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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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 HR에게 상담이나 문의가 들어오는 순간은 대체로 심각하다. 갈등이 커졌거나, 평가와 보상 문제가 얽혔거나, 제도 운영에서 혼선이 발생했을 때다. 이처럼 누군가가 HR을 찾는다는 건 이미 일이 단순하지 않고, 어느 정도 복잡성이 쌓였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 장면을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묘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질문자는 정작 중요한 맥락은 숨겨둔 채, 아주 제한된 정보만 전달한다. 마치 전부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다 알아주길 기대하듯, “이 정도만 말해도 네가 HR이라면 알아듣겠지?” 혹은 “일단 뭐라고 대답하나 보자”라는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담이라기보다 시험에 가깝다. 대답이 자기 기대와 맞아떨어지면 “HR이 역시 똑똑하다”는 평가를 하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곧바로 “봐라, 역시 원론적 얘기만 한다”는 식으로 치부한다. 더 나아가 나중에서야 슬그머니 감춰둔 맥락을 꺼내 들며 “이 조건을 고려했어야지”라고 되묻는다. 즉, 애초부터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라기보다, HR이 ‘과연 내 생각을 맞힐 수 있나’ 시험대에 올려놓는 것에 가깝다.
이 풍경은 점집에서 흔히 벌어지는 장면과 닮아 있다. 손님이 일부러 중요한 단서를 숨겨두고 점쟁이가 그것을 알아맞히는지 시험하는 모습 말이다. 맞히면 신통방통하다며 감탄하고, 못 맞히면 곧바로 허술하다며 폄하한다. 그러나 HR은 점집이 아니다. HR은 직관이나 감으로 예언을 던지는 존재가 아니라, 드러난 조건과 맥락을 해석하고 구조를 설계하는 파트너다. HR을 점집 취급하는 순간, 대화의 목적은 이미 왜곡되고, 문제 해결의 길은 오히려 더 막히게 된다.
HR이 다루는 문제는 언제나 수많은 변수를 포함한다. 단순히 사람 간의 갈등으로 보이는 사건조차, 그 안에는 권한의 불균형, 성과 압박, 제도적 공백, 리더십 스타일, 심지어 회사의 재무 상황까지 얽혀 있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빼놓으면 해법은 달라진다.
따라서 HR의 답은 필연적으로 조건부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만약 제약이 없다면 이 방식이 적합하다.”
“만약 리더가 이런 성향이라면 접근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만약 조직의 목표가 단기 성과라면 우선순위는 달라진다.”
즉, HR의 답변은 언제나 맥락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질문자가 중요한 맥락을 의도적으로 빼놓으면, HR은 불가피하게 일반론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 이 일반론은 현실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원론적 답변’이라며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HR의 무능이 아니라, 불완전한 정보가 만들어낸 한계다. HR은 감으로 맞히지 않는다. HR은 드러난 조건을 기반으로 설계할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HR의 답이 조건부라는 사실이 결코 약점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HR이 ‘조건을 전제한다’는 사실은 문제 해결을 제도와 구조 차원에서 접근하겠다는 선언이다.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내린 해법은 잠깐의 위로일 수는 있어도,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HR은 당장의 답변보다는 실행 가능한 설계를 중시한다. 그 과정에서 조건부 답변은 필연이며, 그것이 곧 HR의 전문성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직원은 흔히 본질을 감춘다. 예를 들어 갈등의 원인이 본인의 성과 부진이나 실수일 때, 그 사실은 덮어두고 표면적인 불편만 내세운다. 불편한 사실을 드러내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HR에게는 일부 현상만을 꺼내 보이고, 나머지는 의도적으로 묻어둔다. 대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답을 정해둔 상태에서 HR에게 묻다가, 예상과 다른 의견이 나오면 그제야 숨겨둔 제약을 꺼내든다. 결국 이 질문은 진짜 해법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HR이 자기 생각을 맞히는지 확인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이 과정은 해법을 찾는 대화가 아니라 HR을 검증하는 절차로 변질된다. 숨겨진 정보를 나중에 꺼내 들며 “왜 이걸 고려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은, 애초부터 HR의 답을 무력화시키려는 태도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결국 자기 발등을 찍는다. 불완전한 조건에서 나온 답은 당연히 왜곡될 수밖에 없고, 그 왜곡은 다시 HR의 역량 부족으로 포장된다. 중요한 건 정보가 처음부터 제공되지 않았다는 사실인데도, 책임은 HR에게 돌아간다.
더 깊게 보면, 숨겨진 정보가 가져오는 왜곡은 단순히 HR의 판단을 흔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조직 내 책임 전가의 문화를 강화한다. HR은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답을 내놓았을 뿐인데, 그 답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는다. 실제 책임은 정보를 감춘 사람에게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HR의 무능으로 둔갑한다. 이 왜곡이 반복되면 HR은 점차 위축되고, 의사결정에서 영향력을 잃는다. 더 나아가 조직은 문제를 구조적으로 다룰 창구를 잃어버린다. 문제는 반복되고, 갈등은 심화된다. 결국 HR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성과를 낼 수 있는 기반이 약화된다.
HR을 점집 취급하는 태도는 단순히 HR만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곧 조직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HR이 제공하는 모든 솔루션은 ‘형식적 대답’으로 전락하고, 조직은 실질적 해법을 잃는다.
HR은 방어적으로 변한다. 시험을 당하는 순간, HR은 더 이상 주도적으로 솔루션을 내지 않는다. 괜히 섣불리 답했다가는 “현실을 모른다”는 꼬리표를 달기 때문이다. 그래서 HR은 결국 매뉴얼과 원론 속으로 물러난다. 이것은 HR이 게으르거나 소극적인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시험에 노출된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어 기제다.
직원과 대표는 HR의 답변을 형식적이라고 평가한다. “HR은 늘 일반론만 말한다”는 불신이 점점 커지고, HR은 조직 내에서 협력자가 아니라 단순 행정 부서처럼 취급된다. 일단 신뢰가 손상되면, HR이 어떤 답을 내놓든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불신은 조직의 성과 구조 자체를 흔든다. HR의 설계가 신뢰받지 못하면, 사람과 제도를 연결하는 연결고리가 끊기고, 문제 해결은 개인의 책임이나 감정 싸움으로 축소된다. 결국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누군가를 탓하거나 상황을 방치하는 쪽으로 흐른다. 이는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성과를 갉아먹는 구조적 리스크다.
장기적으로는 HR의 기능 자체가 위축된다. 신뢰가 사라진 자리에서 HR은 더 이상 전략적 파트너로 작동하지 못한다. 대표는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HR을 배제하고, 직원은 HR을 기대할 대상이 아닌 형식적 절차로만 인식한다. 그 결과 HR은 단순 행정 부서로 격하되고, 조직은 성과와 성장의 핵심 축을 잃는다. 점집 취급의 리스크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조직 역량의 구조적 붕괴로 이어진다. 문제 해결 능력을 잃는다는 것은 곧 생존 가능성을 잃는 것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HR이 사람을 다룬다는 이유로, 마음까지 읽어내길 기대한다. 그러나 HR은 마음을 맞히는 자리가 아니다. HR은 드러난 마음을 제도로 연결하고, 감정을 제약 속에서 다룰 수 있도록 구조화하는 역할이다. HR이 감정을 읽는다고 가정하면, 모든 문제는 감정 해석의 싸움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HR의 본질은 감정을 제도로 전환해 성과로 연결하는 데 있다.
즉, HR은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추측하지 않는다. 대신 “이 상황에서 어떤 구조가 성과를 가능하게 하는지”를 설계한다. 감정을 맞히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감정을 관리 가능한 구조로 바꾸는 것이 능력이다. HR이 감정을 읽지 않는 것은 단순한 한계가 아니라 전문성의 핵심 원칙이다.
이 지점에서 HR의 역할을 오해하면, HR은 끝없이 시험대에 오른다. 마음을 맞히지 못하면 무능으로 몰리고, 구조를 설명하면 원론이라 치부된다. 그러나 HR의 전문성은 감정을 읽는 데 있지 않다. 감정을 구조로 번역해 성과로 연결하는 데 있다. 이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순간, HR은 늘 점집처럼 오해된다. HR은 상담사가 아니라 설계자이며, 그 답은 위로가 아니라 구조다. 즉, HR의 가치는 감정의 흐름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관리 가능한 시스템’으로 변환하는 데 있다. 이 관점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HR은 감정의 소모전을 넘어, 성과를 뒷받침하는 전략적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대표가 HR에게 질문을 던지면서도 제약을 감춘다면, HR은 검증 도구로 전락한다. 직원이 HR에게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본질을 숨긴다면, HR은 방패막으로 전락한다. 이렇게 되면 HR은 누구의 파트너도 될 수 없다. 단순히 문제를 덮는 장치나 결정을 합리화하는 장치로만 쓰일 뿐이다. 그러나 HR은 누구의 도구도 아니다. HR은 회사와 구성원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조건을 해석하고 구조를 짜는 파트너다. 파트너십의 기본은 투명성이다.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순간, 해법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투명성을 전제로 할 때만 HR의 역할은 빛을 발하고, 조직 전체가 성장의 동력을 확보한다.
정보를 숨기고 맞히기를 요구하는 순간, HR은 더 이상 파트너가 아니다. HR이 점쟁이가 되는 순간, HR의 본질은 사라진다. 점집 같은 대화에서는 구조적 해법이 나올 수 없고, 조직은 결국 똑같은 문제를 반복하며 스스로를 소모한다. 파트너십을 인정하지 않는 조직에 HR의 진짜 힘은 존재하지 않는다. HR이 도구가 아닌 파트너로 서려면, 질문자 역시 ‘검증’이 아니라 ‘협업’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HR은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조건을 함께 정리하고 방향을 함께 설계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파트너십을 부정하는 순간 HR의 해법은 힘을 잃고, 파트너십을 인정하는 순간 HR의 답은 조직 전체의 성과로 이어진다.
많은 사람들은 HR이 사람을 다룬다는 이유로, 마음까지 읽을 수 있다고 착각한다. “사람을 상대한다면 내 속마음 정도는 알아야지.” 그러나 HR은 심리학자가 아니다. HR은 드러난 사실과 조건을 제도로 연결하는 역할이다. 마음을 맞히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감정을 제도적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능력이다. HR이 감정을 읽지 않는 것은 한계가 아니라 원칙이다.
이 착각은 단순한 기대 수준을 넘어 구조적 오해로 이어진다. HR이 마음을 읽어내지 못하면 ‘무능’으로 낙인찍히고, 설계를 설명하면 ‘차갑다’는 평가가 붙는다. 그러나 HR의 역할은 언제나 감정 위에 구조를 세우는 것이다. HR은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흘러가는 방향을 제도 속에서 다루는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HR은 끝없이 점집처럼 불필요한 기대와 시험에 시달리게 된다.
나아가 이 오해는 HR에게 이중 부담을 준다. 사람을 다룬다는 이유로 공감 능력을 요구받으면서도, 동시에 공감이 아닌 구조적 해법을 제시하면 냉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국 HR은 감정과 구조 사이에서 모순된 요구를 동시에 떠안게 되고, 그 틈에서 점집처럼 오해되는 것이다.
직원들은 HR이 중립적일 것이라 믿고 속마음을 다 꺼내지 않아도 알아줄 거라 기대한다. 대표는 HR이 회사의 이해를 대변하리라 전제하고 세부 제약을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중립성은 실제로는 함정이다. HR은 어느 한쪽의 편에 서는 존재가 아니라, 성과를 내기 위해 구조를 설계하는 조직이다.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조건을 설계하는 것이 본질인데, 중립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오히려 HR을 점집으로 만든다.
결국 중립이라는 기대는 HR을 불가능한 위치에 세운다. 직원은 HR이 자기 편을 들어줄 거라 기대하면서 속을 숨기고, 대표는 HR이 조직 편에 설 거라 전제하며 맥락을 감춘다. 어느 쪽에도 완전히 서지 못하면서도 동시에 양쪽의 속마음을 다 알아야 한다는 요구가 HR에게 주어진다. 이는 HR에게 신점 같은 능력을 강요하는 구조적 함정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기대가 쌓이면 HR 스스로도 모호한 위치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누구의 편도 아닌 위치를 유지하려다 보니 실제로는 누구와도 신뢰를 깊게 쌓지 못하고, 결과적으로는 어느 쪽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중립’이라는 기대가 HR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점집 같은 존재로 밀어 넣는 셈이다.
사람들은 전문가를 시험하고 싶어 한다. 의사에게도 일부러 병력을 숨기고 “이 정도만 말해도 진단할 수 있나 보자”는 환자가 있듯, HR에게도 같은 태도가 나타난다. 이는 신뢰의 표현이 아니라 불신의 표현이다. 전문성을 확인하려는 욕구가 결국 협력보다는 검증으로 흐른다. 이런 심리는 HR을 파트너가 아닌 점쟁이로 만든다.
검증 욕구는 결국 협력의 자리를 대체한다. HR은 해법을 설계하기보다, 끊임없이 ‘맞히기 시험’에 응시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질문자 입장에서는 순간적인 만족을 얻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HR의 역량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다. 협업보다는 시험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HR은 전략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단순한 응답 기계로 격하된다.
이 심리가 반복될수록 HR의 대화는 해법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정답 검증 게임’으로 흐른다. HR이 설계자로 기능하기보다는, 마치 시험 문제를 푸는 사람처럼 취급된다. 결국 검증 욕구는 HR을 파트너 자리에서 끌어내려 점집 자리에 앉히는 심리적 장치가 된다.
많은 조직에서 HR은 ‘지원 부서’로만 인식된다. 즉, 주도적으로 문제를 풀어주는 부서가 아니라, 요청에 맞춰 반응하는 부서로 취급된다. 이런 문화 속에서 HR은 늘 시험당하고, 감춰진 조건 속에서 답을 내놓기를 강요받는다. 조직문화의 왜곡이 HR을 점집처럼 만드는 구조적 배경이다.
이 왜곡은 단순한 인식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HR을 수동적 지원으로 한정하는 문화는 곧 문제 해결을 구조적 접근이 아니라 임시방편으로 끌고 간다. 임시방편은 단기적으로는 편리할 수 있으나, 근본적 해결을 방해한다. 그 결과 HR은 점점 전략적 설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결국은 ‘맞히는 부서’, ‘반응하는 부서’로 축소된다. 문화가 이렇게 굳어지면 HR은 스스로 점집으로 오해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이 왜곡은 HR의 자기 역할 인식에도 영향을 준다. HR 담당자 스스로도 “우리는 그저 지원한다”는 프레임에 갇히게 되고, 그 순간부터 전략적 사고는 사라진다. 조직의 문화가 HR을 점집으로 만들 뿐 아니라, HR 스스로도 점집처럼 행동하도록 학습시키는 것이다. 결국 이는 조직의 문제 해결 능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HR은 직원만의 편도 아니고, 대표만의 대변인도 아니다. HR이 서 있는 자리는 언제나 애매하고 불편하다. 그러나 바로 그 애매함 속에서 균형을 만들어내는 것이 HR의 존재 이유다. HR의 역할은 감춰진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난 사실을 기준으로 조건을 정리하고 제약을 설계하는 것이다. 예언처럼 사람의 속내를 꿰뚫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그 속내가 드러날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능력이다.
HR은 점집이 아니다. 점집은 순간의 쾌감과 직관에 의존하지만, HR은 근거와 구조를 통해 재현 가능한 해법을 제시한다. 즉흥적인 위로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선택지를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HR은 늘 투명성을 요구한다.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 순간 HR의 답은 무력해지고, 투명하게 드러난 사실 위에서만 HR의 해법은 힘을 얻는다. HR을 시험대에 올리는 태도는 결국 신뢰를 갉아먹고, 신뢰가 사라진 조직에서 HR은 더 이상 설계자가 아닌 방관자가 된다.
HR의 힘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감정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정보를 바탕으로 조직 전체가 움직일 수 있는 틀을 만든다. 그 틀은 단기적 문제 해결에서 끝나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성과와 생존 가능성을 지탱하는 기반이 된다. 예언은 순간을 달래줄 수 있지만, 구조는 시간을 견딜 수 있다. HR의 답이 가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HR에게 기대해야 하는 것은 직관이 아니다. 조건을 정리하고 구조를 세우며, 성과를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다. 숨겨진 것을 맞히길 바라기보다 드러난 것을 근거로 함께 설계할 때, HR은 비로소 제 역할을 다한다. 그 순간 HR은 점쟁이가 아니라, 성과를 가능하게 만드는 설계자로 자리매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