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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d] 이번 한 번만 봐주면 안 돼요?

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by iid 이드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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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 번 얘기해보는” 사회, 그 익숙한 작동 방식


한국 사회엔 유독 자주 쓰이는 말이 있다.

“일단 한 번 질러보자.”
“안 되는 건 알지만 혹시 모르잖아.”
“한 번만 봐주면 안 될까요?”

이건 단순한 말버릇이 아니다.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정서 중심의 작동 방식이다. 제도가 있어도, 원칙이 있어도, ‘정’과 ‘관계’라는 감정적 요소가 그 위에 존재하고, 사람들은 그것이 제도를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마주한다. 카페가 마감 직전인데 “주문 한 잔만 더 가능할까요?” 택배 접수 마감이 끝났지만 “정리 중이시라면 하나만 더 받아주세요.” 병원 접수창구가 문을 닫았는데 “아픈 아이 데리고 이제 왔어요,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이럴 때 요청하는 사람은 당연히 받아줘야 한다고 여기고, 거절하는 입장은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많은 경우 결국 받아준다.


공공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찰의 음주단속에 걸리면 “이번 한 번만 눈감아주세요”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나온다. 속도위반을 걸렸을 때도 “시간이 너무 급해서 그랬어요, 오늘만 제발요.” 심지어 단속 경찰관을 감정적으로 설득하려는 시도가 습관처럼 반복된다. 학교에서도 마감 과제 제출 기간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봐주시면 안 되냐”고 교수에게 메일을 보낸다. 지각했는데 출석 처리를 부탁하거나, 성적이 낮게 나왔는데 “사정 좀 고려해주세요”라고 말한다. “이번에만 A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다음 학기에 정말 잘하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기준은 있지만, 사람은 그걸 넘을 수 있다고 믿는 문화. 이건 일상 속뿐 아니라 회사, 그리고 조직 안에서도 정확히 똑같이 반복된다.




절차가 있어도, 일단 HR에. 그래도 안 되면 대표에게


회사의 인사제도, 절차, 기준은 문서로 공지된다. 공식적인 정책은 게시되고, 연봉협상이나 평가 프로세스, 복지와 승진에 대한 기준도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많은 구성원은 그것을 ‘기준’으로 여기지 않는다. ‘기준’은 있어도, 나는 ‘예외’일 수 있다는 전제가 작동한다.


그래서 HR에 이런 식의 요청이 온다.

“규정은 알지만, 제 상황은 좀 특별해서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그 기준에 꼭 맞추긴 좀 애매하지 않나요?”
“회사 정책은 이해해요, 하지만 제가 맡은 프로젝트는 다르잖아요.”


HR이 원칙을 설명하면 구성원은 정서와 감정을 들고 나온다.

“그래도 그동안 제가 얼마나 기여했는지 아시잖아요.”
“그렇게 딱 자르지 마시고요, 어느 정도 조정은 가능하지 않나요?”
“회사가 정이 없다는 말, 왜 나오는지 아세요?”


그다음 단계는 더 복잡하다. HR에서 거절당하면, 사람들은 대표나 임원을 직접 찾는다. “대표님이 저 잘 아시잖아요. 사정을 한번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경영진 판단이 더 클 것 같아서요. 저한테는 너무 중요한 건이라서요.” 정책이 있어도, 감정의 층을 하나씩 쌓아가면 바뀔 수 있다는 믿음. 그게 작동한다. 그리고 종종 실제로 바뀐다. 대표가 그 사정을 듣고, “그래, 이번은 그냥 넘어가자”고 말하면, 조직 내 기준은 그 순간 무너진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그 뒤에 있다. HR에게 예외 처리를 '정리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번 케이스는 대표님 승인으로 간 거니까, 정책 외 적용으로 정리해주시고요.” “전례는 아니라는 점 문서에 명시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이제 HR은 정해진 정책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감정 기반 예외 항목까지 '공식처럼' 다뤄야 하는 이중 구조에 놓이게 된다.




예외는 한 사람에게 허용되지만, 조직 전체에 영향을 준다


대표가 누군가의 요청을 받아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정도야 뭐, 다음부턴 안 된다고 하자", "이번만 예외로 인정하고 넘어가면 되는 거지" 같은 말은 대표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결정이다. 하지만 HR의 시선은 다르다. 그 '이번 한 번'이 조직 안에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 누군가는 반드시 그 여파를 예측해야 한다.


예외로 허용된 당사자는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상황을 지켜보는 다른 구성원들의 머릿속에는 곧 의문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 사람은 왜 된 거야?", "기준이 있다며? 사람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거네", "그럴 거면 규정은 왜 있는 건데?" 같은 말들이 내부에서 오가며, 조직 안의 신뢰와 일관성에 금이 간다.


한 사람에게 허용된 예외는, 다른 사람에게는 '허용된 선례'가 된다. 그리고 그 선례는 일종의 '구조적 무기'로 전환된다. 이전 예외가 조직 내 전례로 저장되기 시작하면, 이후 어떤 정책이나 기준도 더는 기준으로서의 힘을 갖지 못하게 된다. 기준이 기준이 아니라 ‘예외의 결과물’처럼 인식되는 순간, 시스템은 방향을 잃는다.


이때부터 조직은 제도를 기준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누가 얼마나 간절히 말했는가’, ‘누구와 더 가까운가’, ‘대표를 직접 만나 설득할 수 있는가’ 같은 감정과 관계의 구조가 기준이 된다. 그렇게 되면 시스템은 흔들리고, HR은 공정한 운영자가 아니라 각종 예외를 조율하는 조정자의 역할로 전락하게 된다.





근태, 평가, 보상… 어디든 감정의 예외 요청은 따라온다


회사 내부에서 감정 기반의 요청이 가장 자주 발생하는 영역은 근태, 평가, 보상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 객관적인 수치 기준과 절차가 존재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사정이 많고 감정 개입이 쉬운 분야이기도 하다.


먼저 근태를 보자. 규정상 출근 시간은 오전 9시이며, 유연근무는 사전 승인을 받은 후 신청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늦은 출근에 대해 “어제 야근했어요. 그거 반영 안 되나요?”, “아침에 애가 갑자기 아파서요. 오늘은 좀 이해해주시면 안 될까요?”, “재택 신청을 못했는데, 그냥 집에서 하겠습니다. 별일은 없어요” 같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처음 몇 번은 HR도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같은 이유가 반복되면, 이는 더 이상 ‘정해진 절차’가 아닌 ‘일방적인 통보’로 인식된다. 한 명의 유연함은 곧 여러 사람에게 혼란을 주는 메시지가 된다. 어떤 사람은 정해진 규정을 따르고 있고,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로 무력화시킨다. 그 순간 제도는 무너지고, 감정이 운영의 기준이 되어버린다.


평가에서는 상황이 더 복잡하다. 정해진 피드백 기간이 지난 후에도 “이 평가 너무 가혹한 것 같아요. 수정은 안 되나요?”, “리더가 저를 개인적으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거 좀 다시 봐주세요”와 같은 피드백 요청이 들어온다. 때로는 “팀장 평가 말고 타 부서에 의견 요청도 가능할까요?”처럼 절차를 넘는 확장 요청도 이어진다. 감정 기반의 평가 요청은 객관성보다 수용성을 앞세우기 쉽고, 그렇게 수정된 평가는 다른 구성원들에게 혼란의 기준이 된다.


보상 영역은 예외 요청이 가장 치열하게 발생하는 곳이다. 연봉 인상률이 구조적으로 정해져 있어도 “이번에 제가 이끌었던 프로젝트 진짜 힘들었어요. 이 정도 인상률은 너무한 거 아닌가요?”와 같은 주관적 고생 기준이 개입된다. 직급별 승진 루트가 명확히 공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정도 일 했으면 스킵 승진 검토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팀 리더는 직급 자동으로 올라가는 줄 알았어요”처럼 구조 자체에 대한 이의 제기가 나타난다. 성과와 기준보다 감정과 기대가 앞서게 되는 순간이다.


이 모든 요청의 공통점은 단순히 정책을 몰라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구성원들은 규정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상황과 감정이 기준보다 더 특별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전에 그런 예외가 실제로 허용되는 것을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님은 작년에 예외 인정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저보다 평가 낮은 사람도 인센티브 괜찮게 받았다고 하던데요?” 같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때부터 조직은 ‘기준이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구성원은 제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설득하고 선례를 인용하는 데 익숙해진다. 그 결과, 시스템은 예외의 누적으로 흔들리고, 조직은 감정 기반의 운영 패턴에 익숙해져간다.




예외 처리의 구조화는 ‘위험한 일상화’다


문제는 예외 요청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표나 임원이 한 사람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일회성 배려가 아니라 '구조적 예외'를 가능하게 하는 흐름의 시작이 된다. 이 흐름은 곧 기준의 경계를 흐리고, 조직 운영의 기반이 되는 정책 자체를 흔들기 시작한다.


가령 어떤 구성원이 대표에게 직접 요청해 연봉 예외 인상을 승인받았다고 하자. 이 경우 HR은 기존의 연봉 데이터상 항목을 수정해야 하고, 그 예외 인상률은 다음 해 데이터에도 그대로 남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구성원이 비슷한 성과를 내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지난해 ○○님 사례 보면 이 정도 성과면 저도 더 받아야 하지 않나요?” 그때부터 예외는 전례가 되고, 전례는 곧 기준이 된다.


더 심각한 상황은 HR에게 예외를 ‘기록’하라는 요청이 들어올 때 발생한다. “대표가 승인한 내용이니, 이건 예외 사례로 문서화해 주세요.” “기존 정책으로는 설명이 안 되니까 별도 케이스로 저장해 주세요.” “규정엔 없지만 대표 결정이니, 이건 적용해 달라는 겁니다.” 이제 HR은 하나의 공식 정책을 운영하는 동시에, 공식 문서에 명시되지 않은 '그림자 제도'를 별도로 관리하게 된다. 규정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작동하는 구조다. 그렇게 ‘대표 사전 승인’, ‘예외적 처리’, ‘비공식 기준’ 등이 데이터와 시스템 안에 스며들며, 조직 내에서 또 다른 레이어가 만들어진다.


이런 구조는 조직 전체에 매우 위험한 시그널을 던진다. “결국 중요한 건 기준이나 정책이 아니라 대표의 판단이다.”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구성원들은 그 메시지를 기반으로 ‘정해진 루트’가 아니라 ‘통하는 루트’를 찾기 시작한다. 공식 경로보다 더 빠른 우회 경로, 시스템보다 더 유효한 개인적 접근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버린 조직은 이제 다른 원칙으로 움직이게 된다.


결국 누가 대표에게 더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가, 누가 더 설득력 있게 본인의 사정을 전달할 수 있는가가 보상과 혜택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어버린다. 이 문화는 조직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무엇보다 대표와 HR 양쪽 모두를 고립시키는 구조로 이어진다. 대표는 “사람이니까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지만, HR은 “이제 시스템이 무너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간극은 단순한 운영상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십과 조직 문화의 핵심을 위협하는 구조적 리스크다.



HR이 감당하는 리스크는 ‘감정의 부채’다


예외는 단기적으로는 쉬운 선택처럼 보인다. 당장은 누군가의 상황을 배려해주는 따뜻한 결정처럼 느껴지고, 갈등을 피하는 방식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것은 조직 입장에서 가장 비싼 선택이 된다.


HR이 감당해야 할 가장 큰 리스크는 감정적으로 허용된 예외가 만들어내는 연쇄 반응이다. 처음엔 그저 한 사람을 위한 배려였을지 몰라도, 그 순간부터 정책이라는 구조는 조금씩 힘을 잃기 시작한다.


✅ 정책 신뢰 붕괴 : 한 명에게 허용된 예외는 그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다른 구성원들은 반드시 이렇게 묻는다. “그 사람은 됐는데, 나는 왜 안 되는가?” 그렇게 제도는 모두를 위한 기준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만 적용되는 장식으로 전락한다. 신뢰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불신이 채워지고, 모두가 각자의 판단 기준을 만들기 시작한다.


✅ 내부 갈등 유발 : 정책은 원래 모두를 지키기 위한 장치다. 그런데 누군가가 감정적으로 예외를 받아내면, 그 순간부터 심리적 거리감이 생긴다. “왜 저 사람만 대우받는 거죠?”, “우리는 그냥 조용히 있으니까 손해 보는 건가요?” 이런 말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다. 제도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느끼는 감정, 그것은 아주 오래 남는다.


✅ HR 기능의 약화 : 예외가 반복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HR에게 정책을 묻지 않는다. 대신 라인을 타거나 대표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쪽을 택한다. 그렇게 HR은 정책을 설계하고 운영하던 위치에서, 누군가의 감정적 요청을 뒤늦게 정리하고 문서화하는 후처리 담당으로 밀려나게 된다.


✅ 대표의 판별 기준 흐려짐 : 대표도 결국 사람이다. 구성원의 감정 호소에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대표 스스로 조직의 기준을 무력화시키는 결정을 누적하게 된다. 그 결과, 대표의 판단 기준도 점점 관계 중심으로 변형되고 만다. 처음엔 "이번만 예외로"였지만, 나중에는 누가 더 가까운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어버린다.


✅ 재정립 비용 증가 : 한 번 허용한 예외를 되돌리는 것은 처음부터 원칙을 지키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작년엔 인정하셨잖아요.”, “그땐 왜 됐는데 지금은 안 되나요?”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더 이상 기준은 기준이 아니다. 예외를 회수하는 비용은 단순한 정정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시 구축해야 하는 수준에 가깝다.


결국 예외는 조직 내에서 ‘잘 챙긴 선택’이 아니라 ‘크게 갚아야 할 빚’이 되는 것이다. HR이 이 리스크를 예민하게 바라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HR의 역할은 ‘거절’이 아니라 ‘경계’ 설정이다


HR은 누군가를 단호히 거절하는 사람이 아니다. HR의 역할은 감정을 고려하면서도 조직의 일관성을 지켜내는 선을 긋는 사람이다. 이 선은 단지 규칙의 경계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책임의 경계선이기도 하다. 감정은 이해하지만, 구조는 보호해야 하는 입장에서의 균형이다.

“이번은 듣겠지만 다음은 어렵습니다.”
“이걸 허용하면 다음에도 같은 요청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선이 무너지면, 전체 정책의 신뢰가 흔들립니다.”

이런 메시지를 구성원에게, 리더에게, 그리고 때로는 대표에게도 명확하면서도 부드럽게 전달하는 것이 HR의 진짜 전문성이다. 단호함과 설득력을 동시에 갖춘 언어가 필요하다.


경계가 없는 조직은 결국 무너진다. 그 경계는 감정이나 관계가 아니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구조 위에 세워져야 한다. 누구에게는 되고 누구에게는 안 되는 기준은 불신을 낳는다. 그래서 경계는 감정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설득 가능한 구조와 공정한 룰 위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이건 단순히 룰북에 적힌 문장을 읊는 기술이 아니다. 조직 전체가 신뢰할 수 있는 질서를 ‘실행 가능하게’ 만드는 역량, 그것이 진짜 설계다. 그 설계는 차가운 문서가 아니라 감정을 수용하되 기준을 지키는 언어로 이뤄져야 한다. 사람을 이해하지만, 시스템은 보호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이 HR이 감정과 제도 사이에서 가장 깊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경계를 HR 혼자 세울 수 없다는 점이다. 경계는 HR의 몫이 아니라, 대표와 함께 지켜야 하는 조직의 약속이다. 대표가 감정적인 예외를 반복적으로 수용하는 순간, HR은 더 이상 기준을 지킬 수 없고, 조직은 정서적 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공동체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경계가 사라진 조직은 불공정하게 느껴지고,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들은 조직에 충성하지 않는다. 신뢰가 사라지면 제도도, 피드백도, 리더십도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예외는 순간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감정을 흔들지 않고 넘어가는 유연한 선택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순간의 유연함은 결국 다음 사람에게 ‘불신’이라는 유산을 남기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조직을 만든다. 예외는 사람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제도와 신뢰를 동시에 무너뜨리는 감정의 부채다. HR은 그 부채가 쌓이지 않도록, 감정을 이해하되 경계를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번 한 번을 허용했을 때,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되는가?”


사람은 누구나 사정이 있다. 누구에게나 절실한 순간이 있고, 이해받고 싶은 감정이 있다. 그리고 HR도, 리더도, 대표도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이번 한 번쯤은…”이라는 생각에 흔들린다. 하지만 조직은 그 사정을 감당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정’으로 이어진 관계는 남을지 몰라도, 제도 위에 감정이 올라서는 순간 기준은 사라지고, 신뢰는 무너진다.


한 번의 예외는 작은 배려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예외가 만들어낸 균열 속에서 결국 모두가 불편해진다. 예외를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은 불만을 품고, 예외를 허용한 사람은 그 결정의 무게를 홀로 감당해야 한다. HR은 원칙과 감정 사이에서 조율자가 아닌 방패막이가 되며, 대표는 관계에 끌려 기준을 무력화하는 선택을 반복하게 된다. 처음엔 사정으로 시작했지만, 그 예외가 반복되는 순간 조직은 기준이 아니라 ‘누가 더 설득력 있게 말하는가’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런 방식은 점차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조직을 만든다. 누구도 기준을 설명할 수 없고, 사람은 남아있지만 운영의 구조는 사라진다. 예외를 허용한 과거의 전례는 다음 요청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다음은 또 다른 다음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생긴 조직의 흐름 속에서 제도는 약해지고, 리더십은 흔들리고, 결국 미래를 유지할 수 있는 신뢰의 기반이 사라진다.


‘이번 한 번’이라는 유연함은 당장은 누군가의 마음을 덜 흔들리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조직 전체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그 한 번을 허용함으로써 모두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기준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래서 HR은 늘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이 선택이, 다음 사람에게 어떤 신호로 남을까?”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 “이번 한 번을 허용했을 때,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되는가?” 그건 한 사람의 사정을 받아준 일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신뢰 가능성을 훼손한 일일 수 있다. 신뢰가 무너진 조직에서는 어떤 룰도, 어떤 설득도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남긴 후폭풍은 예외를 허용한 그 순간보다 훨씬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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