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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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기업을 인수한다는 개념은 M&A라는 단어로 통칭되지만, 모든 인수합병이 동일한 목적과 방식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특히 ‘볼트온(Bolt-on)’ 전략은 기존의 M&A와는 분명한 차이를 가진다. 이는 단순히 외연을 확장하거나 점유율을 늘리는 전통적 방식이 아니라, 기존 사업의 핵심 정체성을 유지한 채 결정적인 기능이나 역량을 덧붙여 전혀 다른 차원의 성장을 만들어내는 전략적 합체 방식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단순히 두 개의 회사를 하나로 합쳐 1+1=2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1+1=10이 되는 구조적 전환(fusion)을 이루는 데 있다. 물리적으로는 덧붙이지만, 기능적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로 바뀌는 것이다. 기존 조직이라는 차체에 새로운 추진력을 가진 엔진을 맞물리게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정밀한 결속이 요구된다.
볼트온은 단순히 흡수하거나 편입하는 것이 아니라, 결합을 통해 ‘새로운 성질’을 만들어내야 한다. 기존 플랫폼의 틀 안에 새 기능을 장착함으로써, 제품이나 서비스의 본질이 바뀌거나 고객 경험 전체가 달라지는 수준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의 설계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만큼 볼트온 전략은 일반적인 M&A보다 훨씬 더 높은 복잡도와 실행 난이도를 가진다. 특히 경영 전략과 실무 운영 간의 간극이 클수록, 정교한 방향 맞춤과 빠른 실행력, 사람과 조직을 잇는 감각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 시스템, 프로세스, 문화, 판단 기준, 리더십 기대 수준 등 모든 것이 다를 수 있는 상황에서 두 개의 조직이 하나의 의도된 형태로 ‘제 기능을 하게끔’ 만들기 위해서는 강력한 기획과 촘촘한 운영 설계가 필수다.
결국 볼트온은 단순한 시너지 효과만으로는 부족하다. ‘변환’이 일어나야 한다. 두 조직이 조용히 병존하는 수준이 아니라 서로를 통과하면서 완전히 다른 시스템으로 재구성되는 구조, 그것이 이 전략이 가지는 진짜 의미다.
이 시점에서 HR은 단순한 통합 관리자가 되어선 안 된다. 각 조직의 언어, 사고방식, 문화, 운영 시스템을 재해석하고, 그 사이의 공백을 메워 새로운 구조로 연결해내는 전략적 설계자여야 한다. PMI(Post-Merger Integration)를 ‘관리할 대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새롭게 작동할 것인가’를 기준으로 설계하고, 그 중심에 HR이 있어야 한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단순한 기업 인수(M&A)보다는 볼트온 전략이 상대적으로 더 자주 등장하고, 선호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스타트업이 인수하는 대상은 ‘완성된 회사’가 아니라, 특정 기능 혹은 역량을 가진 팀이나 기술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기능을 확장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그 기능이 반드시 조직 전체를 통째로 흡수해야만 구현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완성된 운영 구조를 가진 회사를 그대로 들여오면 속도 저하, 문화 충돌, 의사결정 지연 같은 문제로 기존 스타트업의 민첩성이 사라질 수 있다.
일례로, 시리즈 B 이후의 테크 스타트업이 AI 알고리즘 강화를 위해 마이크로스타트업을 인수한다고 하자. 이때 이 회사는 독립적 사업부를 하나 더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사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AI 기능을 ‘붙이는’ 전략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완성된 회사를 통째로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플랫폼에 기능을 끼워 넣는 구조다.
또한 스타트업은 여전히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인수로 인해 기존의 속도나 민첩성을 해치지 않고, 최대한 빨리 기존 전략에 흡수하려면 ‘부드럽고 유연한 결합 구조’가 필요하다. 스타트업은 ‘시스템 통합’보다는 ‘전략적 조립’을 원한다. 기존 전략적 의사결정 구조와 핵심 리소스를 바꾸지 않으면서, 시장에서 결핍되던 기능이나 제품을 빠르게 붙이려는 것이다.
이것이 볼트온 방식이 M&A보다 더 자주 선택되는 이유다. 특히 리소스가 제한된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작고 핵심적인 조각 하나를 붙임으로써 전체 판을 바꿀 수 있는’ 방식이 훨씬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다. 자연스럽게 HR 역시도 단순한 통합 정책이나 시스템 이전 수준이 아니라, ‘붙는 구조’를 어떻게 맞물리게 만들 것인가’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조직을 전체적으로 하나로 합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연결 장치를 설계하는 사람, 그것이 스타트업에서 볼트온 전략을 다루는 HR의 역할이다.
볼트온 전략은 대개 버티컬(수직) 구조에서 전개된다. 기존 플랫폼이 되는 조직은 자본, 채널, 운영 시스템을 갖춘 상태이고, 인수되는 조직은 특정 기술, 제품, 시장 기반 혹은 핵심 인재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 두 조직은 기능적으로는 보완적이나, 운영 방식, 문화, 판단 구조에서는 종종 이질적이다.
Core Company: 중견/대기업 기반의 안정적 조직, 시스템 기반 의사결정, 리스크 회피 성향
Target Company: 작지만 민첩한 실행력, 창업자 중심 문화, 빠른 피벗과 도전이 일상화
예를 들어, 기존 조직은 회계 기준에 맞춰 제품을 납기일에 맞게 안정적으로 출시하는 방식을 따르지만, 피인수 조직은 고객 요청에 따라 주 단위로 기능을 반복 개발하며 시장 반응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린(Lean) 방식의 실험과 실행을 중시할 수 있다.
이처럼 리듬, 기대, 성공 정의가 완전히 다르기에, 단순한 물리적 결합만으로는 협업이 불가능하다. 이 두 생태계를 하나의 구조로 맞물리게 만드는 과정이 바로 PMI(Post-Merger Integration)이며, HR은 그 윤활제이자, 연결 구조를 설계하는 인터페이스 엔지니어가 되어야 한다.
HR은 이때 단순히 제도나 정책을 가져와 뿌리는 것이 아니라, 아래와 같은 복합적 대립 항목들을 구조적으로 해석하고 조율하는 책임을 진다.
리더십 구조: 본사는 수직적 의사결정, 피인수 조직은 창업자-개발자가 판단 주체
목표 설정: 본사는 KPI 중심, 피인수 조직은 기능 중심 OKR 혹은 실험 지표
성과 해석: 본사는 숫자 중심, 피인수 조직은 학습 중심
일하는 방식: 본사는 문서 중심 보고, 피인수 조직은 대면·비공식 커뮤니케이션
협업 도구와 시스템: ERP, 그룹웨어 기반 vs Slack, Notion, Trello 같은 툴 중심
이 모든 요소는 단순한 취향 차이가 아니라, 성과 창출 방식 자체의 차이다.
예를 들어, 동일한 ‘Head of Product’라는 직책도 본사에선 관리자일 수 있고, 인수 조직에선 의사결정 최종 책임자일 수 있다. KPI와 같은 평가 지표 역시 기존 조직은 고객 계약 건수를 중시하지만, 피인수 조직은 유저 리텐션이나 클릭 효율을 중심 지표로 삼을 수 있다.
HR은 여기서 단순히 용어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능과 권한의 등가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설계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레벨과 책임의 기대 수준을 명확히 가시화하지 않으면, 피인수 조직은 자신들이 조직 내에서 ‘낮은 급’으로 인식된다는 감정을 가질 수 있다.
볼트온에서는 아래와 같은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회사를 왜 인수했는가?
단순히 기능을 보완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비즈니스 확장인가?
조직이 합쳐졌을 때, 어떤 ‘새로운 형태’로 진화해야 하는가?
이 질문을 통해 명확해지는 점은, 볼트온은 단순히 외형적 조직 통합이 아니라 ‘성장 경로의 전환’을 위한 구조 조정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두 회사를 붙여놓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이전에는 가질 수 없었던 새로운 방향성과 실행력을 획득하도록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무엇을 함께 하느냐'보다 '어떻게 달라지느냐'가 중심 질문이 되어야 한다.
✅ 핵심 인재의 ‘동기 구조’ 재설계
피인수 조직의 핵심 인재는 단순한 구성원이 아니라 가치의 전달자이자, 합병 이후 조직이 성과를 낼 수 있는 엔진이다. 그들의 잔류 여부와 향후 동기는 기업 성패를 가를 수 있다. 단기적인 ‘스톡옵션 리프레시’나 계약 갱신 수준을 넘어서, 성과 기반 성장 경로, LTI(장기 인센티브), 로드맵 기반 커리어 설계가 필요하다. 구성원들에게 남는 이유가 ‘돈’이나 ‘의무’가 아니라, "이 조직에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실질적 설계가 있어야 한다. 특히 창업자나 기술 리더의 경우, CEO 혹은 CPO 역할에서 Head와 같은 직책으로 바뀌었을 때 오는 심리적 박탈감을 설계로 보완해야 한다.
✅ 운영 기준 조율과 의사결정 기준 통합
단순한 보고 체계 통일이 아니라, 의사결정의 우선순위, 판단 프레임, 실패 허용 기준까지 포함한 ‘운영 기준의 통합’이 필요하다. 한 조직은 "안 된다"고 말하고, 다른 조직은 "왜 안 되느냐"고 묻게 된다면, 갈등은 의사결정 지연으로 이어지고, 실행 속도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이 조율 작업은 실무자의 레벨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리더십 라인과 HR이 공동으로 명문화된 원칙을 설계하고, '의사결정 시뮬레이션' 형태로 전사에 공유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 성과 기반의 빠른 실행 체계 정비
볼트온 전략에서는 조직 통합의 성공 여부를 문화나 정서 수준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 지표로 측정해야 한다. 이 지표는 단지 결과 숫자가 아니라, 실행의 방향과 과정을 안내하는 ‘작동 프레임’이 되어야 한다.
신규 고객 유입률 증가
기존 고객 이탈률 감소
제품 출시 속도 향상
내부 인건비 대비 단위 생산성 개선
통합 이후 손익 구조의 변화
정량 지표 기반의 실행 체계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서로 다른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가진 팀들 사이에 ‘같은 언어’를 제공한다. PMI 초반에는 협업보다는 충돌이 더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충돌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동일 목표 안에서 벌어지는 것이라면, 갈등은 학습으로 전환될 수 있다.
볼트온 전략은 단순히 조직을 '붙이는 일'이 아니다. 무언가를 더한 만큼, 기존의 방식도 바꿔야 하고, 하나로 합쳤다고 해서 저절로 하나처럼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HR이 단순한 통합 관리자가 아니라,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때 HR은 문화나 가치의 통일을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다. 속도, 언어, 시스템이 모두 다른 조직들을 조율하며 '하나의 팀처럼 움직이도록 만드는' 실행 설계자이자 다른 세계들을 이해시켜주는 해석자이고, 단기와 장기를 함께 놓고 구조를 짜는 디자이너이며, 무형의 마찰을 가시화하고 제도와 흐름으로 연결하는 운영자여야 한다.
실제로는, 이름만 바뀌고 시스템은 그대로인 채 업무는 중복되고 기준은 모호한 채로 시간이 흘러가고,
인수한 회사의 주요 인재가 이탈하고 예상보다 빠르게 ‘비용만 남은 조직’이 되기도 한다. ‘한 팀’이 아니라 ‘두 조직이 공존하는 상태’로 계속 유지되는 경우도 흔하다. 그때 조직은 ‘기술적 통합’이 아니라 ‘정신적 분리’로 실패한다.
이런 실패를 막기 위해서 HR이 해야 할 일은, 조직을 잘 정렬된 말로 만드는 게 아니라 하나의 방향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팀으로 만드는 일이다. 볼트온 전략은 문화 통합이 아니라 기능 중심의 고정밀 조립이 되어야 하며, HR은 문화나 가치라는 추상에 머물지 않고 실행 중심의 설계자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은 ‘후속 작업’이 아니라 인수 전략의 한 가운데서부터 설계되어야 한다. 즉, HR은 인수 이후의 정리자가 아니라 인수 전부터 구조를 함께 조립하는 전략 설계자여야 한다. 단순한 조직도를 나열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무엇을 붙이고’, ‘어떤 방향으로 어떤 실행 구조를 만들 것인지’를 함께 설계하는 존재여야 한다.
볼트온 전략은 ‘합쳤다’가 아니라 ‘움직인다’가 되어야 한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그러면 무엇을 기준으로, 어디서부터 움직이게 만들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