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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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잼플에서 주최한 조직문화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내용 중 일부를 아티클로 작성하였다.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결단력’을 먼저 떠올린다. 빠른 판단과 명확한 결론이 리더의 덕목처럼 강조된다. 특히 스타트업이나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기업일수록 ‘누가 더 빠르게 결론을 내리느냐’가 중요한 역량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위험한 전제가 숨어 있다. 바로 결론만 내리면 된다는 착각이다. 결론은 방향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왜 그 방향을 선택했는지 알 수 없다. 결론이 단독으로 소비되는 순간, 사람들은 그것을 단순한 지시사항으로만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리더가 가진 문제의식과 배경, 경험과 가치관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해야 할 일’뿐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맥락이 빠진 결론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해석된다. 같은 한 문장을 두고도 어떤 이는 단기 성과를 강조한 말로 이해하고, 다른 이는 장기적 비전을 강조한 말로 받아들인다. 이 차이는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각자의 가치관과 경험, 성향이 반영된 ‘해석의 렌즈’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사고과정은 단순한 논리적 산출물이 아니라, 개인의 살아온 궤적이 녹아든 해석의 구조다.
리더가 사고과정을 공유하지 않으면, 조직은 제각기 다른 렌즈로 같은 문장을 해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차이는 오해와 갈등으로 연결된다. 결국 리더의 의도와 무관한 정치가 만들어지며, 결론만으로 조직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순간, 리더십은 이미 본질을 잃게 된다.
한 스타트업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대표가 회의에서 “우린 시장에서 속도가 생명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팀마다 해석은 달랐다. 영업팀은 “이번 분기에 계약을 무조건 따내라”는 압박으로 이해했고, 제품팀은 “빠른 출시를 위해 완성도를 일부 포기해도 된다”로 받아들였다. 운영팀은 또 다르게 “내부 보고 절차도 줄여야 한다”라는 신호로 해석했다. 대표가 말한 본래 의도는 단순히 ‘속도라는 가치를 놓치지 말자’였다. 그러나 사고과정이 공유되지 않은 채 결론만 전달되자, 각 팀은 자신의 경험과 성향에 맞게 해석했다. 이때 대표와 오래 함께한 사람만이 ‘대표는 이런 맥락에서 말한 것’이라며 영향력을 발휘했고, 그 영향력은 곧 조직 내 정치로 굳어졌다. 맥락이 사라진 자리를 추측이 차지하면서 권력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해석의 차이가 단순히 혼선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 차이는 권력의 근거가 된다. 누군가가 “대표의 진짜 의도를 안다”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은 조직 내에서 영향력을 얻게 된다. 결국 ‘대표와의 거리’가 권력이 되는 구조가 생겨난다. 이 과정에서 공정한 판단은 뒷전이 되고, 누가 더 맥락을 잘 짐작하느냐가 성과를 좌우한다. 정치가 조직의 운영 원리로 자리 잡는 순간이다.
그리고 정치가 만들어지는 순간, 조직은 본래 목적과 거리가 멀어진다. ‘속도’라는 가치가 원래는 시장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는데, 정치적 해석으로 변질되면 속도는 단순히 ‘대표가 원하는 답 맞추기’로 전락한다. 결국 조직은 외부 경쟁이 아니라 내부 눈치 싸움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철학자들의 책이 두꺼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결론 몇 줄만 적어 두었다면, 아무도 그 철학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 문장짜리 결론은 암기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실제 삶과 사고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철학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문제 삼았는지, 어떤 배경에서 그 질문이 나왔는지, 어떤 반론을 예상했고 어떻게 보완했는지를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독자가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비로소 “아, 그래서 이 결론이 나왔구나” 하고 맥락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해는 가능해진다. 이해 가능성이 곧 철학이 가진 힘이다.
리더의 사고과정 공유 역시 조직의 안전장치다. 결론은 언제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결론을 도출한 기준과 사고의 궤적은 리더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구성원은 그 과정을 통해 “이 리더는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기준을 우선한다”라는 학습을 한다. 그 학습이 쌓이면 조직은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정치가 아니라 신뢰로 운영될 수 있다. 결론만 지시로 남을 때는 리더가 매번 다시 설명해야 하지만, 사고과정을 공유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설명은 줄고 학습된 기준이 조직 전체의 사고 습관으로 내재화된다.
두꺼운 철학책이 단순히 분량을 채우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 소크라테스에서 칸트, 니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상가들은 결론만 던지지 않았다. 그들이 남긴 것은 질문과 문제의식, 수많은 사유의 궤적이었다. 책이 두꺼운 이유는 바로 ‘이해를 가능케 하기 위함’이다. 리더십 역시 그렇다. 사고과정을 공유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언제나 결론만 보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사고의 맥락이 드러나면, 동의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 이해는 곧 신뢰의 기반이 된다.
[예시] 칸트의 철학
예를 들어, 칸트의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라는 문장은 지금도 윤리학 교과서에 반드시 등장한다. 하지만 이 문장 하나만 떼어내면 단순한 도덕 교훈처럼 들린다. 그러나 칸트가 『실천이성비판』과 『도덕형이상학 기초』에서 이 명제를 설명할 때는 수백 쪽에 걸쳐 사고과정을 전개했다. 그는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규정하고, 자유 의지를 전제로 한 도덕법칙을 세운 뒤, 그 법칙이 타인을 도구화하지 않고 존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갔다. 즉 결론은 한 문장이지만, 그에 이르는 길은 전제–전개–보완–반박을 포함한 긴 논리 구조였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 결론조차 당대에 반박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공리주의자 벤담은 “인간의 존엄보다 다수의 행복이 우선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니체는 “칸트의 보편 윤리는 허구에 불과하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바로 이런 반박까지 함께 읽어야 우리는 칸트가 왜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그리고 그 결론이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효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철학책이 두꺼운 것은 단순히 저자의 설명 욕심 때문이 아니다. 결론만 던져놓으면 언제든 오해되거나 반박에 취약해진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결론을 떠받치는 문제의식, 논리적 경로, 보완 장치, 심지어 스스로에 대한 반론까지 담아냈다. 그 과정을 읽어야만 우리는 “동의는 못하지만 이해는 한다”라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결론을 내리는 것보다, 그 결론에 이르는 길을 드러내는 것이 훨씬 더 본질적인 힘을 가진다.
많은 기업은 비전과 미션, 핵심가치를 내세운다. 특히 스타트업은 투자자와 시장을 설득하기 위해 “우리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식의 선언을 반복한다. 그러나 정작 내부 구성원은 “왜 우리가 이 방향을 선택했는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화려한 구호는 있지만, 사고과정이 공유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비전을 진심으로 따르지 않고, 그저 맞히기 위한 정답지처럼 다룬다. 비전은 ‘결론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 배경이 공유되지 않으면 내부에선 쉽게 공허해진다. 그래서 스타트업에서 자주 벌어지는 현상이 바로 ‘비전 피로감’이다.
여기서 유튜브 속 기업가들의 인터뷰를 떠올려 보자. 젠슨 황,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마크 주커버그 같은 인물들의 대화는 결코 짧지 않다. 그들은 회사를 세운 이유, 특정 비전을 세운 사유, 운영 방식을 선택한 배경을 길게 설명한다. 우리는 종종 그들의 인터뷰에서 멋져 보이는 한두 문장만 기억한다. 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그 문장을 낳은 맥락과 긴 사고과정이다. 그 과정을 생략한 채 문장만 베껴 쓰면, 그것은 구호가 될 뿐 살아 있는 기준은 되지 못한다.
더 나아가 구호 중심의 리더십은 구성원에게 반복적인 실망을 안긴다. 새로운 구호가 나올 때마다 기대 대신 피로가 쌓이고, 구호가 현실로 이어지지 않는 경험이 반복되면 결국 냉소가 문화가 된다. 구호가 아닌 사고과정을 공유해야만 구성원들은 방향이 바뀌더라도 ‘왜’에 공감하며 함께 움직일 수 있다.
사고과정을 드러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리더 자신도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그 과정은 허점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용기가 리더십의 본질이다.
예를 들어, 어떤 대표가 신규 사업 진출 여부를 고민할 때 “단기적으로는 손해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고객 경험을 강화하는 방향이기에 간다”라고 사고과정을 공유한다면, 구성원은 단기 성과만으로 대표를 평가하지 않는다. 대신 “대표는 언제나 고객 경험을 우선하는 기준을 갖는다”라는 학습을 하게 된다. 결론이 달라져도 기준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신뢰가 쌓인다.
여기서 핵심은, 사고과정을 공유하는 행위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리더 스스로를 노출하는 일이다. 자신의 부족함, 판단의 한계, 때로는 모순까지 드러내야 한다. 그렇기에 사고과정을 공유하는 리더는 단순한 결단자가 아니라, 기준을 함께 세워가는 사람으로 보인다. 조직은 이 과정을 통해 단순히 결론을 따르는 집단에서 벗어나, 판단의 기준을 학습하는 공동체로 성장한다.
사람들은 완벽한 결론보다 불완전하지만 솔직한 사고과정을 더 신뢰한다. 그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리더의 가치관과 우선순위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결론은 순간이지만, 기준은 문화로 남는다. 그리고 이 문화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리더 개인을 넘어 조직 전체의 자산이 된다. 리더가 바뀌어도 사고의 기준이 이어지고, 새로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토대가 된다. 결국 사고과정을 공유하는 용기는 단순히 현재의 설득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유산을 남기는 행위다.
리더는 결론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다. 결론은 순간이지만, 사고과정은 문화가 된다. 사고과정을 공유하는 리더십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조직을 오해와 정치에서 보호하는 안전장치이자, 구성원이 판단의 기준을 학습하는 기회다. 사람들은 결과보다 사고의 흐름을 배운다. “왜 이 선택을 했는가”를 알게 되면, 동의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 이해는 곧 행동의 일관성을 만들고, 신뢰로 이어진다.
철학자들의 책이 두꺼운 이유는 단순히 설명을 늘어놓기 위해서가 아니다. 수많은 전제와 논리, 보완과 반박을 함께 담아야만 독자가 맥락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 문장의 결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문장에 도달하기까지의 궤적을 따라가며 사고의 깊이를 체험한다. 마찬가지로, 위대한 기업가들이 긴 시간 동안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풀어내는 것도 단지 멋진 문장을 남기려는 것이 아니다. 회사를 세운 배경, 비전을 정립한 이유, 운영 방식을 선택한 과정까지 드러내야만 사람들이 그 철학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십도 같다. 결론만 남기면 그것은 지시로 끝나지만, 사고과정이 남으면 그것은 문화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지시를 따르는 데서 끝나지 않고, 리더의 가치관과 기준을 학습한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도 방향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한 조직이 지속적으로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결론의 적중률 때문이 아니라, 그 결론을 낳은 사고의 흐름이 공유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리더가 남겨야 할 것은 답 그 자체가 아니다. 답에 이르는 길, 그 길을 함께 걸어가도록 열어놓는 것이다. 리더의 사고과정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조직이 불확실성을 견디게 하는 기준이 되고, 흔들릴 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좌표가 된다. 이것이 리더십의 무게이자, 조직이 흔들리지 않고 성장하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