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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d] HR은 성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by iid 이드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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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담이 만들어내는 착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많은 대표들은 성공한 CEO들의 조직·인재관리 철학을 귀 기울여 듣는다. “우리는 이렇게 스쿼드를 만들었고, OKR로 정렬했고, 문화적 원칙을 지켰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복잡한 문제의 정답이 그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스쿼드, 목적조직, 다이렉트 피드백, 가중목 같은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공식’이 떠오르기도 한다. 경험자의 이야기를 참고하는 것은 물론 의미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꽤 큰 착시가 하나 작동한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성공한 결정적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했던 운(Luck)을 선뜻 인정하지 않는다. 운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철학과 전략이 축소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 후에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뒤늦게 정리하며 “내가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라는 식의 구조화된 언어로 재탄생시키곤 한다. 이는 의도라기보다 본능에 가깝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선택과 판단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정리된 이야기 속에서는 시행착오와 우연, 혼란과 타이밍은 흐릿해지고, 마치 처음부터 일관된 전략으로 움직인 것처럼 매끄러운 서사만 남는다. 결국 이 서사는 사후적 합리화를 거친 하나의 ‘완성된 스토리’가 된다.


문제는 이 서사가 너무 매끄럽다는 데 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오해하기 쉽다.
“저 회사가 성공했으니, 저 방식이 정답이겠지.”


하지만 HR과 조직을 오래 다뤄본 사람들에게는 조금 다른 장면이 훨씬 더 자주 보인다. 성공한 회사의 HR 제도가 “잘해서 성공한 것”이라기보다, 성공했기 때문에 좋아 보였던 것일 때가 정말 많다는 점이다. 같은 제도라도 어떤 회사에서는 날개처럼 작동하고, 어떤 회사에서는 제약이 되거나 조직을 무너뜨리는 사례가 반복된다. 그리고 이 사실은 HR 담당자인 나조차 인정하기 불편한 진실이다. 원래는 “HR이 회사를 바꾼다”고 말하는 편이 훨씬 더 편하고, 더 전문가처럼 느껴지는 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명확하다. HR은 비즈니스의 필요 요소일 뿐, 충분 요소는 아니다.


좋은 HR이 있어도 실패하는 회사가 있고, 허술한 HR을 가지고도 시장의 흐름과 제품력으로 성장하는 회사도 있다. HR은 조직을 견고하게 만들고 리스크를 줄이며 실행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HR만으로는 회사의 성공을 증명하거나 보장할 수 없다. 그 차이를 만드는 핵심 변수는 시장, 제품력, 타이밍, 리더의 판단, 그리고 우리가 인정하지 않으려는 ‘운’이다.




HR 성공담을 그대로 가져오기 전에 반드시 봐야 할 관점

성공한 회사의 방식을 참고하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 방식을 그대로 가져오면 오히려 조직이 흔들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각 회사는 전혀 다른 구조·감정·시장·타이밍 위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HR 제도를 바라볼 때는 ‘좋은 방식인가?’보다 ‘우리 회사에서 작동할 조건인가?’라는 질문이 먼저여야 한다. 아래 다섯 가지 관점은 HR 제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 제도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이해하기 위한 기준이다.


성공 배경의 ‘사전 확률’을 무시한 해석

성공한 회사들이 말하는 조직 설계에는 늘 말하지 않는 전제가 붙어 있다. 그 방식이 작동할 수 있었던 시장 환경, 성장 속도, 자본의 여유, 인력 규모 같은 배경 조건이다. 예를 들어 스쿼드 조직이 성공했다고 말하는 회사들은 대부분 빠른 개발이 생존이었던 시기, 개발 인력이 풍부하고 우선순위 충돌이 명확했던 환경에서 그 구조가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아직 역할도 정착되지 않고 인력도 충분하지 않은 초기 스타트업이 동일한 구조를 가져오면 책임과 권한만 모호해지고 의사결정은 더 느려지는 ‘복제 불가능한 조직’이 된다.


OKR 또한 비슷한 오해를 낳는다. 연간 200%씩 성장하던 시기에는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동일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OKR이 큰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성장률이 꺾이거나 사업이 다각화된 시점에 OKR을 적용하면 조직은 오히려 문서를 위한 목표를 만들게 되고 “왜 하는지도 모르겠는 절차”만 남는다.성공담의 절반 이상은 제도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 제도가 작동할 가능성이 높은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우리는 종종 제도만 가져오지만, 실제로 그 제도를 빛나게 한 건 대부분 그 당시의 조건과 속도감이었다.


리더의 감정·판단 구조라는 ‘숨은 엔진’을 간과하는 오류

조직의 성패는 제도 그 자체보다, 그 제도를 운영하는 리더의 감정 구조·판단 패턴·의사결정 스타일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다이렉트 피드백을 예로 들면, 어떤 조직에서는 갈등을 감정적으로 끌고 가지 않고 논리적으로 조정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 있어 피드백이 자연스럽게 운영 언어가 된다. 그러나 또 어떤 조직에서는 똑같은 피드백 제도가 불편함과 방어적 태도를 자극하며 오히려 갈등폭발의 도화선이 된다. 구성원이 피드백을 감정적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조직이라면 이 방식은 독이 된다.


상향식 목표 설정도 비슷하다. 대표가 즉결형 의사결정을 선호하는데 상향식 구조를 도입하면, 구성원들은 방향성을 잃고 오히려 더 많은 혼란을 겪는다. 반대로 구성원 중심의 안정적 분위기를 선호하는 리더가 극단적 솔직함을 도입하면 조직은 피드백 피로와 불필요한 긴장감에 잠식된다. 제도는 기술이 아니라 감정 시스템 위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HR은 간과하기 쉽다.


업의 본질과 HR 제도의 ‘궁합’을 놓친 선택

많은 조직은 업의 구조를 보지 않고 HR 제도만 가져온다. 하지만 HR 제도는 산업의 본질, 비즈니스 모델, 수익 구조 위에서만 힘을 발휘한다. 목적조직은 문제 해결 중심 업에서는 강력한 방식이지만, 반복 운영·원가 관리·손익 효율이 중요한 F&B·리테일·물류 업에서는 역할 중복과 비용 증가를 초래한다. 이 환경에서는 목적조직의 장점보다 구조적 비효율이 훨씬 크게 나타난다.


애자일 또한 실험과 반복이 핵심인 개발·프로덕트 조직에서는 생산성과 속도를 높이지만, 매일 같은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CS·운영 조직에 그대로 적용하면 회의만 늘어나고 속도는 오히려 떨어진다. OKR도 R&D 중심 산업에서는 강력한 전략 도구지만, 거래 단위가 작고 순환 속도가 중요한 업에서는 실질적 효과를 내기 어렵다. 업과 제도가 맞지 않으면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계해도 조직은 체질적 거부 반응을 보인다. HR은 경영의 상위 개념이 아니라 경영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조직의 시간·돈·에너지, ‘리소스 온도’를 고려하지 않은 도입

성공한 회사들은 대체로 조직의 ‘리소스 온도’가 높던 시기에 새로운 HR 제도를 도입했다. 구성원들의 에너지가 충분했고, 실패하더라도 회복할 시간과 자원이 있었으며, 리더들 역시 외부 압박보다 내부 실행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제도는 빠르게 흡수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다듬어질 여지가 있었다.


반대로 대부분의 회사는 시간이 부족하고, 예산은 빠듯하며, 구성원들의 에너지는 이미 소진되어 있다. 이런 상태에서 정교한 HR 제도를 들여오면 제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제도를 지탱할 힘이 없어 HR은 단숨에 ‘비용 항목’이 되고 조직은 필요 이상의 혼란으로 빠지기 쉽다.


가중목(가중치 목표)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때는 매우 효과적인 목표관리 방식처럼 보였지만, 그 효과는 사실 전사적으로 하나의 목표에 모든 팀이 집중할 수 있었던 특수한 시기 덕분이었다. 구성원들의 에너지와 몰입도가 높았기에 가중목은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그러나 이 온도가 사라지면 가중목은 오히려 가중치 조율을 둘러싼 소모전, 책임 회피를 부르는 구조, 점수 정치, 리더 권한의 과도한 집중 같은 부작용을 낳는다. 결국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그 제도를 버틸 수 있는 조직의 온도와 여력에 있다.


성공 후 만들어진 이야기(Narrative)에 속는 착시

사람들은 성공한 후 자신들의 선택과 과정을 하나의 전략으로 재구성한다. 이는 의도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심리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공담은 우연, 타이밍, 사람 간 궁합, 경쟁사의 실수, 시장 흐름 등 계산 불가능한 요소들이 단숨에 결합한 결과일 때가 많다.


스쿼드 조직이 성공했다고 설명하는 회사도 실제 안을 들여다보면, 그 시기에는 우연히도 뛰어난 핵심 인력 몇 명이 완벽한 호흡으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 실제 성공의 중심일 때가 많다. 다이렉트 피드백이 ‘문화의 힘’으로 포장되는 경우도, 실제로는 리더의 강한 드라이브와 시장 압력 덕분에 구성원들이 버틸 수 있었던 시기였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 모든 복잡한 요소들이 성공 후 ‘일관된 스토리’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지워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저 회사가 성공했으니, 저 제도가 정답이다.” 라는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그 방정식은 대부분 사후적 구성의 아름다운 서사일 뿐이고, 실제 원인은 훨씬 더 무작위적이며 복합적이다.



HR 담당자인 내가 인정해야만 했던 불편한 진실

HR을 오래 하다 보면 마음속에서 늘 충돌하는 감정이 있다. 한쪽에서는 “HR이 회사의 성장을 좌우한다”는 말이 편하다. 실제로 HR이 잘 작동하면 조직은 더 건강해지고, 감정의 오염이 줄어들며, 갈등이 고여 있지 않게 되고, 실행도 매끄럽게 이어진다. 그래서 HR이 회사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은 직업적 자존감도 높여준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늘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HR은 회사가 잘 흘러가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HR만으로 회사가 성공하는 일은 없다. 시장의 변화, 제품의 경쟁력, 리더의 판단, 타이밍 같은 본질적 요인에 비해 HR은 언제나 ‘보조적 요소’로 움직인다. 회사가 잘될 때는 HR이 한 모든 일이 “선견지명”으로 보이지만, 회사가 흔들리면 같은 제도도 “비용”으로 재해석된다. 성장기에는 구성원들이 관대하고 변화도 빠르게 흡수되지만, 정체기에는 작은 제도 하나도 불필요한 부담으로 여겨진다. 같은 제도인데도, 회사의 상태가 바뀌면 평가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게 되면 HR의 역할에 대한 관점도 조금씩 달라진다. HR은 회사를 완전히 다른 상태로 변화시키는 ‘만능 키’가 아니라, 회사가 가진 구조·감정·리소스·타이밍 속에서 실제로작동 가능한 조합을 설계하는 직무에 가깝다. 최적의 제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회사가 버틸 수 있고 효과를 낼 수 있는 ‘현실적 선택’을 만들어내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HR 담당자인 내가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HR은 비즈니스의 필요 요소일 뿐, 충분 요소는 아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HR은 오히려 더 자유로워진다. 이상적인 그림에 매달리지 않고, 회사가 가진 조건과 한계를 더 솔직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고, 그 안에서 가장 전략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HR의 가치는 회사를 성공시키는 힘이 아니라, 조직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탱해주고, 필요할 때 한 번 더 버티게 만드는 기반을 설계하는 능력에 있다. HR이 직접 “성공”을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가 된다.




회사의 성공은 결국 매우 기본적인 경영 원리 위에 서 있다

결국 회사를 움직이는 힘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좋은 제품, 명확한 시장 기회,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 빠르고 일관된 실행력, 리더의 의사결정, 그리고 우리가 쉽게 인정하지 않는 운까지. 이 여섯 가지는 어떤 시대와 어떤 산업에서도 조직을 앞으로 밀어주는 기본 원리다. HR은 이 기반이 갖춰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다시 말해, HR은 성공을 만드는 ‘주인공’이라기보다 성공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정돈하는 조력자’에 가깝다.


그래서 남의 성공담을 그대로 가져오는 일은 위험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스쿼드, 목적조직, OKR, 가중목 같은 제도가 회사를 성공으로 끌어 올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회사만의 업 구조, 리더의 판단 패턴, 조직의 에너지와 리소스, 그리고 특정 시기의 시장 흐름이 모두 결합한 결과였다. 우리가 따라야 하는 것은 그들의 방식이 아니라, 그 방식이 왜 그 회사에서만 가능했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결국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들이다.

“우리 업의 구조는 무엇인가?”
“우리 리더는 어떤 판단·감정 패턴을 가지고 있는가?”
“지금 우리 조직의 에너지는 어떤 상태인가?”
“우리가 듣는 성공담은 실제 전략인가, 성공 후 만들어진 서사인가?”


이 질문을 통과한 제도만이 실제로 조직에서 힘을 발휘한다. 그래야 트렌드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 조직의 현실을 기준으로 HR을 설계할 수 있다.


HR은 필요하다. 하지만 HR만으로는 충분할 수 없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HR은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수행할 수 있게 된다. 회사가 가진 조건을 냉정하게 해석하고, 과한 투자를 줄이며, 감정 소모를 최소화하고, 조직이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 화려한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넘어지지 않도록 단단한 지반을 설계하는 것이 HR의 본질적 역할이다. 그 지반 위에서야 비로소 제품·시장·실행·운이라는 기본 원리들이 제 힘을 낼 수 있다.


그래서 HR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남의 성공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회사가 지금 어떤 자리 위에 서 있는지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이 인식이 명확해지면 HR은 유행이나 성공담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 조직만의 해법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 해법이야말로 실제로 회사를 지키고, 때로는 회사를 살리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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