 이유는 명확하다. HR에서 다루는 위험은 대체로 네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첫째, 비정형적이다. 사건은 예고 없이 터지며, 같은 맥락에서 반복되지 않는다. 둘째, 가시성이 낮다.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감지하기 어렵다. 셋째, 통제 불가능하다. 감정, 관계, 내부 정치가 얽혀 예측이 쉽지 않다. 넷째, 후행적으로만 인식된다. 결국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그때 그 말이 맞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런 특성 때문에 HR 리스크는 더욱 대표의 뇌리에서 뒷순위로 밀려나기 쉽다. 대표가 무시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체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HR은 포기가 아니라 길잡이로 가야 한다


HR도 무력감을 느낀다. 여기서 많은 HR담당자들이 크게 흔들린다.

“왜 우리는 대표를 바꿀 수 없을까?”

그 무력감은 생각보다 크고 깊다. “내가 잘못 말해서 그런가?”, “내 설득력이 부족한 걸까?”, “조금만 더 사례를 보여주면 바뀔까?” 이렇게 끝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좌절한다. “대표님은 원래 안 변해요…” 하며 손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설득’이라는 단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그래서 HR의 역할을 설득이 아니라 길잡이라고 본다. 대표를 설득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설득은 곧 직접 대표를 바꿔보겠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표는 본인이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HR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대표가 스스로 불편함을 느끼도록 현실을 직면하게 만들어야 한다. 또 작은 실험을 통해 이상 징후가 눈에 보이도록 길을 터주고, 데이터를 모아 보여주되 그것이 대표의 언어와 맥락 안에서 해석되도록 도와야 한다. 정책이나 규정을 갑자기 들이밀기보다는, 대표 스스로 “이제는 바꿔야겠다”고 말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 선택했다고 느낄 때만 변화한다. HR은 그 선택의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여기에 나는 하나를 더 보태고 싶다. HR은 대표가 작은 실패를 경험할 기회를 일부러 남겨두어야 한다. 모든 위험을 미리 막으려 하기보다는, “이게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실제로 대표가 몸으로 겪어보게 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직면의 기회’라고 부른다. 마치 연애상담에서 상대가 현실을 스스로 보게 만드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힘든 것은 바로 기다림이다. 대표가 스스로 겪고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 기다림 속에서 HR도 지치고 흔들리게 마련이다. “이걸 언제까지 보고만 있어야 하지?”라는 자괴감이 몰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그 기다림을 견뎌내고, 결국 대표가 스스로 현실을 직면하고 변하도록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HR이 거둘 수 있는 진정한 성과이자 가장 큰 보람이라고.



현실을 비추는 거울, HR의 자리


나는 HR의 역할을 이야기할 때 종종 보험에 비유하곤 한다. 누군가에게 암보험 특약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대개 손사래를 친다. “나는 괜찮을 것 같은데요?”라며 가볍게 웃어넘긴다. 아무리 가족력이 있고, 생활습관이 좋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진짜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 그 위험이 남의 일처럼만 느껴진다.


그와 마찬가지로 HR이 다루는 리스크도 똑같다. “우리 회사는 괜찮아. 아직 문제없어.”라고 자신하던 회사들이 결국은 나중에야 급히 연락을 해온다. 작은 조직일 때는 별 탈 없어 보이던 일이, 사람이 늘고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돌연 표면 위로 터져 오르기 시작한다. 구성원들이 서로 신뢰하지 않게 되고, 핵심 인재가 팀을 떠나며, 채용이 연이어 실패하고, 법적 분쟁의 리스크가 갑자기 불거진다.


그제서야 대표는 HR 이야기를 꺼내며 말한다. “그때 네가 하자던 그거, 왜 안 했을까…”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그 순간부터는 예방이 아니라 복구의 영역이다. 손해는 현실화됐고, 비용은 몇 배로 치솟는다. 대표가 “왜 미리 막지 못했냐”고 HR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사실 아무도 미래를 강제로 막을 수는 없다. 보험도 결국 발동 조건이 있다. 사고가 일어나야만 보상이 나온다. HR도 마찬가지다. 위기가 터져야만 대표가 비로소 “그때 준비해두자던 그게 이거였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를 더 이야기하고 싶다. 바로 위인전의 함정이다. 스타트업 대표들은 위인전을 즐겨 읽는다.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손정의…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공통적으로 직관, 카리스마, 빠른 결단, 몰입이라는 단어가 흐른다. 대표들은 위인전 속의 드라마틱한 순간을 닮고 싶어 한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길을 개척하고, 모험적으로 움직여 빛나는 결과를 만드는 사람 말이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위인들조차 결국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애플은 모든 제품 기획에서 수백 개의 고객 시나리오를 돌리고, 구글은 OKR로 조직 전체를 조정하며, 네이버는 C레벨조차 명확한 성과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이들 모두 직관만으로 유지되는 조직은 아니었다. 스타트업들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대표의 직관으로 사람을 뽑고, 의사결정을 밀어붙인다. 하지만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결국 HR 시스템의 힘을 빌리게 된다. 그래야 속도를 유지할 수 있고, 리스크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인전에는 늘 “어떻게 위기를 넘겼는가”만 적혀 있을 뿐, 그 뒤의 시스템 구축 과정은 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그게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HR이야말로 현실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라고. 연애상담과도 똑같다. 억지로 “헤어져야 한다”고 몰아붙이면 관계만 어색해진다. 대신 상대가 현실을 스스로 보게 만들어야 한다. “네가 지금 겪는 일이 얼마나 반복되고 있는지, 네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생각해봐”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HR도 억지로 예방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대표가 직접 현실을 마주하게끔, 작고 반복적인 체험의 길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HR의 진짜 역할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HR이라는 직업이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의 이유다. 대표의 생각은 쉽게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대표가 현실을 똑바로 보게 만드는 길은 열어줄 수 있다. 그래서 HR은 결국 설득이 아니라 길잡이가 되는 문제다. 그것이 내가 HR에서 배운, 가장 솔직하고도 쓸모 있는 교훈이다.




바꿀 수 없음을 알면서도 길을 열어주는 자리


연애상담은 결국 상대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시작된다. HR도 마찬가지다. 대표를 당장 바꾸지 못한다고 해서 그 일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현실을 바라보는 출발점이다. 대표는 직접 겪어봐야 변한다. HR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길을 비추고, 때로는 대표가 작은 현실이라도 마주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줘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언제나 외롭고 길다. HR 자신도 흔들릴 때가 많다. 수없이 좌절하고,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라는 회의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결국 기다림을 견뎌낸 끝에 대표 스스로 현실을 직면하고 변화를 선택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 대표는 어느 날 문득 이렇게 말하곤 한다.

“네가 하자던 그거, 이제 왜 필요한지 알겠어.”
“그때 그 리스크 얘기했던 거, 지금 와서 보니까 그대로네.”
“너 아니었으면 몰랐을 거야.”

그 한마디가 HR에게 지난 긴 시간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사람들은 흔히 HR을 조직 내 모든 감정과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자리라고 여긴다. 마치 HR이 감정의 종착지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HR은 감정의 종착지가 아니라,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자 판단의 길을 열어주는 안내자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HR의 자리는 늘 모순적이다. 겉으로는 전략과 데이터를 다루지만, 그 안에는 사람의 마음과 감정, 그리고 변하지 않는 고집이 버티고 있다. 그 고집은 흔히 말하는 ‘비합리성’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HR에게 묻는다. “왜 대표님은 안 바뀌나요?” 혹은 “왜 그런 문제를 HR이 해결 못하나요?” HR이 마치 모든 변화를 손에 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은 다르다. HR은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대표의 인생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HR이 무력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대표가 직접 부딪히고, 깨닫고, 때로는 상처를 입은 뒤에야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돕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다. 기다림이 길고, 수없이 좌절하게 만든다. 때로는 HR 자신도 흔들린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라는 회의가 몰려온다. 그 기다림을 견뎌내고, 결국 대표가 스스로 현실을 직면하고 바뀌도록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HR이 거둘 수 있는 진정한 성과이자 보람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이며, HR이라는 직업이 가지는 가장 큰 가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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